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중독 사회

鶴山 徐 仁 2006. 9. 14. 09:31

 

   

200609060434_00.jpg

바다이야기’파문 속에 ‘중독’이라는 독특한 정신적 현상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사행성 게임, 도박 심지어 담배, 술까지 포함하면 여기에 중독된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미치는 폐해는 이루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중독이란 어떤 자극에 지나치게 집착해 그 자극 없이는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동일한 쾌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자극이 필요하게 되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상태를 이른다. 정신적 중독현상은 보상 기제를 관장하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 물질과 관련된 두뇌 특정 영역의 변화와 연관돼 있다. 즉 어떤 자극에 일단 중독되면 뇌의 변화와 연관되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회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미 중독에 빠진 사람이 아무리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계속 그 행위에 집착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는 왜 이렇듯 심각한 정신적 중독이 만연해 있는 걸까. 최근 유아들에게까지 불고 있는 중독현상을 들여다보면 좀 더 명확하게 문제의 핵심이 들여다보인다. 몇 해 전부터 조기교육 열풍이 불더니 급기야 돌 이전의 영아들에게까지 영어비디오를 비롯한 학습용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 대세다. 그 결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하루 종일을 비디오 시청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뇌 성장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유아기에 다른 환경 자극을 차단한 채 비디오 없이는 못 살 정도로 중독이 된 아이들이 언어와 사회성 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일부 부모들은 비디오 판매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태에 이르렀다. 아직 자신의 의지가 없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조기교육이란 명목으로 중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에 노출되었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부모의 과욕과 무지로만 비난을 돌리기에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병리와 너무나 맞물려 있다.

사실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데만 너무 급급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내면적 가치를 지키는 노력은 제도적, 사회문화적 면에서 몹시 부족하다. 그 결과 ‘남보다 뛰어나고 더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으로 갖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이 항상 돈을 벌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경우에만 제대로 보상이 돌아가는 사회제도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예를 들어 모성, 삶의 만족감, 어린이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는 어떠한 실질적 보상도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당장 모성을 제도적으로 푸대접한 결과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위기를 초래하게 된 것 아닌가.

‘바다이야기’의 부작용 역시 같은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즉 자기를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중독성이 강한 자극들을 ‘삶을 즐길 권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공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업체, 그리고 이 업체들과의 연관성이 의심되는 소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구조인 것이다.

 

양으로 측정하기 어렵고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질과 깊은 관련이 있는 가치들이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의 보상이 사회문화적, 경제적,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하기가 어렵다. 결국 우리가 고생을 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는 것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 아닌가. 더 이상 경제적 이윤이라는 이유로 사행성사업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자를 중독에 빠지게 하는 비정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의진/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