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청백리(淸白吏)로 선임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자신은 물론 가내(家內)까지 청빈해야 했다. 재상 청백리는 더욱 드문데 고종 때 편찬된
‘청선고(淸選考)’는 재상 청백리를 따로 적고 있다. 세종 때의 이원(李原) 황희(黃喜) 유관(柳寬) 맹사성(孟思誠), 세조 때의
구치관(具致寬), 연산군 때의 허침(許琛), 중종 때의 김전(金詮), 명종 때의 이준경(李浚慶), 선조 때의 심수경(沈守慶) 유성룡(柳成龍)
이원익(李元翼) 이항복(李恒福), 인조 때의 김상헌(金尙憲), 효종 때의 이시백(李時白), 현종 때의 홍명하(洪命夏), 숙종 때의
이상진(李尙眞)으로 모두 열여섯 명에 지나지 않는다. 숙종 때 윤지완(尹趾完)을 넣기도 하는데, 대부분 귀에 익은 이름이니 청빈한 재상들이
업적도 많음을 알 수 있다.
초가집에서 살던 세종 때의 유관은 장마 때 천장에서 비가 줄줄 새자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부인에게, “이 우산도 없는 집에서는 어떻게
견디겠소.”라고 말했다. 부인이 “우산 없는 집엔 다른 준비가 있답니다.”라고 쏘아붙이자 유관이 웃었다고 ‘필원잡기’는 전한다.
세종은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건을 사서 황희에게 주라고 명했는데, 공교롭게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상인의 발길이 없어서
저녁에 겨우 달걀 한 꾸러미를 구했다. 집으로 가지고 와 삶아 먹으려 하자 모두 곯아 먹을 수 없었다고 ‘송남잡지(松南雜識)’는 전한다.
여기에서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이란 고사성어가 생겼다고 한다. 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에서
“유성룡이 세상을 떠날 때 집에는 남은 재산이 없어 여러 아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 거의 살아갈 도리가 없었다.”고 전한다.
낡은 점퍼로 중국인을 감동시킨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이번에는 밑창 터진 운동화로 다시 화제다. 고속경제발전을 견인하면서도 극도로
검소한 중국 총리의 처신이 극심한 경제침체 속에서 고위 공직자의 잇단 소음(騷音)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절로 부러움을 준다.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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