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을지로 사옥 구관이,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시행하는 ‘등록문화재 제도’의
제1호 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2가 5번지에 위치한 을지사옥은 1920년대 말 서울 도심부에
지은 본격적 사무소 건물로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크며, 최초로 내화, 내진설계를 적용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건축으로 한국전력의 역사이자, 근대 건축적 가치가 크다”고 등록문화재1호로 등록된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현재
을지로 사옥은 구관 및 신관2동의 사무실 건물과 을지로변전소로 구성돼 있으며, 전려계통건설처, 서울전력구건설처, 서울지역본부 및
전우회가 입주하고 있으며 전체 근무인원은 약 560명 정도이다.
한편 ‘등록문화재 제도’는 근대역사 건축물과 기념물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 7월 도입 시행됐으며,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 종합토지세와 재산세의 50%범위 내에서 감면받을 수 있고
건물 유지보수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게 된다.
문화재청은 이밖에 옛 경기고교(서울시 중구 화동),
이화여고심슨기념관(서울시 중구 정동), 일제시대 사회교육시설로 지은 조양회관(대구시 동구 효목동), 옛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대구시 중구 대봉동), 청주상고 옛 본관(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 옥천천주교회(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대한성공회 진천성당(충북 진천군 읍내리), 우리 예능원(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옛 남일당 한약당(충남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을 각각 근대건축물 2호~10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제도'의 시행과 관련,
등록예고(2001.12.8)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2002.2.5)를 거쳐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등록문화재 제1호)」등 10건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2001.7월 관련제도 도입·시행 이후 최초로 등록문화재가 탄생하게 됨으로써 근대역사건축물·기념물
보존, 관리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그간 문화재로서의 인식이 미흡하였던 근대역사건축물 등을 이제는 역사적
잠재가치가 큰 문화재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등록된 문화재는 개화기 이후 해방 전후까지의
건축물·시설물로서, 우리나라 근대사의 상징 및 기념이 될만한 시설물과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는 건물이다.
등록문화재의 가장 큰 특징은 당해 문화재의 보존과 함께 자유로운 활용이 가능하며 외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은 범위에서
내부를 일상생활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채 문화재를 적절히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이다. 앞으로도, 문화재청은 전국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관계 전문가 합동평가회의 및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록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근대문화유산의 보존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이해를 제고하는 등 이를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기반과 토대를 마련,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참고로, 작년 12월 8일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바 있는 근대건축물 중
청일여관(서울), 금성다방(강경), 공주영명중학교 구 본관(공주)은 건물의 연혁과 구조 등에 대하여 보다 정확한 조사와
소유자와의 의견조정 등의 과정이 필요함에 따라 이번 등록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추후 정밀조사 등을 통해 등록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등록문화재 현황 제1호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2가 5) 제2호 화동 구
경기고교(서울시 중구 화동2) 제3호 정동 이화여고심슨기념관(서울시 중구 정동 32-1) 제4호 효목동 조양회관(대구시 동구
효목동 산 234-33) 제5호 대봉동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대구시 중구 대봉동 60-18) 제6호
내덕동 청주상고 구 본관(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2동 261) 제7호 옥천 삼양리 옥천천주교회(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158-2)
제8호 진천 읍내리 대한성공회진천성당(충북 진천군 읍내리 329-1) 제9호 문화동 우리예능원(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 7-3)
제10호 강경 중앙리 구 남일당한약당(충남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 8-1) |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는 舊 경기고교인 정독도서관은 개화파의 주거지를 몰수한 조선정부가 그 자리에
1900년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인 관립중학교를 설립한 것이 출발.
본관은 1938년에 경기공립중학교로 교명이 개칭되면서
신교사로 낙성된 건물로, 철근 콘크리트에 벽돌로 벽을 쌓아올린 3층 학교 건물이다.
양쪽으로 수평을 길게 뻗으면서 중앙부를
높게 올린 모습은 전형적인 학교건물로, 당시로서는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벽 구조, 스팀난방 시설을 갖춘 최고급의 건축물로
평가되었다.
1938년 당시 스팀난방 방식을 도입한 최고급 학교 건축물 철근콘크리트·벽돌벽구조
서울 종로구
안국동 네거리에서 풍문여고 옆의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정독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학교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고,
조선 왕조의 종친부 건물도 동쪽 담장 곁에서 볼 수 있다. 도서관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곳이지만, 이곳의 건물과 장소 자체도
중요한 문화적 구실을 하고 있다. 꼭 책을 보기 위해서만 이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
서울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북악,
종로의 네 둘레에 갇힌 곳이다. 그 가운데서도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는 사대부 가운데서도 집권파가 아니면 둥지를 틀 수 없었다.
조선말 명문 거족 출신의 젊은 개화당들이 모여 살며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려 했던 곳도 바로 이 곳 북촌이다.
이른바
‘3일천하’의 주역 가운데 영의정의 아들 홍영식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평안감사의 아들 서광범은 덕성여고와 풍문여고 사이, 철종의 사위
박영효는 인사동 경인미술관, 판서의 조카 서재필과 세도가 안동 김씨 가문의 김옥균은 정독 도서관 등 모두 이 동네에 함께 살았다.
이들이 정변에 실패한 뒤 외국으로 망명하자 정부는 화동의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을 몰수한 뒤 이 터에 1900년 한국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인 관립중학교를 세운다. 이것이 오늘의 경기고등학교다.
김옥균의 집은 현재 정독도서관 안 서울교육사료관 뒤쪽에
있었으며, 서재필의 집은 교육사료관 부근에 있었다.
근대건축사학자인 목원대 김정동 교수는 최초의 학교 건물이
서재필이 살던, 방이 10개도 더 되는 양옥을 개조한 것이었다고 고증했다. 이 서재필의 집을 개조한 최초의 본관을 다시 증축한
것이 현재 남아 있는 교육사료관으로 보인다.
그 뒤 교육사료관 뒤쪽 김옥균 집 터 쪽에 2층으로 된 목조 건물들을 몇 채 지었다가
1938년 현재 정독도서관으로 사용되는 새 본관 건물(사진)을 지으면서 모두 철거했다. 현재의 정독도서관과 운동장 자리는 민족
반역자인 박제순의 집 터였다.
고종이 세운 관립중학교는 조선과 일제, 해방을 거치면서 관립한성고등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기공립중학교 등으로 바뀌었다가 50년부터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로 나뉘었다. 경기중학교는 이른바 ‘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을 겪은 뒤 71년 입시 과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폐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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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이화여고 심슨 기념관 (서울시 중구 정동 32-1)
이화여자고등학교 캠퍼스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15년에 미국인 사라 J. 심슨(Sarah J. Simpson)이 위탁한 기금으로 세워졌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6·25전쟁 때 붕괴되었다가 1960년대 초에 복구하였는데, 남쪽 건물의 외관을 처음 건축할 때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뒷부분은 현대적인 외관으로 처리하였다.
외관을 붉은 벽돌로 지은 철근콘크리트구조의 근대 건축물로,
학교건축의 초창기 서양 건축양식을 도입하였다.
이화여자고등학교는 1886년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창설되어 1887년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재위 1863∼1907)으로부터 '이화학당(梨花學堂)'이라는 학교명을
하사받았다.
건립연도. 1915년 학교건축의
초창기 서양 건축양식 도입
① 심슨홀(Simpson Memorial Hall) 중학과(中學科)와 대학과(大學科)의 창설로
학교체제가 완비되어갈 무렵 학생수가 증가하여 기왕에 있던 메인홀(Main Hall)만으로는 학생을 완전히 수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학당장 프라이(Lulu E. Frey)는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하여 정동 30번지를 구입하였다.
이 터는
1896년에 설치되었다가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폐쇄된 원호국 시종원(侍從院)이 있던 곳이다. 프라이는 미쓰 홀부룩(Miss
Holbrook)이 희사한 기금으로 1914년 착공하여 1915년 3월 준공하였다.
원래 홀부룩의 기금은 그의 동생인 사라
심프슨(Sarah J. Simpson)이 세상을 떠날 때 위탁한 것이기 때문에 이 건물을 심프슨기념관이라 하였다.
지하
1층 지상 3층 석조건물이며 건평은 129.5평이다. 당시 건축의 대부분이 좌우 대칭적인 구성인데 반하여 이 건물은 좌우
비대칭으로 된 특이한 평면의 건축이다. 그러나 1922년 3월, 1960년 7월 2차례 증축하여 지금은 총 건평 639평 2합의
큰 건물로 되어있다.
② 에드가 후퍼기념관(Ralph Edgar Hooper Memorial
Kindergarten Building) 학당장 월터는 독자적인 유치원 건물의 필요성을 느껴 미국의 에드가 후퍼부인(Mrs.
Edgar Hooper)으로부터 기부금 1만원을 받아 이명원(李命遠)으로 하여금 유치원 건물을 짓게 하였다. 1921년 5월 우선
60평의 교사를 건립하고 동년 10월에 40평의 교사를 동년에 증축하여 총 건평 100평의 유치원 전용건물이 완성되었다
한다.
③ 프라이홀(Frey Hall) 프라이홀은 1922년 8월 제5대 학당장 월터가 착공하여
1923년 9월 제6대 학당장 아펜젤러 때 완공되어 프라이홀이라 하였다. 이 건물은 정동 29번지에 184평의 손탁호텔을 구입하여
이 자리에 새 건물을 건축한 것이며 학당장 프라이는 그 직책을 미쓰 아펜젤러에게 물려준 후 건물의 총감독에만 주력하였다. 공사는
중국인 왕공온(王公溫)이, 건축은 미국인 크로(Cros)가 맡았다.
3층이며, 전체 총건평은 716평으로 1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교실 10개, 실험실 3개, 회의실 1개, 식당, 3인의 선교사 선생과 한국인 선생의 숙사, 부엌, 재봉실,
도서실, 사무실, 응접실이 있고 수도 전기 스팀시설이 완비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35년 전문학교가 신촌으로 옮긴 뒤
이화여고에서 사용하다가 1975년 화재로 2 · 3층 474평이
소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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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목동 조양회관(제4호) 대구 동구 효목동 산 234-33
2002.2.28
지정
1922년 붉은 벽돌로 건축된 2층건물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근대적 사회교육시설
조양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대구 지역 독립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으로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회유되기 쉬운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심기 위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1922년 10월 서상일(제헌국회의원) 이 중구
대신동 달성공원앞에 건립한 것을 1984. 6. 9 망우공원내에 이전 복원하였다.
붉은 벽돌로 지은 2층건물로 여기에 쓰인
목재는 압록강에서 가져온 낙엽송 이라고 한다.
`조양'이란 이름에는 `조선의 빛'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공원 사방으로는 백일홍, 목련, 은사시나무 등이 동산을 이루고, 뒤쪽 절벽 아래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지금은
항일 운동 자료 전시실로 꾸며 항일 운동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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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제5호) 대구 중구 대봉동 60-18
본관:1923 강당:1925
본관 정면부를 인조석 박공과 수평돌림띠로 장식한 한국 근대 학교 강당을 현대건축으로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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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山 ;
모교의 본관 건물과 강당이 현재는 후배들이 사용은 안하고 있었지만, 작년 여름방학 때 캐나다 토론토대 김박사와 함께 동문수학하던 모교를
팢았드니 근대문화유산의 등록문화재 5호라는 현판이 본관건물에 붙어 있어서 처음으로 알았으며, 오래도록 보존이 된다는 사실이 참 흐믓하고
기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