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1902년 경복궁

鶴山 徐 仁 2006. 7. 11. 15:00
 
1902년 궁궐

원본 - 關野貞(Sekino, Tadashi), <韓國建築調査報告>, 東京帝國大學, 1904년
번역 - 姜奉辰, <韓國의 建築과 藝術>, 산업도서출판공사, 1990년
1902년 7월, 일본동경제국대학 공과대학 조교수 관야정(關野貞, 당시 35세)은 일본정부의 명령으로 불과 두 달 남짓동안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고조선부터 당시까지의 각종 문화재들을 조사했다.
"한국인은 취미가 부족하여 미술애호심이 없으므로, 귀중한 문화재가 소멸하는 것을 막기위하여 적극적으로 건축조사에 나선다" 고 끔찍이도 걱정해 주었으나, 결국 그가 쓴 보고서는 일제시기 한국문화말살 및 방대한 문화재 수탈에 대한 '카탈로그' 노릇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이 100년 뒤 오늘날에는 한국전통문화 복원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어 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고종이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고 궁을 비운 지 6년이 지난 무렵이다. 1867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했을 때의 모습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어서 관야정은, "황괴(荒壞)하고, 기둥이 기울고, 잡초가 기단을 덮고, 창서(蒼鼠)가 고와(古瓦)에 숨어 있어도 수축(修築)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 라고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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