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100년 전 한국의 모습(호주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鶴山 徐 仁 2006. 7. 11. 15:13
여기 수록된 사진은 100년전 호주의 사진작가 조지 로스(George Rose)씨가 촬영한 사진들로
그의 사진들은 2002년 호한(濠韓)재단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대학로에서 전시 됐으며 작년에는 '1904 호주가 본 한반도'라는 명칭의 조지 로스 사진전 전국 순회전시회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상당히 유명한 사진들이었습니다.

주한 호주대사관과 호한재단은 책에 실린 사진들을 모두 한국의 네티즌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사진의 저작권문제가 복잡해 전부를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호주 대사관은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일부 사진을 도깨비 뉴스가 한국 네티즌들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한재단의 이효진 사무차장은 "이 사진들은 사료로서도 귀중한 사진일 뿐 아니라 한국과 호주의 첫만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서 "사진이 출처 표시 없이 다른 옛날 사진들과 뒤섞여 돌아 다니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도깨비 뉴스는 일단 남대문과 동대문의 사진에 조지 로스씨가 썼던 사진캡션 원문과 이 캡션을 번역 보완한 한글 사진 설명, 그리고 도깨비 뉴스가 처음 올렸을 당시의 사진 설명을 함께 소개합니다.


서울 성벽에서 바라본 풍경. 성벽을 따라가다 보면 남대문이 나오고 그 뒤로 산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성벽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사진 오른쪽으로 보이는 성벽을 쭉 따라가면 남대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 왼쪽으로 통로가 나있는데, 이 통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 상점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 가는 것이 귀찮고 싫었는지, 한 남성이 생명을 담보로 12m 높이의 성벽을 오르고 있다. 친구인 듯한 사람이 위쪽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다.

왼쪽 윗부분을 보면 온실과 작은 원탑이 있는 서양식의 주택이 등장하는데,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G.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지어 1904년 완공한 건물이다. 복층으로 된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지붕 등에서 한국적인 특징을 도입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성벽 양쪽에 자리한 초가지붕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속에서 이 집은 왠지 뻣뻣해 보이고 적당하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아래쪽을 보면 로스가 '부메랑 모양' 이라고 말했던 한국 전통집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이 초가지붕이지만 몇몇 집은 기와지붕을 얹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숲 한가운데에 왕궁과 고위 사제가 머무는 절이 자리잡고 있다" 고 로스는 말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사실을 과장한 것이거나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를 그대로 기록한 것 같다. 오른쪽 맨 끝에 덕수궁과 대한문(대한제국시기전에는 대안문이라고 했다)이 있었으나, 로스가 말한 사찰은 없었다. 남문 위쪽, 왼편에 있는 건물은 러시아 공사관이다

"산을 지나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가면 베이징이 나온다"고 로스는 말했다. 그 바로 아래쪽에는 독립문이 자리한다. 사진 왼쪽 아래에 먹을 거리를 파는 노점이 보인다.


조선말기 또는 일제시대 때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서울 남대문(숭례문) 일원의 모습입니다. 이미 나라를 잃었거나 잃기 직전이겠지만 서울을 감싸안은 북한산과 초가 - 기와집 그리고 성벽 또 아이들의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로와 보입니다.
 
남대문 주위 성벽이 별 훼손 없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리포터는 남대문 주변 성벽이 이렇게 원형대로 남아 있는 사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사진은 남산 쯤에서 촬영된 것 같습니다. 사진에는 지게를 지고 성벽 쪽으로 올라 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벽위에 올라 가 놀고 있는 개구장이들.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사진 아래쪽을 자세히 보면 성벽 위에 사람이 서 있는 듯하고 그 아래 누군가가 성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저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주요 관문. 서울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는데 중요도에 따라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의 탑이 세워져 있다

남대문을 독특하게 찍은 사진이다. 로스는 입체적인 3-D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정면을 똑바로 찍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성벽을 길게 따라가는 앵글로 촬영을 했는데, 특수 장치를 통해 보면 그 효과가 극적으로 강조된다.

이 사진으로는 3-D효과를 확인하기 힘들지만, 문의 양쪽 옆으로 나있는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왼쪽을 보면 지붕 사이의 통행로로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좀처럼 보기 힘든 2층짜리 한옥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앞쪽으로는 상점 주인들이 사는 기와집이 보인다. 길 건너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집들도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사진 아래쪽 그늘 진 곳에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어둑어둑해질 저녁 무렵이면 서울의 주요 대문을 닫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당시 그런 원칙이 점차 변했던 것 같다. 로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즘에는 이 문이 계속 열려있고 그리 비싸지 않은 운임을 내면 탈 수 있는 현대식 전차가 이 문을 통해 운행되고 있다. 원래 전투를 하는 군사들을 위해 총안(銃眼)을 낸 튼튼한 성벽이었지만 이제는 부분 부분 허물어졌다. 육중한 나무문에는 무쇠 장식을 했고 역시 무쇠로 만든 죔쇠를 달았다."

첫 번째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바짝 줌인해 찍은 듯한 사진입니다. 노인들이 남대문에 올라가 담소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길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성벽위에는 긴 나무 기둥 같은 것이 서 있습니다. 전봇대는 아닌 듯 합니다. 전기공사가 시작돼 전봇대부터 세워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서울의 이른 아침 시장 풍경. 여유를 중시하는 한국의 상인들은 손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곤 한다.

시장 상인들은 도시 근교에서 채소를 구해 남대문 안쪽으로 들여와 판다. 사진 뒤쪽에서 남대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상인들은 주로 배추와 무를 팔았다. 거리에 늘어선 노점 중 몇 곳에서는 옷가지를 팔고 있다. 자세히 관찰한다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군인 혹은 경찰과 엿장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는 시장 상인의 지게가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것뿐 아니라 물건 사러 나온 사람들을 위한 진열대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듯하다. 하지만 이 시장은 일본이나 중국의 시장처럼 활기찬 편은 아니라고 적었다.

"꽤 넓은 도로에 시장이 들어선 모습이다. 왼쪽으로는 전차 선로가 보이는데, 전차는 마일당 1파딩 정도의 운임을 받고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쓰는 커다란 밀짚모자인 '방갓'을 쓴 남성을 아래쪽에서 볼 수 있다.

남대문 안쪽의 모습입니다. 장이라도 섰는지 많은 사람들이 배추 같은 채소 지게를 내려 놓고 있습니다. 전봇대가 보이는 것으로 봐 이 사진은 일제시대 또는 해방후 6·25전의 남대문 사진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상투를 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 모두들 흰옷을 입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연대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라고 지적하는 독자들도 가끔 있었습니다.



동대문과 성벽. 성벽은 이미 허물어 내려 근대적인 총기류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다. 이 사진은 성벽 위에서 찍은 것인데, 뒤쪽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시내에서 성벽 밖을 향해 찍었기 때문에 적들이 문을 공격하기 어렵도록 성벽이 반원 모양을 그리며 이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내 중심부에서 이어진 전차 선로가 동대문을 지나가고 있다. 전차는 1899년 이후 5년간 운행을 해 왔지만 성 안팎을 오가려면 여전히 시내의 중요한 문들을 통과해야 했다. 1907년, 문 사이의 벽을 부분적으로 허물어 낼 때까지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운행했다.

문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전차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 오른쪽 뒤편으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전차 회사의 부속 건물과 전차 운영을 위한 사무소로 보인다. 이 장면에 대해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벽 위에 서 있는 젊은이들의 재미난 모습, 아래쪽으로 보이는 버섯 모양의 지붕을 얹은 주택들, 전화선과 전차 전선, 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 등 새로운 문명의 증거를 놓치지 말고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동대문입니다. 역시 아이들이 성벽위에 올라와 있군요. 서 있는 아이는 맨발입니까. 전봇대와 전기줄도 보이고, 성문 앞에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역시 성곽은 뚜렷하게 남아 있군요. 그러나 수원에 거주 한다는 독자 '삼식이'님은 사진에 나오는 곳이 "동대문이 아니고 수원성 서문하고 너무 똑같이 생겼으며 멀리 보이는 산은 수원의 광교산 같다"고 말했습니다.




도시의 문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 모습. 한국의 소년들은 호기심이 매우 강하다. 호기심과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하다. 이 소년들을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외국인 사진가의 낯선 외모와 입체사진을 찍는 카메라에 이중 렌즈 즉, '눈이 두 개' 달렸다는 사실이었다고 로스는 적었다.

로스는 동대문에 올라 서울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을 바라보며 촬영을 했다. 전차 선로는 구부러진 성벽을 따라 이어지다가 동대문을 통과한 다음 이곳에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전차 뒤쪽으로 종이를 파는 가게라는 의미의 '지옥(紙屋)'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길을 따라 다른 상점이 늘어서 있다. 조랑말에 땔감과 다른 짐을 싣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은 사대문과 성벽 밖에 자리한 집들을 찍은 것이다. 외부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서울 중심부에 성벽을 쌓았지만 "인구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면서 성벽 밖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고 성벽은 곳곳이 무너져 이제는 역사적인 경계표로 남게 되었다"고 로스는 기록했다. 또한 그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22만 명에 이르며 그 중 7만5천 명, 즉 도시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성벽 밖에 살고 있다"고 적었다.

로스의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집들은 초가지붕이었지만 조금 형편이 나은 집은 기와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길 끝까지 이어지는 흰 옷을 입은 한국인의 행렬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로스는 덧붙였다. 오른쪽 멀리 중국의 장수 관우를 모시는 사당인 동묘가 나타나는데, 오늘날까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아래쪽으로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로스는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아래쪽으로 일본인 경찰들이 한국인 범법자를 호송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 옆으로 짐을 실은 말도 따라가고 있다.


동대문 성벽에서 성문 밖을 찍은 듯한 풍경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전기줄도 보이고 전차도 보입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일본 관원으로 보이는 검은 옷 입은 두사람이 흰옷입은 사람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체포한 장면일까요? 슬픈 장면이지만 그래도 길 양편으로 늘어선 초가집과 멀리 보이는 산, 멋진 소나무,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위 사진들은 도깨비 뉴스 독자 '하늘소'님이 "조선왕조 말기의 흑백사진 모음집"이라며 제보해 준 것입니다. 사진은 모두 디시인사이드 (
http://dcinside.com/ ) 갤러리에 '흑백세상'님이 올려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남대문 동대문 등 극히 간단한 설명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사진들의 출처에 관한 정보도 없습니다. 위 사진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아시는 분은 리플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00년전 1904년도 서울시 흑백사진을 칼라로 변경
 
 
 
 
 
 
 
 
 
 
 
 
 
 
 
 
 
 
 
 아아 저 남대문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저 집들, 정겨워 보여요 그런데 지금은 엄청나게 넓은 아스팔트가 깔려있죠..
 
서울, 100년전과 오늘

 

1. 서울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
왼쪽 사진은 1904년 조지 로스가 촬영한 사진으로 남산 초입의 성벽에서 남대문을 바라본 풍경이다. 사진의 하단을 보면 어떤 사람이 성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남대문까지 걸어가기가 귀찮아서 성벽을 넘고 있다. 중앙에서 윗 부분을 보면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 건물은 미국 선교사인 호레이스 G.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가 지어 1904년 완공한 건물이라 한다. 이 때의 대부분의 집은 초가로 ㄷ자나 ㄴ자 모양이다.

2004년 11월 28일, 촬영한 사진을 보면 서울 도심의 빌딩이 막혀 인왕산, 북한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한 성벽, 옛 성벽이 있던 자리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변했고, 로또 광고탑, 주차타워 이 시대의 주요 운송수단인 자동차가 보인다.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1살, 15살 아이들이다. 다만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만이 옛 흔적을 말해준다



2. 남대문 풍경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진가 조지 로스는 근대화의 여명기인 1904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조지 로스의 남대문 사진을 보면 2층 한옥 건물이 보이고 앞쪽으로 상점주인이 사는 기와집이 보인다. 아래쪽 그늘진 곳에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당시에는 남대문을 통해 전차가 다녔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백립을 쓰고 있는데, 이는 순종비의 국상기간이라 그렇다.

2004년 11월 28일, 이곳의 기와집들은 모두 헐리고, 남산방향으로 이어진 성곽 대신 백범광장과 남산으로 오르는 넓은 도로가 들어섰다. 100년 전 사람들의 의상이 단순한데 비해 지금은 겨울의 초입임에도 짧은 미니스커트와 세련된 의상이 눈길을 끈다. 일상화된 핸드폰, 밤에 도 남대문을 밝혀주는 조명장치, 관광버스, 시내버스, 승용차의 모습, 하늘을 가리는 고층빌딩이 21세기 거대도시 서울을 말해주고 있다



3. 동대문 풍경
1904년의 사진은 성벽 위에서 찍은 것인데, 뒤쪽 동대문운동장 방향으로 성벽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종로를 지나온 전차 선로가 동대문을 지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전차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이라 고 한다. 동대문 오른쪽 뒤편으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전차 회사의 부속 건물과 전차 운영을 위한 사무소로 보인다고 로스는 전하고 있다.

2004년 11월 28일, 동대문(흥인지문)은 보수공사중이였다. 아이들이 서 있는 곳은 가정집이라 성벽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깔끔하게 보수된 성벽은 낙산으로 이어지고, 북한산으로 이어진다. 1904년의 주요 운송수단이 지게, 말, 전차 등인데 비해 지금은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지하철, 버스, 승용차, 화물차로 대체되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어떤 운송수단이 주를 이룰까 궁금하다



4. 서울 탑골공원 풍경
1904년에 촬영한 조지 로스의 사진을 보면 원각사탑 뒤로 남산과 1898년에 세워진 명동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탑의 상층부 3층이 바닥에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1946년 2월 17일과 18일 양일간에 걸쳐 당시 한국에 진주해 와 있던 미군(美軍) 공병대에 의하여 기중기로 위로 올려져 원래의 형태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원각사탑은 박제동물처럼 유리관에 싸여있다. 거대 도시의 대기오염이 가져온 산성비, 비둘기의 배설물로 손상이 심해 1999년 통유리관으로 둘러씌웠다. 서울 도심의 빌딩숲에 가려 명동성당은 커녕, 남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어 갑갑하다. 2004년 사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15세의 아이들이다



5. 서울 탑골공원 대원각사비
이 대원각사비는 세조 재위(1471년)시에 원각사 창건 내력을 적은 비석이다. 원각사는 불교배척 정책을 폈던 연산군에 의해 원각사는 1504년에 폐사되었다.
비문의 앞면은 김수온(金守溫)·성임(成責), 뒷면의 추기는 서거정(徐居正)·정난종(鄭蘭宗)이 각각 짓고 썼다고 한다. 비신을 받치고 있는 귀부(거북)는 땅(음)을 상징하고, 비신의 머리 즉 이수(용)는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2004년 11월 28일, 대원각사비는 전각안에 모셔져 있고, 귀부는 땅에서 60cm 정도 아래에 있다. 이는 탑골공원을 정비하면서 지면을 돋우었음을 말해준다. 탑골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그대로이나 그 뒤 기와집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건물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출처 : http://www.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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