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빈 집 - 문태준

鶴山 徐 仁 2006. 7. 1. 18:26


빈 집 - 문태준 빈집 1 흙더버기 빗길 떠나간 당신의 자리 같았습니다. 둘 데 없는 내 마음이 헌 신발들처럼 남아 바람도 들이고 비도 맞았습니 다. 다시 지필 수 없을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으면 방고래 무너져내려 피지 못하는 불씨들 종이로 바른 창 위로 바람이 손가락을 세워 구멍을 냅니다 우리가 한때 부리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지은 그 기억의 집 장대바람에 허물어집니다 하지만 오랜 후에 당신이 돌아와 서 나란히 앉아 있는 장독들을 보신다면, 그 안에 고여 곰팡 이 슨 내 기기다림을 보신다면 그래, 그래 닳고 닳은 싸리비를 들고 험한 마당 후련하게 쓸어줄 일입니다. 빈집 2 지붕위로 기어오르는 넝쿨을 심고 녹이 슨 호미는 닦아서 걸어두겠습니다. 육십촉 알전구일랑 바꾸어 끼우고 부질없 을망정 불을 기다리렵니다. 흙손으로 무너진 곳 때워보겠습 니다 고리 빠진 문도 고쳐보겠습니다 옹이 같았던 사랑은 날 좋은 대패로 밀고 문지방에 백반을 놓아 뱀 넘나들지 않게 또 깨끗한 달력 그 방 가득 걸어도 좋 겠습니다 빈집 3 이 방은 이물스럽다 저녁이 이울고 구석서부터 물오르는 소리들의 구근 장판 걷혀진 구들장으로 불기둥이 훅 지나간다 흔적은 얼마나 관능적인가 까마귀가 내려앉은 부적 위를 지나, 퉁퉁한 거미 문설주 저켠으로 금줄을 친다 처마 밑 망태까지 차올라 밤새 둥근 알을 낳는 닭의 難産 낡고 해져 이 집 흙담처럼 기울어도 검은 가죽나무에 터잡은 마음 다잡으면 빈집은 화려하다 소리들의 구근을 씹을수록 아, 떠나간 자의 이 파한만장함. 첫사랑 - 문태준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았던 사람 내 광대뼈가 불거져 볼 수 없네 이지러지는 우물 속의 사람 불에 구운 돌처럼 보기만 해도 홧홧해지던 사람 그러나, 내 마음이 수초밭에 방개처럼 갇혀 이를 수 없네 마늘종처럼 깡마른 내가슴에 까만 제비의 노랫소리만 왕진 올 뿐 뒤란으로 돌아앉은 장독대처럼 내 사랑 쓸쓸한 빈 독에서 우네
출처 : 오늘이 마지막이듯
글쓴이 : 표주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