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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1일 취임 104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7대 총선직후인 2년전에도 의장직에서 사퇴한 적이 있지만, 박수를 받으면서 대권수업을 받기 위해 당을 떠났던 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여당 사상 최악의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기약 없는 ‘백의종군’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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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여간의 회견문을 낭독한 정 의장은 기자들과 문답도 없이 퇴장해 곧바로 승용차에 올랐다. 염동연(廉東淵) 사무총장, 박명광(朴明光) 비서실장, 우윤근(禹潤根) 수석비서부실장, 김낙순(金洛淳) 수석사무부총장, 박영선(朴映宣) 대변인 등이 정 의장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정 의장은 이날 시내 한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취임 직후부터 하루도 쉬지않고 전국을 순회해 육체적으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 의장은 허리통증과 기침증상으로 잠을 못 잘 정도라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입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정 의장은 육체적인 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주변에서는 정 의장이 차기 대권도전 여부도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 대권의 꿈을 접은 단계는 아니지만, 자신의 정치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성찰할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의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7.26 재보선에서 서울 성북을 등에 재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도 떠돌지만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선거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지 한달만에 다시 나타나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모양새가 좋아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정 의장이 대권도전을 포함한 정치일정 조정 가능성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생 11년만에 처음으로 좌절감을 맛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 의장은 정계입문 이후 수직상승만을 거듭해 왔다.
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영입된 정 의장은 전주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면서 화려하게 정치인생의 스타트를 끊은 뒤 대중적 인기를 자양분으로 ‘성공시대’를 구가했다.
국민의 정부 중반 ‘권력의 2인자’였던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을 겨냥해 정풍운동을 펼치면서 동교동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그것은 위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성장의 발판이었다.
정 의장은 또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으로 위기를 자초했지만, 비례대표직 포기라는 카드로 정면돌파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 의장은 거대한 민심의 벽 앞에 선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정 의장은 2.18 전당대회 당시만 하더라도 “올 봄 개나리꽃이 필 무렵 우리당 지지율 1위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 “5월31일 지방선거 출마자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빨간 장미꽃을 달아드리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선거 막판에는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읍소를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같은 좌절감은 정 의장이 당내 중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결심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전날 밤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을 만나 “내가 십자가를 쥐고 갈 테니 김 최고위원이 당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이번 시련을 이겨낸다면 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 그의 향후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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