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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강인선칼럼] 백악관과 하버드 '두개의 실패'

鶴山 徐 仁 2006. 3. 10. 19:52
▲ 강인선 워싱턴 특파원
“보스턴에 가서 똑똑하다 자랑 말고, 워싱턴에 가서 힘있다고 뽐내지 마라.”

미국에서 보스턴은 ‘지성’을, 워싱턴은 ‘권력’을 상징하는 도시다. 미국은 물론 세계를 지배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인재들이 몰려 있는 이 두 도시에서 5년 전 새 지도자가 탄생했다.

제43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제27대 하버드대 총장 로렌스 서머스.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대통령의 아들은 대통령이 됐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두 명이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경제학자의 아들은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리다가 하버드대 총장이 됐다.

미국 최고(最古)의 대학이자 세계에서 가장 돈 많고 유명한 학교인 하버드대 총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후보에 이름만 올라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선망의 자리다. 임기 걱정 없이 소신껏 일하면서 하버드의 앞날은 물론 미국의 고등교육기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목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1년 워싱턴과 보스턴에서 부시와 서머스는 21세기를 여는 첫 지도자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로부터 5년 후 워싱턴에서 부시는 지치고 외로운 낙제생이 되고 말았다. 재선 관문은 통과했지만 요즘 40% 아래를 맴도는 지지율은 올라갈 줄을 모른다.

부시 대통령은 인도로, 파키스탄으로 뭔가 ‘성과’를 올려보려고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고 있다. 마치 테러 대비와 이라크전 수습이라는 그의 본과제에 진전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다른 일을 만들어내는 듯한 인상이다. 부시 정권이 언급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공포는 ‘이라크 상황이 더 악화돼 완전히 내전상태에 빠지는 경우’이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를 떠받치던 딕 체니 부통령과 칼 로브 정치고문 등이 리크게이트의 여파로 힘을 잃기 시작한 후 부시 대통령은 왠지 간신히 버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보스턴에서 서머스는 더 참담하게 실패했다.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지도자감’, ‘하버드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과거의 찬사가 오히려 그의 실패를 더 돋보이게 했다. 서머스가 변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교수들은 ‘서머스 저항세력’이 되었다. 여성들의 과학 연구능력에 대한 그의 성 차별적 발언으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지난달 말 서머스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부시와 서머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서 태어났고, 미국 동부의 명문 학교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부시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서머스는 MIT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시는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계속된 호황으로 포동포동해진 경제를 물려받았고, 서머스는 전임 닐 루덴스타인 총장이 7년 동안 공들여 모은 기름진 대학기부금을 물려받았다. 그 시점에서 하버드가 보유한 기금은 인구 1200만명인 에콰도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았다.

지도자로서 두 사람의 탄생방식은 달랐다. 부시는 ‘광장’에서, 서머스는 ‘밀실’에서 태어났다. 부시는 미국 사회가 1년간 대선 캠페인이라는 축제와 몸살을 동시에 앓으면서 도달한 ‘보통사람들의 공개적인 선택’이었다. 반면 서머스는 하버드의 총장선임위원회가 아홉 달 동안 동문과 각계 인사 30만명에게 후보 추천을 받아 선정한 300명의 후보를 직접 인터뷰하며 고심한 끝에 찾아낸 ‘엘리트들의 비밀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5년 후 보통사람들의 선택은 낙제점을 받았고, 엘리트들의 선택은 실패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도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없는 정부와 3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내고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대학. 워싱턴과 보스턴은 모두 새로운 위기의 본질을 읽어내고 대응하는 리더십을 키워내는 데 실패한 셈이다.

강인선 워싱턴 특파원 insun@chosun.com
입력 : 2006.03.05 21:28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