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注: ‘무진기행’은
1964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아랫 글은 소설의 일부로 소설가 金埈成씨가 名文으로 추천한 부분이다. 金씨는 이 부분을 발췌한 이유를, “무엇
때문인지 모를 끝없는 불안, 방황, 머뭇거림, 부끄러움 등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와의 대비를 통해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암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恨(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女鬼(여귀)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