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이라? 고흥에는 소록도가 있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슬픈 사연을 간직한 섬,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 어젯밤 챙겨 놓았던 한하운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충격적으로 만났던 그 시. 전라도 길 - 소록도로 가는 길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낯선 친구 만나면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신을 벗으면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많은 이들은 고흥을 다녀와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곳', '아름답지만 왠지 모르게 슬픈 곳'이라고들 얘기한다. 그 이유는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땅 한쪽에 '하늘이 내린 벌'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때 천형(天刑)도 모자라 인형(人刑)까지 받아야 했던 그 가혹한 삶의 역정이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흥의 이미지를 꼭 소록도로만 붙잡아 두고 비감에 젖지는 마라. 인간사의 비애를 넘어 고흥의 자연이 우리에게 해주는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므로. 아름답지만 슬픈 섬, 소록도 전라남도 고흥은 고홍반도와 그 주변에 널린 섬들(유인도 23개, 무인도 47개)로 이루어졌다. 고흥의 섬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그 가운데서도 소록도와 나로도를 대표로 꼽는다. 소록도는 고흥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녹동항 앞바다에서 약 6백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작은 섬이다. '작은 사슴 섬(小鹿島)'이라는 그 이름 그대로 작고 예쁜 섬이지만 나병(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눈물과 피땀이 배어 있는 '슬픔의 섬'이기도하다. 녹동항에서 배를타면 고작 5분안에 닿을 수 있는 소록도는 지상낙원으로까지 불리는 중앙공원, 송림에 둘러싸인 해수욕장, 선창의 등대 등 남국의 정서를 짙게 풍긴다. 그러나 이런 모습 뒤에는 소록도 사람들의 아픈 사연이 있다. 일제 때 소록도 병원이 생기면서 일본인들은 환자들을 강제동원하여 땅을 파고, 섬 일주도로를 뚫고, 공원을 만들게 했다. 섬의 모습은 천국처럼 변해 갔지만 환지들에겐 지옥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못해 나무토막을 껴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공원 한가운데는 완도에서 끌어다 놓은 커다란 바위가 있다.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라는 별명이 있는 이 바위는 목도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 죽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이곳 병원의 원장이던 일본인 '슈호'는 1942년 자신의 동상 앞에서 환자들의 사열을 받다 한 환자의 칼에 맞아 죽었다.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없는 환자가 쇳조각을 갈아 칼을 만들어 팔뚝에 붕대로 동여맨 채 '슈호'를 찔렀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소설화한 것이다. 지금은 '슈호'의 동상 대신에 구라탑(救癩塔)이 세워져 있고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에는 한하운의 시「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나로도의 해안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두섬 모두 물과 다리로 이어져 승용차로 건너갈 수 있게
됐다. 외나로도 주변은 전라남도 5대 어장의 하나로 꼽힌다.
나로도엔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세 군데나 있다. 외나로도 신금해수욕장은 3km나 되는 백사장주위로 노송이 3백여 그루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졌다. 내나로도의 덕흥 해수욕장 역시 그 못지 않다. 일주도로를 달리다보면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다도해가 무척이나 보기 좋다.
고흥반도에서 가장 높은 팔영산 북서쪽 기슭에는 '능가사' 라는 절이 있다. 이 절은 천오백
년 전 신라의 아도화상이 세워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대사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 하여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능가사 사천왕문, 대웅전, 응진전은 모두 정현대사가 절을 중창할 때 지었다. 특히 대웅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폿집으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고흥은 '가도 가도 천리 길' 일만큼 '먼전라도 길' 이지만 한번 갔다 오면 마음 속에 '만리'의 추억을 담아올 수 있는 '가까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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