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중국, 미국 등에 가야만 입이 떡 벌어지는 자연 경관이 보이는
건 아니다. 한반도에도 외국 못지 않은, 인간이 태어나기 수억 년 전부터 켜켜이 쌓인 절경이 있다.
한반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지형 영월 선암마을
선암마을은 맑은 강물이 석회암을 깎아내 만들어진 지형으로 한반도 지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하며 한적한 강마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아는 이들만 알음알음 찾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여전히
훼손되지 않은 아득한 옛날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평창강 건너편에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긴 바위 절벽이 있는데
겨울에 쌓인 눈꽃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 아름답다. 강 언덕에는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지도 길게 펼쳐져 있다. 선암마을에는 옛
교통 수단인 줄배가 있어 이를 타고 푸른 강물을 건너며 고즈넉한 강촌 풍경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한반도를 축소해 놓은 듯한 지형을 보려면
오간재 전망대로 올라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삼척 통리협곡
지질학자 사이에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협곡. 그랜드캐니언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생성 과정이나 지질 특성이 비슷하다. 삼척시 오십천의 상류 물줄기가 1만여 평의 고원을 지나가며 V자 모양의 깊은 골을 파놓은
것. 길이는 약 10km, 가장 깊은 골은 270m에 이른다. 이름은 태백시 통리에서 땄지만 행정 구역상 위치는 삼척시에 속한다.
협곡 위쪽의 미인폭포의 풍취도 남다르다. 30m 높이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듯
흘러내리는 우람한 폭포로 앞에 서면 예사롭지 않은 풍광에 압도된다. 물줄기 아래쪽의 산기슭은 수직의 붉은 바위벽. 이끼조차 끼지 않은 발가벗은
바위벽이 시루떡을 잘라놓은 것처럼 지층 구분이 선명하다. 협곡 탐방은 내리막에서 시작한다. 가파른 비탈에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다. 200m
남짓이지만 굽이진 길을 가느라 10분이 넘게 걸린다.
1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형상 부안 채석강
당나라의 시성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 해서 같은 이름이 붙여진 곳. 마치 1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이것은 바닷가에
우뚝 서 있는 절벽의 단층이 마치 책처럼 보이는 것. 6억 년 동안 흙이 다져져 화강암, 편마암이 되면서 각기 다양한 층을 만들어냈다.
채석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적벽이 나오는데 붉은빛을 띠고 있다. 역시 중국의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다는 적벽강과 흡사한 모양.
공포와 신비를 동시에 맛본다 해남 울돌목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대파한 곳으로 명량해협이라고도 부른다.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의 속진 사이의 가장 협소한 해협으로 현재는 해남에서 진도로 넘어가는 진도대교 바로 옆에 자리한다. 이 지역은 넓이가 325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20m, 유속은 11.5노트에 달해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로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흐른다.
이렇게 빠른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퉁겨나오는 소리가 20리 밖에서까지 들린다고
한다. 그 소리가 꼭 우는 소리처럼 들려 울돌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해 시간에 따라 바다 모양이 변한다. 휘돌아 치는
물살이 블랙홀을 연상하리만큼 강력해 공포를 느끼지만 동시에 신비하고도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신비한 연못의 고목 청송 주산지
물 위에 마른 나무가 떠 있는 이상한 연못. 몸뚱이는 물 밖에 내놓았지만 뿌리는 물
속에 깊이 박혀 있다. 주산지는 주왕산국립공원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인공 연못이다. 둘레 1km, 길이 100m의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로
거의 300년간 신비를 머금고 있다. 연못 북쪽과 동쪽 가장자리엔 수령 100년도 넘은 왕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에 잠긴 채
자란다.
가지가 축축 늘어진 여느 버드나무와 달리 하늘을 향해 가지를 꼿꼿이 뻗은 모습.
물안개가 아스라이 깔리는 새벽녘엔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신비함이 극치에 달한다. 인공 연못이지만 느낌만은 원시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연못 같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목을 빼고 있는 왜가리 형상 당진 왜목마을
서해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 그리고 월출까지 볼 수 있는 마을. 이는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해안이 동쪽을 향해 돌출해 있고 인근의 남양만과 아산만이 내륙에 깊이 자리하여 마치 왜가리의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모습 때문에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순간 바다를 가로지르는 짙은 황톳빛 물기가 사뭇 서정적이다.
한여름 계곡의 빙하 밀양 얼음골
삼면이 절벽, 북쪽은 돌밭인 얼음골은 뾰족한 뿔 모양의 틈새에서 여름 내내 냉기가
흘러나와 8월 초순부터 얼음이 생긴다. 이에 반해 겨울에는 그 틈새에서 더운 김이 올라오는 묘한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탈루스(Talus) 지형에서 나타난다. 여름철 돌밭 위쪽 바위 틈새로 들어온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가 돌 더미 내부에서 냉각돼 차고 습한 공기로
변한 후 어는 것.
말의 귀를 달아놓은 산 진안 마이산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마이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쪽 봉우리가 667m의 수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673m의 암마이봉이다. 모래, 자갈 등이 물의 압력으로 굳어서 만들어졌는데 땅이
솟아올라 지금의 마이산을 이루었다. 수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에 놓인 448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 중턱에서 약수가 솟아오른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끼인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가 경관을 이룬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며 사계절을 다른
아름다움으로 채운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벚꽃축제가 열린다.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들고 억새가 물결을 이룬다.
산 전체가 바위 덩어리산 전체가 바위 덩어리 서울 도봉산과
북한산
서울 근교의 대표 명산인 도봉산과 북한산은 머리에서 뿌리까지 거대한 돌덩어리
자체다. 마치 형제처럼 우이령을 기준으로 사이좋게 남북을 가른다. 위엄을 갖춘 산의 자태와 돌 틈의 푸른 생명체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도봉산의 만장봉, 선인봉, 북한산의 백운대와 상장봉 등의 수려한 봉우리가 압권이다. 2억 년 동안 마그마가 분출했다가
식고 다시 분출을 거듭하면서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기 때문.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산이지만 등산객은 비와 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을
겪어내며 조각된 둥글고 뾰족한 기암괴석의 매력에 빠져든다. 최근에는 암벽 등반지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물이 그림을 그린 돌더미 가평 명지천계곡
서울 근교에서 물의 흐름이 지닌 위대한 힘을 만날 수 있는 곳. 명지산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바위 덩어리를 오랫동안 깎아내면서 만들어졌다. 지리학계에선 이런 현상을 스트림 파워(Stream Power)라고 한다. 더불어
항아리바위라고 하는 돌 구멍도 볼 수 있다. 지름 30cm, 깊이 50cm 정도의 구멍이 곳곳에 나 있어 장관을 연출한다.
물이 빠지면 천연 비행장 백령도 사곶
백령도 용기포 부두의 남서쪽과 남동쪽 해안에 있는 모래밭. 사실은 모래가 아니라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만들어진 해안이다. 썰물 때면 길이 2km, 폭 200m의 천연 활주로가 나타난다. 이곳의 규암 가루는 크기가 작고
틈도 작아 매우 단단하게 굳어 있다. 마치 콘크리트 바닥 같아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비행기 활주로로도 사용된다.
큰 화채 그릇을 닮은 분지 양구 펀치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움푹 팬 지형. 해발 400∼500m에 자리한 타원형의
분지로, 화채 그릇 같다고 해서 ‘펀치볼’이라 부른다. 운석과 충돌했거나 지각이 침식돼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탄생의 비밀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하다. 움푹 팬 지형에는 해안면의 여섯 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을지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분지 풍경이 가장
장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