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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 Hymn

[스크랩] 구주의 십자가 보혈

鶴山 徐 仁 2006. 1. 5. 22:48
구주의 십자가 보혈

 


골로새서 1장 9절 - 23절


  오늘은 구주의 십자가 보혈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13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사람은 죄 중에서 태여 나서 죄 중에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죄로 인하여 죽고 멸망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그 죽으심을 믿는 사람은 죄가 사하여짐을 받는 법을 정하시고 구속하시고 죄 사함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이미 사랑의 아들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믿게 하여 주시고 죄 사함을 받은 자로 천국 시민으로 살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지구상에 이렇게 죄 중에 섞여 살아도 우리의 신분은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내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가고 싶은 나라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지만 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한국 보다 잘사는 나라에 가려면 많은 제약과 수속과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중국에 있을 때에 중국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아주 부러워합니다.  어느 나라나 마음대로 다니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하며 중국 시민권은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우리보다 못사는 북조선에나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시민권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언제고 하늘나라에 무사증으로 자기 나라에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입국 비자가 없는 사람은 입국이 거절되어 다시 되돌려 보내지는 일, 추방당하는 일을 당하듯 천국 입국 비자가 없는 사람이나 천국 시민이 아닌 사람은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시민권 취득을 하는 세 가지의 법령을 만들고 이를 지키면 시민권을 받게 하는 은혜의 법을 주셨습니다.


1. 주 예수를 구주로 믿어야 하는 법입니다.

  디모데 전서 4장 10절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救主라는 말은 나를 구하여 주는 임금을 구주라고 말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신뢰하는 것이 나의 구주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 있고 돈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 있고 명예와 권력이 구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직 하늘나라는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는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자기를 구하여 줄 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귀신을 구주로 삼고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이 잘되어야 내가 구원을 받을 것으로 알고 있는 자식이 구주인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술이나 기호품이나 마약이 자기의 구주로 삼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참 열애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의 구주가 되어 세상의 다른 것 모두 없어도 그이 하나만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애인이 구주인 것입니다.

마태 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보다 재물을 더 귀하 여기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는 일을 거절하고 예수님의 염려를 받은 청년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주로 삼고 있는 것은 현재에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나의 구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삼고 예수 아니면 못살고 예수를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사는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십자가를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십자가는 희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가. 십자가는 죽이는 형틀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하는 사형 도구입니다.  십자가에 오래 달려 있어도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나의 옛 사람도 역시 예수와 함께 못 밖아 죽인 것입니다. 

나의 죄인 된 나가 십자가에 함께 죄 값으로 죽은 것입니다.

  물론 그때에는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어떻게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가 하는 반문을 많이 받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나도 함께 옛사람이 죽었다고 믿는 사람은 죄의 몸이 이미 죽은 자입니다.  이미 한 번 죽은 자이나 다시 죄의 값으로 죽을 필요가 없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으로 마귀의 죽음의 권세를 초월하여서 다시 죽음이 없는 영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은 과거의 죄의 종이 아닌 의인인데도 왜 자꾸 죄를 지으면서 현재에도 살게 되는 가하는 문제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신앙생활은 날마다 하는 것이요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며 날마다 자기가 죽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잠을 자는 것은 날마다 내가 죽은 순간과 같은 것입니다.

  아침에 깨어나면 오늘 하루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더 살게 하였구나 하며 감사의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죽다가 언젠가는 365 X 80 = 29,200 이 되는 날이나 3만 날이 못되어 아주 죽어 다시 깨어나지 못하는 날이 반드시 당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가 죽는 것은 날마다 내가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죽고 날마다 의롭다 함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죄와 저주와 질병과 고민을 함께 지시고 내 대신 죽으심을 믿고 나의 모든 죄, 저주, 질병과 고민을 다 주님께 대신 담당시키고 나는 죄에서 자유, 저주에서의 자유, 질병에서의 자유, 고민에서의 자유를 누리며 기쁨과 강건과 의로움과 잘되는 일로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 복음 8장 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십자가는 대신 죽고 대신 담당하신 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과 감사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은 사람이므로 신경질 날 일도 없고 질병이 생길 수도 없고 저주와 고민의 문제가 있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아무런 감각이 없고 죽은 사람은 질병도 없고 죄를 짓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내가 죽지 못하고 살아 있으니 죄를 지으며 문제를 만들고 질병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늘 내가 죽습니다.  함께 죄와 질병과 문제와 저주도 죽게 하여 줍소서하는 마음의 기도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의 은혜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항상 나는 날마다 죽으면서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 예수와 함께 죽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문제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지 못하고 내가 십자가에서 살아보겠다고 소리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문제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결코 들어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임을 알고 날마다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죽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십자가는 고통이 심한 곳입니다.

십자가에 못박여 달리면 고통이 극심합니다.  양손과 발에 박힌 못에 찔린 고통도 심하고 체중이 찢어진 살을 더 끌어내림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잔인한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 사형 법입니다.  예수님은 6 시간을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을 당하다가 운명하였지만 체력이 강한 사람들은 며칠씩 달려서 고통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뙤약볕 아래 물도 먹을 수 없고 손발도 움직일 수 없는 그 고통은 끔찍한 것입니다.

칼에 목이 잘려 죽는 것은 순간적인 고통도 겪지 못하고 총살당하는 것도 역시 고통을 모르고 죽는 일이지만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은 인간으로 당하는 최고의 고통과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의지하고 사는 일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고 지속적인 고통을 당하는 십자가의 고통이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겠다는 것은 말로는 상당히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십자가의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목사로써 십자가를 지고 목회를 예수님과 같이 날마다 하는 일도 상당히 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더구나 십자가는 육신의 고통도 크지만 정신적인 고통 또한 큰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당한 고통은 당하여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예수를 믿으면 장사도 잘되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하고 내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고통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고 국가에 무슨 변란이 있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먼저 붙잡혀 죽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많이 보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도 예수를 믿는다는 일 한가지로 순교의 죽음을 당하여야 하였고 중국의 공산당들도 문화 혁명 당시에 예수를 믿는 다는 한 가지 이유로 투쟁을 받아야 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는 심한 영혼육의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으로 바르게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십자가의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이 고통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지 않으면 십자가의 승리, 부활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히 하늘의 천군 천사 12 영을, 12개 사단을 동원하여 얼마든지 세상을 멸할 수가 있었고 십자가에서도 얼마든지 뛰어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참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며 죽으신 것은 십자가의 승리, 십자가 뒤에 있는 부활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며 날마다 죽지만 이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함임으로 우리는 끝까지 참고이기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 십자가는 수치스럽습니다.

  십자가에 달릴 때에는 옷을 모두 벗겨 버리어 못 박아 높이 달아 놓음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부끄러운 곳을 볼 수 있는 수치스러움을 당하다가 죽게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는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는 당하게 하지만 우리는 이를 개의치 말고 참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담대히 믿음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1966년도에 중국의 문화 혁명이 났을 때에 연변의 용정시 구역 안에 노투구라는 곳이 있습니다.  노투구 교회의 노 권사는 당시 젊은 집사로 교회가 폐쇄되고 예배당 문을 못 질 당하여 예배당에 들어 갈 수 없자 주일날에는 예배당 문앞 마당에 꿇어앉아서 예배를 혼자 드립니다. 

  이때에 홍위병들이 노 집사를 발견하고 붙잡아다가 투쟁을 합니다.  머리에는 고깔모자를 씌우고 “예수쟁이” “미신 쟁이”라는 글자를 씌우고 앞가슴과 뒷가슴에도 같은 푯말을 크게 달아 붙이고 밧줄로 묶고 온 시가지를 끌고 다닙니다.

  이때에 철모르는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욕을 하며 침을 뱉습니다.  돌이 사방에 맞아 피를 흘리지만 이를 참고 묵묵히 부끄러움을 참습니다.  노 권사님이 필자에게 간증하기를 그 때에 돌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하나님께 두 가지가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돌이 머리에 맞지 않은 것이고 두 번째로는 돌에 맞아 피를 흘려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던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간증을 합니다. 

  그 후에도 계속 주일에는 그러한 부끄러움을 당하여도 매 주일 예배 시간에는 예배당 마당에서 혼자서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릴 때에 같은 투쟁을 하고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네 거리에 고깔모자를 씌워 두고 팻말을 앞뒤에 달고 길거리에 서 있게 하여 부끄러움을 줍니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당하여도 십자가를 지고 계속 나갈 때에 공산당도 이 사람은 진짜 예수쟁이다 하고 후에는 예배를 혼자 드리게 하여 문화 혁명이 끝날 때까지 예배당을 지킨 노 권사임이 지금도 노투구 교회에서 교회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져다가 주지만 이를 참고 담대히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보좌 우편에 앉혀 주시는 영광을 이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죽음을 당한 후에 주시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18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를 흘리면 생명이 끊여지고 죽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소나 양이나 비둘기가 대신 피를 흘리며 죽어서 그 짐승의 피로 죄 씻음을 받은 것이지만 오늘날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피를 내가 믿음으로 나의 죄를 씻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 것이 당연한데 소나 양이 내 대신 피를 흘려 죽었으니 나는 죄를 사함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죄가 없으신 분이 피를 흘려 죽으셨으니 그 분이 내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죽었다고 믿기만 하면 나는 죄 사함을 받는 간단하고 쉬운 믿음의 법을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가 강씨라는 사람에게 돈을 1만 딸라를 빌려주었다가 그 사람이 떼어먹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강씨의 친구가 이 사실을 알고 내게 1만 딸라와 그 동안의 이자까지 다 계산하여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강씨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전 같으면 내 돈을 떼어먹은 놈아 하고 붙잡아 고발할 수 있었는데 이미 대신 돈을 받았음으로 나는 강씨를 고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이미 나도 모르게 나의 죗값을 이미 치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우리는 죄인이 될 수가 없고 오히려 예수님께 감사와 고마움을 끊임없이 말하여야 인간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이 내 대신 죗값을 지불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가장 근본 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다시 죗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 오늘 지은 죄, 내일에 실수로 지을 죄 등 모든 죗값을 주님이 이미 지불하였음을 믿고 담대히 의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항상 빚진 자같이 쫓기며 도망 다니며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가 어떻든 예수의 피로 나를 Paint 칠 하면 하나님은 깨끗하다고 말하시고 나의 과거를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지 못하는 일 하나 가운데는 예수의 피를 멸시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으면 내복이 어떻든 사람들이 나를 상당히 깨끗하고 청결한 사람으로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예수의 보혈의 옷을 입은 사람은 성결하고 의롭게 보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으려면 내가 죄인임을 먼저 인정하여야 합니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고상하게 의롭게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임으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 심판을 받고 죗값으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의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죄인이 가는 곳이요 지옥은 예수를 안 믿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세상에는 영생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고 천사가 영생하고 사람이 영생합니다.  지옥에 가서 고통 속에 영생할 일을 생각한다면 끔찍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의지하고 힘입어서 죄 사함을 받은 의인이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영생하는 천사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천사는 지금도 하나님의 천사로 있고 반역한 천사는 마귀로 있습니다.

  영생하는 사람도 역시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자유 의지가 있음으로 예수를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종교의 자유를 예수를 안 믿을 자유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선교를 할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오늘 믿다가도 내일 안 믿을 자유가 있다고 종교국에서 교회에 와서 성도들을 그렇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자유가 있으면 그 자유로 인하여 행동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은 은혜에 참례한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정리: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면서 그 분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론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 째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신앙을 지키는 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내가 십자가를 지고 있는 한 죽기 전에는 당연히 당하는 고난임을 알고 참고 이 후에 오는 부활 영광을 바라보고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셋 째로는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나를 구속하고 나의 죄를 씻어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를 주장하며 담대하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있는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에서 영생할 부활 생명을 누릴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예수를 구주로 섬기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나도 지고 그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담대하게, 감사함으로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믿고 십자가를 매일 지고 구주 예수를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최후의 승리를 얻는 부활 생명을 누리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가 다락방 성령 강림

은혜가 금식 기도 할때 찍은 구름 사진

예수 십자가

지옥

성도의 영광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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