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밥솥 / 차영섭 처마 끝자락에 고드름은 햇살에 빛나고 있었지만 우리 어머님 얼굴은 쇠밥솥처럼 까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아궁이 턱에 걸터앉아 왠수 놈 무우 썰어 한 솥 채우고 쌀 보리를 싸리눈처럼 얇게 깔아놓던 무우밥이란 거. 먹으나 마나 한 밥이었으니 우리 어머님 얼굴에 핏기 잃을 수 밖에요. 새까만 보리쌀에 물 잔뜩 붓고 쌀 한 주먹 임금 모시듯 올려놓고서 불 지피면 이게 때굴때굴 굴러다니는 보리밥 아닙니까. 까맣게 째어진 보리쌀 모양새가 꼭 어머님의 슬픈 눈동자 같았습니다. 그러다 밀가루 배급 있는 날이면 노란 호박 한 솥 삶아 풀어놓고서 밀가루 반죽 뚝뚝 떼어 던지면 호박죽이 됩니다. 이런 날은 어머님 얼굴도 호박처럼 푸짐하게 보였었지요. 무슨 밥을 하시더라도 모자랐을 밥 긁어모아 까만 쇠밥솥 뚜껑을 열면 내 밥 한 그릇은 꼭꼭 있었습니다. 땡그랑 밥솥 뚜껑 소리 그립던 그런 시절에 그늘지신 우리 어머님 얼굴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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