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석조여래좌상
이곳에는 최근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에서 가까운 곳에 마모가 심한 석조여래 조상이 있다.
전하는 바로는 이곳이 현진건의 역사소설 '무영탑'에 나오는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어려있는 영지와 아사달이 아사녀를 생각하며 다듬었던 석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쳤던 영지는 불국사 청운교백운교 앞의 구품연지(九品蓮池)를 말하는 것이다. 이곳 영지는 조선 후기 내지 일제시대에 잘못 전해진 것 같다.
석조여래좌상이 팔각의 중대석과 복련 하대석 그리고 앙련 상대석이 있는 연화대좌 위에 앉으신 것으로 보아 석굴암이 만들어진 직후인 8세기 말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800년 이후의 연화대좌에는 중대석에 호법신이나 보살상 등의 조각이 나타난다.
<영지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에는 스케일이 크고 볼륨감도 남아 있어 700년대의 조각기법이 조금씩 엿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조각기법은 다소 약화되었고 광배 등에서 무늬가 약화된 느낌을 주므로 시대는 다소 뒤떨어짐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파손이 심한데 특히 얼굴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지역민들의 얘기로는 6.25 당시에 이 불상을 표적으로 삼아 사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 부분에 총탄 자국으로 보이는 구멍도 발견되는데 그 자손들이 이유 없이 병을 앓는 등의 이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쨌든 이 석불은 아사달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일 따름이다. 일부에서는 얼굴부분이 많이 튀어나와 있어 미완성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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