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비교. 통계자료

[장원준의 이슈 빨간 펜] 손기정과 히딩크, 황우석과 이건희

鶴山 徐 仁 2005. 12. 2. 21:00
[장원준의 이슈 빨간 펜] 손기정과 히딩크, 황우석과 이건희
입력 : 2005.12.02 13:40 14' / 수정 : 2005.12.02 15:15 38'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이슈 빨간펜’을 맡고 있는 조선일보 갈슈 프로듀서 장원준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사이 항공모함 ‘대한민국호’의 가장 중요한 엔진 두 개가 헛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號의 헛도는 두 엔진

“우리 배는 이 두 엔진이 있으니 그래도 저 바다 건너 꿀 흐르는 섬으로 갈 수 있을 거야” 라고들 의지해왔는데, 그만 그 엔진이 지금 ‘탈탈탈’ 고무 벨트 빠진 소리만 내고 있습니다.

한국 성장 동력의 두 축이라고 꼽힌 황우석 박사와 이건희 회장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BT(생명공학)에서, 또 한 사람은 IT(정보기술산업)에서 두말할 나위 없는 세계적 명성과 업적과 리더십을 보여왔지요.

지난 11월 초 한 기관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 1, 2위로 나란히 황 박사와 이 회장이 올랐습니다. 응답자 중 4명 중 3명 꼴로 황 박사, 아니면 이 회장을 지목해, 3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응답률 9%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 사실상 활동 중단에 칩거 상태입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덫’에 걸려 있습니다. 섀튼 박사라든가 난자라든가, PD 수첩이라든가, X 파일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첨언이 필요 없을만큼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회장은 막내딸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가정사까지 겹쳤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좀 생뚱맞지만, 저는 이 두 사람의 최근 험로를 보면서, 고 손기정 선생과 히딩크 감독을 떠올려봅니다.

손 선생과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체육사, 아니 대한민국 역사에 우뚝 솟은 거인들입니다. 한국 스포츠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점도 비슷하지만, 한국인들이 평생 두고두고 반추할 감격을 안겨준 점도 공통점입니다.

여기서 좀 거친 가정을 몇 가지 해보겠습니다.

손기정 선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운 마라톤 기록은 2시간29분 19초였습니다. 요사이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남자 최고기록은 2시간 4분대로 들어와있고, 여자 최고기록도 2시간15분대입니다. 한국 여자 최고기록도 2시간 26분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비평가가 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가정해보죠.

손기정 선생이 2류 마라토너?

“우리가 손기정 선생의 마라톤을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지금 보면 여성보다도 10분 이상 떨어지는 기록이었다. 한국인 여성도 손 선생보다는 잘 달린다. 곰곰 심층 추적을 해보자. 손 선생 마라톤은 별 게 아니었다. 인체야 1930년대나 2000년대나 비슷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손 선생은 주법이나 폐활량이나 기술 어느 면에서나 여성보다도 못한 마라토너였다는 것 아닌가? 그런 선생을 우리는 너무 과대평가해왔다. 더구나 손 선생은 일제 시대에 일장기를 뜯어내지 않은 채 가슴에 달고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결승 테이프를 끊어 일본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알린 잘못도 있다. 여성보다도 못한 2류 친일 마라토너에 대한 추앙을 이제 그만 두자.”

말이 됩니까? 손 선생은 당시 마의 벽이라던 2시간 30분대를 세계에서 최초로 깼던 전설적 마라토너이자, 지치고 쪼그라들어가던 한국인의 가슴에 불을 지핀 뜨거운 애국자였습니다.

히딩크 감독에 대해서는 정말, 사실과는 전혀 상관 없는 순수한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히딩크와 한국 축구 4강을 이렇게 재평가하자는 한국인 논객이 있다고 해보시죠.

“히딩크식 체력 훈련의 실체를 아는가? 당시 선수들을 심층 취재해보니 비인간적인 대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수는 히딩크 감독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지만, 이건 국제 축구 훈련 협정에 어긋나는 트레이닝이었다. 그런 훈련을 통해 올린 4강은 원천 무효이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협회로부터 원래 약속한 액수보다 돈도 더 받아낸 것 같고 세금도 안 낸 것 같다. 결혼도 안한 여성과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대표팀 훈련도 소홀히 했다.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주 문제가 많은 감독이다.

그리고 16강전, 8강전 심판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해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구석이 있다. 공정하지 못한 판정을 내린 것 같다. 아무리 홈그라운드라고 해도 판정이 불공정했다면 4강 자격은 박탈돼야 한다. FIFA 관계자들도 접촉했으며, FIFA에서도 재조사의 뜻을 밝혔다.”

이건 물론 순수한 가정입니다만, 어떻게 들리십니까?

이 비평가들은 ‘당장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한국의 마라톤과 축구 발전을 위해 올바른 길”이라든지, “마라톤사와 축구사, 나아가 한국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선뜻 동의가 되시는지요?

물론 손 선생과 히딩크 감독 예화는 그야말로 비유를 위한 비유일 따름입니다. 또 황 박사나 이 회장에게 물론 허물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막무가내 현미경’의 폐해

하지만 일이 발생할 당시 상황에 대한 섬세하고 현명한 배려가 없으면, 그리고 상식적 손익 판단의 잣대를 집어던지고 극단적인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벌레가 없다면 아무 문제 없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윽박지른다면, 때로는 이렇게 턱 없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더구나 한국 사람이 한국의 긍지에 먹물을 뿌리고, 한국의 엔진에 모래를 뿌릴 때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 위의 텍스트는 조선일보 동영상 ‘갈슈’의 한 코너인 ‘이슈 빨간펜’의 12월2일 방영분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코너를 포함한 ‘갈슈 매거진’ 프로그램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NGC)’을 통해 12월2일(금) 저녁 8시, 3일(토) 아침 7시, 4일(일) 아침 8시에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NGC는 케이블TV(지역마다 채널 번호는 다름)와 위성 스카이라이프 TV(402번)를 통해 방영됩니다. 또 ‘이슈 빨간펜’을 포함한 ‘조선일보 갈슈’는 케이블TV ‘이데일리 토마토TV’를 통해서도 12월2, 3, 4일 밤 11시에 방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