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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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성(詩聖)두보(杜甫)

鶴山 徐 仁 2005. 11. 20. 15:46
자 자미(子美). 호 소릉(少陵).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본적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샹양[襄陽]이지만, 허난성[河南省]의 궁현[鞏縣]에서 태어났다. 먼 조상은 진대(晉代)의 위인 두예(杜預)이고, 조부는 초당기(初唐期)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이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고, 각지를 방랑하여 이백 ·고적(高適) 등과 알게 되었으며, 후에 장안(長安)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불우하였다.
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된 지 1년 만에 탈출,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갔으므로, 그 공에 의하여 좌습유(左拾遺)의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관군이 장안을 회복하자, 돌아와 조정에 출사(出仕)하였으나 1년 만에 화저우[華州]의 지방관으로 좌천되었으며, 그것도 1년 만에 기내(畿內) 일대의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간쑤성[甘肅省]의 친저우[秦州] ·퉁구[同谷]를 거쳐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에 정착하여 시외의 완화계(浣花溪)에다 초당을 세웠다. 이것이 곧 완화초당(浣花草堂)이다.
일시적으로는 지방 군벌의 내란 때문에 동쓰촨[東四川]의 쯔저우[梓州] ·랑저우[잗州]로 피난을 한 일도 있었으나, 전후 수년 동안에 걸친 초당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이 무렵에 청두의 절도사 엄무(嚴武)의 막료(幕僚)로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이로 인해 두공부(杜工部)라고 불리게 되었다. 54세 때, 귀향할 뜻을 품고 청두를 떠나 양쯔강[揚子江]을 하행하여 쓰촨성 동단(東端)의 쿠이저우[夔州]의 협곡에 이르러, 여기서 2년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협곡에서 나와, 이후 2년간 후베이 ·후난의 수상(水上)에서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둥팅호[洞庭湖]에서 5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그의 시를 성립시킨 것은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성실이었으며, 성실이 낳은 우수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많이 따서, 널리 인간의 사실,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서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는데, 표현에는 심혈을 기울였다. 장편의 고체시(古體詩)는 주로 사회성을 발휘하였으므로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린다.
단시정형(短詩定型)의 금체(今體)는 특히 율체(律體)에 뛰어나 엄격한 형식에다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노래하여 이 시형의 완성자로서의 명예를 얻었다. 그에 앞선 육조(六朝) ·초당(初唐)의 시가 정신을 잃은 장식에 불과하고, 또 고대의 시가 지나치게 소박한 데 대하여 두보는 고대의 순수한 정신을 회복하여, 그것을 더욱 성숙된 기교로 표현함으로써 중국 시의 역사에 한 시기를 이루었고, 그 이후 시의 전형(典型)으로 조술(祖述)되어 왔다. 최초로 그를 숭배했던 이는 중당기(中唐期)의 한유(韓愈) ·백거이(白居易) 등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의 확정은 북송(北宋)의 왕안석(王安石) ·소식(蘇軾) 등에게 칭송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인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대표작으로 《북정(北征)》 《추흥(秋興)》 《삼리삼별(三吏三別)》 《병거행(兵車行)》 《여인행(麗人行)》 등이 있다. 그 밖에 북송(北宋) 왕수(王洙)의 《두공부집(杜工部集)》 20권과 1,400여 편의 시, 그리고 소수의 산문이 전해진다. 주석서(註釋書) 중에서는 송의 곽지달(郭知達)의 《구가집주(九家集註)》는 훈고(訓뭍)에 뛰어났으며, 청(淸)의 전겸익(錢謙益)의 《두시전주(杜詩箋注)》는 사실(史實)에 상세하며, 구조오(仇兆鰲)의 《두시상주(杜詩詳註)》는 집대성으로서 편리하다.
그의 시 작품과 시풍이 한국에 미친 영향은 크다. 고려시대에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이 크게 영향을 받았고, 중국인 채몽필(蔡夢弼)의 저작인 《두공부초당시전(杜工部草堂詩箋)》, 황학(黃鶴) 보주(補註)의 《두공부시보유(杜工部詩補遺)》 등이 복간(複刊)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의 작품이 특히 높이 평가되었는데,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가 5차례나 간행되었고, 성종(成宗) 때는 유윤겸(柳允謙) 등이 왕명을 받아 그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전역서(全譯書)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杜詩諺解)》를 간행하였으며, 또 이식(李植)의 저서 《찬주두시택풍당비해(纂註杜詩澤風堂批解)》 26권은 두시(杜詩)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유일한 전서(專書)이다. 현대의 것으로는 이병주(李丙疇)의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註)》(1958), 양상경(梁相卿)의 《두시선(杜詩選)》(1973) 등이 알려져 있다.
 
風急天高猿嘯哀 .(풍금천고원소애)   높은하늘 바람에 원숭이 울고
渚淸沙白鳥飛廻 .(저청사백조비회)  .흰모래 맑은물을 날도는 물새.
無邊落木蕭簫下 .(무변락목소소하)  .넓은들엔 우수수 지는 입사귀
不盡長江袞袞來 .(부진장강곤곤래)  .긴강은 노래노래 흘러내리고
萬里悲秋常作客 .(만리비추상작객)  .만리서 설은가을 마지하는몸
百年多炳獨登臺 .(백년다병독등대)  .백년시름 외로와 대에 오르네.
艱難苦恨繫霜빈 .(간난고한계상빈)  .쓰린세고(世苦) 탓이라 세인이리
노倒新停濁酒杯 .(노도신정탁주배)  .이노쇄(老衰)를 탁주로 풀어볼거나.
빈/귀밑털 빈 . 료/큰비 료

                登高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非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
           倒新停濁酒杯

               등고
          바람도 높은 하늘인데 원숭이 설리 울고
          흰 모래 적시우는 강엔 물새가 날아
          끝없는 숲엔 우수수 낙엽지는 소리
          다할 줄 모르는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라
          또다시 이향에서 가을을 맞이하노니
          오랜 시름 이길길 없어 홀로 대에 오르네
          쓰라린 세월을 머리칼은 자꾸만 세어
          늙어가는 외로움을 술로 풀어 보리.


         
               春望.

            國破山何在  城春草木深
          感時花 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
          나란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
          봄들자 옛 성터에 풀만 짙푸르다
          한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뜨겁고
          새소리 마음이 더욱 설렌다
          봉화는 석달을 연달아 오르는데
          진정 그리워라 고향 소식이여
          흰머린 날로 짧아만지고
          비녀도 되려 무거웁구나.


         
               絶句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時歸年

        이 봄도 예이고 보면
        파란 강물이라 나는 새 더욱 희고
        산엔 타는듯 사뭇 꽃이 붉어라
        올봄도 이대로 예이고 보면
        어느때 고향엘 돌아가리.


               贈花卿

            錦城絲管日紛紛  半入江風半入雲
          此曲 應天上有  人間能得幾回聞

               화경에게
          금성에 풍류 소리 분분히 흘러
          반은 강바람에 또 반은 구름 속에
          이 가락 응당 하늘에 있을 것이
          인간에 몇번이나 들려 오리까.

         
               解悶

          一辭故國十經秋  每見秋瓜憶故丘
          今日南湖采薇蕨  何人爲覓鄭瓜州

               고국을 떠나
          고국을 떠나 온지 십년을 지나
          추과 볼적마다 그리운 고향
          오늘도 남호에 뜯는 고사리
          주구를 위하여 정과주를 찾는다.
         


                飮酒

          書堂飮旣夜復邀李尙書下馬月下賦
         湖月林風相與淸  殘尊下馬復同傾
         久拌野鶴如雙   遮莫 鷄下五更

               음주
          호수엔 달이 밝고 숲에는 맑은 바람
          말 내리자 남은 술 다시 기운다
          버려둔 수염은 그대로 학을 닮았는데
          닭은 덧없이 오경을 아뢰는구나.


         
               貧交行

          飜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飽貧時交  此是今人棄如土

               빈교행
        손을 두집으면 구름 되고 엎으면 비라
        경박한 세사를 어찌 다 헤아리리
        그대도 보았으리 관포의 사귄 것을 
        인제는 그 길을 버렸어 흙같이 버렸어.
 

 
           春歸(봄에 돌아와서) / 杜甫(두보)

 苔徑臨江竹
(태경림강죽)  강가 대나무 숲 이끼 낀 오솔길
 茅첨覆地花(모첨복지화)  꽃은 피어 초당 앞 뜰을 덮었네
 別來頻甲子(별내빈갑자)  떠나간 후 세월만 덧없이 흘러
 歸到忽春華(귀도홀춘화)  돌아오니 어느덧 봄 꽃 핀 시절
 倚杖看孤石(의장간고석)  지팡이 의지해 고석을 바라보다
 傾壺就淺沙(경호취천사)  모래밭에 나가 술병을 기울이니
 遠鷗浮水靜(원구부수정)  멀리 물 위 갈매기 떠 고요하고
 輕燕受風斜(경연수풍사)  날쌘 제비 바람타고 비껴 나네
 世路雖多梗(세로수다경)  가시밭길 세상사 어렵다 하지만
 吾生亦有涯(오생역유애)  우리 인생 어차피 끝이 있는 것
 此身醒復醉(차신성복취)  술이 깨면 다시금 취하면 그 뿐
 乘興卽爲家(승흥즉위가)  흥이 나면 어디든 내 집인 것을




등악양루(登岳陽樓 악양루에 올라)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 지난 날 동정호에 대해 듣다가
今上岳陽樓.(금상악양누) :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다
吳楚東南坼,(오초동남탁) : 오나라와 촉나라가 동남으로 나눠 있고
乾坤日夜浮.(건곤일야부) :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동정호수에 떠있구나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 가족과 친구로부터는 한 글자 소식도 없고
老病有孤舟.(노병유고주) : 늙고 병들은 나는 쪽배를 혼자 타고있네
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 관산의 북쪽 중원 땅은 아직도 전쟁 중이라니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 난간에 기대서니 눈물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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