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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詩/서정주-무등을 보며

鶴山 徐 仁 2005. 11. 7. 22:56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길은

우리들의 타고 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이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출처 : 시인의 마을 |글쓴이 : 詩人의 마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