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보다 중요한 건 우수인재들
서울대를 다른 학교에 맞추지말고
서울대 같은 대학을 많이 늘려야
韓·日갈등, 지식인 교류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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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와 교육의 힘이다. 근본적으로 세계의 우수 인재들이 그 대학에 많이 모여야 된다. 가고
싶고,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모여야 좋은 대학이 된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쿄대가 연구 업적의 양이 많은데도 전체적으로 상위 랭킹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다양성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학생이나 외국교수가 적고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높아 높은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SCI논문 면에서 도쿄대가
2위, 서울대가 32위이지만 전체 등수가 뒤로 밀리는 것은 두 대학 모두 다양화가 안 됐기 때문일 것이다.
정 총장은 그러면서 “서울대는 대학 평가에서 좀 다른(?)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평가기관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냈다. 미국, 일본,
영국의 경우 컨트리(국가) 프리미엄이 있지만 한국은 반대로 컨트리 디스카운트를 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고미야마 총장=대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 랭킹은 중요치 않다. 대학의 가치를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해 랭킹을 매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훌륭한 대학의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부 교육이나 대학원 교육이 될 수도 있고, 문과가 우수하냐 이과가 우수하냐로 따질 수도
있다. 같은 이과 학문이라도 이론인가 테크놀로지인가 하는 축에 따라 대학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일본 도쿄 공업대의 경우 테크놀로지
면에서는 하버드 대학보다 더 우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제성 측면에서 어느 유명 대학은 10점을 받았지만 도쿄대는 3점을 받았다. 아마 외국인
교수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도쿄대와 서울대 교수를 서로 교환했으면 한다. 국제성을 보완하자.
정 총장=맞다. 대학 순위란 여러 기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같은 기준이라도 비교적 잘 알려진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 간에 순위가 달리
매겨지기도 한다. 고미야마 총장 말씀처럼 순위를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계 100등도 안 되는 대학이란 비판으로 서울대는 지난 1년간 주눅
들어 있었다. 도쿄대와 서울대 교수를 교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두 대학의 국제화 지표를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창의성이 높아져 다양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교수 교류는 물론 학생 교류도 확대하면 학생들의 잠재능력을 더욱 많이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자=두 총장의 말씀대로 좋은 대학의 조건은 많은 인재들이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평준화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이 개별적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율권에 대해 교육부가 부정적이다. 일본에서는 평준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평준화를 재고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고 한다. 대학평준화와 대학교육의 질 문제는 어떻게 보나?
고미야마 총장=일본은 메이지시대 이후 주된 국가목표가 경제발전이었다. 국민생활의 유럽화, 산업화 등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일본은 산업화로
전진하는 데 규격화, 평준화가 상당히 도움됐다. 국가가 중심이 되어 나라 경제를 이끌며 발전해 왔다. 그래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이제는
규격화, 평준화 논리로는 발전할 수 없다. 자기 문제는 자기방식으로 해결해야 할 때가 됐다. 그러려면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정 총장=대학은 투자를 토양으로 하고 자율을 공기로 성장하는 조직이라고 한다. 투자, 자율 모두 필요하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자율이
늘어나는가 싶었는데 최근 2년간은 자율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이끌 현장 지도자, 학문적
지도자는 창의성 있게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보다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서울대를 다른 대학에 평준화시킬 게 아니라 몇몇 대학을
서울대와 비슷하게 만드는 게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고미야마 총장=전적으로 동의한다. 대학은 자율성이 있어야 하고 그 바탕에서 다양성이 키워진다. 대학의 다양성은 대학 간에도 필요하고 대학
내에서도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국립대 법인화가 진전되고 있는데 법인화된 대학에서는 대학 자율성, 총장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도쿄대는 교수가
4000명 있다. 혼자서 자율하는 것도 곤란하다. 협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정확하고 강한 방향성을 갖고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도쿄대는 자율, 분산, 협동 등 3가지를 중요한 콘셉트(개념)로 생각한다. 심장과 다리 등이 서로 분산돼 있지만 하나로 합쳐져야 제대로 기능하는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
고미야마 총장은 또 대학 총장에 기업처럼 전문가 사장 같은 사람을 앉히는 것에 대해 “난 반대한다”고 했다. 대학과 기업은 다르기
때문이란다.
정 총장=대학에 대해서는 훌륭한 대학 총장을 뽑아 자기 책임으로 좋은 대학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제약이 많다.
대표적인 게 교육공무원 겸직금지법이다. 젊은 교수의 경우 한 학기는 서울대, 다음 한 학기는 미 로체스터 대학에서 강의할 수도 있을 법한데
우리는 안 된다. 학생도 지역균형선발이나 특기자 모두 다양하게 뽑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 대한 사회의 믿음, 애정이 부족해 학생 선발권이
제약받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는 법인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보다는 대학 자율이 더욱 제고될 것이다.
서울대는 이미 10년 전부터 법인화를 연구했다. 일본은 1년 반 동안 법인화가 진행됐으니 도쿄대가 그 경험을 알려주면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겠다.
정 총장은 법인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다른 국립대가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과 달리, 서울대는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인화를 긍정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해왔다.
고미야마 총장=일본의 입시상황은 한국과 정반대다. 여러 제도를 혼합해서 비교적 자율적으로 시험을 치른다. 센터시험이라는 공통시험을 매년
50만명이 본다. 그리고 각 대학은 독자적으로 시험을 본다. 독자시험은 센터시험과 연계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세 번째는
개인적 특성이다. 개인 요소는 고교 때의 클럽활동 등 사회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특징이 반영된다. 각 대학은 이런 3가지 요소를 적절히 가미하면서
응용해 학생을 선발한다. 법인화의 문제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확한 판단을 하기에 아직 이르다. 총장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법인화의 기본 콘셉트는 옳다고 본다. 법인화하면 자율은 커진다. 문제는 법인화한 뒤에도 정부 규제는 남아 있고 예산은 축소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사회자=화제를 바꿔서 한·일문제를 얘기해 보자. 올 들어 독도문제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후소샤 교과서 검정 통과 등으로 한·일 간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와 도쿄대 그리고 양국 지식인들이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고미야마 총장=우선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치는 자꾸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내지는 양국이 현상을 인식하되 상호
이해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양국 간 학술교류가 중요하다. 지식인들의 인적 교류를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도
마찬가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행사 때 일본 국민은 양국이 행사를 함께 치르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았다. 따라서 정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상호 이해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학,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 총장=양국이 잘 해보려고 하는데 안 되는 것은 현상을 중장기적 시각이 아닌 단기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용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시끄럽게 대처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또 역지사지(易地思之)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들이 나서서 조용한 가운데 중장기적 시각에서, 또
역지사지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유도하자. 유럽에서는 EU로 나라를 통합하고 나서 학생들을 대폭 교류하는 에라스무스 플랜 등을 도입한 바
있다. 한·일 양국은 과거 유감스러운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학 간에 이해증진을 먼저 하면 국가 간 관계도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고미야마 총장은 그러나 6자 회담과 북핵 문제 등 동북아 평화질서에 관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이 자리에서 말하기에 적절치
않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정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총장
1944년생 1967년 도쿄대 공학부 졸업 1972년 도쿄대 공학박사 1988년~ 도쿄대 교수 2000~2002년 도쿄대 공학부장 2002~2003년 일본 화학공학회 회장 2003~2004년 도쿄대 부총장 2005년~ 도쿄대 총장
◆ 정운찬 서울대총장
1948년생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76년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1976~1978년 미 컬럼비아대 교수 1978년~ 서울대 교수 1998~1999년 한국금융학회장 2002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2002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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