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국민이 모두 투표하는 데 800년 걸렸다

鶴山 徐 仁 2005. 10. 29. 19:46
조갑제 월간조선 기자
2005-10-29 19:02:38

민주주의의 선진국 영국에서도 1754년에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당시 인구 약800만 명의 3.5%인 28만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물론 귀족들이었다. 차츰 선거권이 확대되어 갔다.

1884년에 가면 세금을 내는 모든 家口主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18년엔 세금을 내는가의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성인 남자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고, 여자들에 대한 보통 선거권은 1928년에 주어졌다.

프랑스에서도 1790년 일정규모의 재산을 가진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1815년엔 30세 이상의 年 300프랑 이상 납세자가 투표권을 가졌다. 1820년엔 일정 재산 이상을 가진 유권자는 1인 두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1830년엔 25세 이상의 200프랑 이상 납세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 인구는 전체 성인의 170분의 1이었다. 1848년 모든 남자 성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가 2년 뒤 3년 이상 거주 납세자로 제한되었다. 1851년에 다시 남자보통선거권으로 돌아갔다. 1945년에 모든 여성 성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거권 확대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폭이 확대되는 과정이란 사실이다. 동시에 선거권 확대는 점진적이었고 신분중심(봉건체제)-납세중심(부르조아 체제)-남여 모두(대중 민주주의 시대)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수백년에 걸친 점진적인 과정을 생략하고 1948년 헌법 제정과 동시에 보통선거를 하게 되었다. 재벌 총수도 한 표, 직원도 한 표이다. 무직자도 한 표, 교수도 한 표이다. 세금을 수백억원 내는 사람도 한 표, 안내는 사람도 한 표이다. 선거권의 점진적
확대 과정은 투쟁의 과정이고 민주주의 학습과 실천의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그 결과물로서의 男女 불문한 1인1표제를 도입한 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민주주의 제도에 무임승차한 셈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럽 민주주의 국가 사람들의 苦鬪를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진 셈이다.

1948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서양에서 수백년 걸려(영국의 경우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제정부터 시작하면 보통선거 쟁취까지 약800년이 걸렸다) 발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연극, 민주주의란 연습을 해온 셈이다. 연극과 연습을 많이 하면 實演이 되긴 하지만 외래 제도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선 엄청난 代價를 치러야 한다. 西歐의 민주주의를 기
준으로 하여 李承晩과 朴正熙를 독재자라고만 단정하는 것은, 메이저 리그의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 동네 야구 선수들을 혹평하는 것과 같다. 세종대왕에게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욕설을 퍼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를 판단기준으로 하여 李承晩, 朴正熙가 독재를 했다고 주장하고싶은 사람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0~30년만에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세계사에는 물론 그런 예가 없다.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세기의 유럽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이었다. 당시 한국의 10~30년짜리 민주주의가 유럽의 700년짜리 민주주의보다 더 발전되었다면 두 전직 대통령을 과연 자신 있게 독재자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일본에 비교하면 李, 朴 두 대통령 시절의 민주주의는 1910~20년대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보다 못하지 않다. 북한과 중국은 아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盧정권 사람들은 朴正熙를 파쇼라고 욕하는 것일까. 그들이 가진 기준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천국의 기준이든지 자기 꿈속의 기준일 것이다. 그들의 잣대는 북한정권에 들이댈 때는 갑자기 눈금이 넓어지는 요술자이기도 하다.

[조갑제 월간조선 기자] http://www.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