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김제군 모악산 도립공원에 위치한 금산사(金山寺)..... 전북에서는 선운사와 함께 아주 유명한
절이다.
■ 논산 연무대를 지나다 만나는 백제의 계백장군과 후백제의 견훤王
새로생긴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보면 논산 연무대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지금은 육군훈련소가 위치하여 이나라의 남자들이 젊은시절에 軍에 대한 추억에
빠지는곳이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계백과 견훤의 恨이 서린곳이기도 하다.
백제의 계백장군은 이곳 황산벌에서 5000명의 결사대로 신라 김유신의 5만 정병과 맞서
4전전승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이곳에서 패하면서 결국 백제는 패망하고 마는 비운의 역사.....
후백제의 견훤은 4남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장남에게 4남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김제 금산사에
유폐당한다.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은 고려의 왕건에게 투항하였으며, 자기 아들을 공격하도록
간청하여
왕건의 10만대군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기에 이르는 역사의 아이러니,,, 그 역사의
현장.
그 한서린 역사의 인물 견훤의묘와 계백의 묘가 모두 이곳 연무에 있다.
(견훤왕릉은 이름에 비하여 초라하기 이를데 없음)
■ 김제 금산사(金山寺)
ㅇ 전라북도 김제市
전남 광주(光州)를 빛고을이라 하듯이 김제는
벼고을...쌀농사=도작(稻作) 문화의 고장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地平線)이랄수 있는 고장.... 땅과 하늘이
맞닿는 김제...
조정래의 장편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
국내 최대규모의 김제평야, 이웃한 만경평야의
곡창지대이다......
ㅇ 전라북도 도립공원 모악산(母岳山)
금산사가 자리한 모악산은 전북지정 도립공원이며 고려때까지는
금산(金山)으로 기록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모악산으로 불리운듯하며....
우리말로는 엄뫼, 큰뫼라고 불리우는 풍광이 아름다운
산이다.
현재 山 정상에는 KBS송신소등이 위치하여 시민단체들의 철거주장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전라도, 즉 호남의 4景을 말하기를...
① 금산사의 봄 경치 ② 변산반도의
여름풍경 ③ 내장사의 가을단풍 ④ 백양사의 설경이라고 하였다.
모악산 품안에는 모두 국보 1개, 보물 11개가
있(었)으나
1986년도에 금산사 본전이 불타면서 보물 1개는 소실되어
버렸고
지금은 금산사에 국보 1개, 보물 9개..... 귀신사에 보물 1개가
있으니 금산사는 보물창고인 셈이다.
ㅇ 김제와 사금(沙金)
모악산 주변 지명들이 김제시(金堤市) , 금산면(金山面),
금구면(金溝面), 금천(金川) 등 쇠금(金)자가 붙여진 것은
과거 이들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많이 났으며 지금도 주변산에 광산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금산사(金山寺)와
산의 옛지명인 금산(金山)은 이들 주변지역의 쇠금(金)자의 지명과
함께 이름이 불려졌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조선말(朝鮮末) 금산사 주지로 재직하신 용명당
각민대사는 금산사 사리탑 아래까지 채광(採鑛)을 하고자하는
소란꾼들을 저지하다가 이들의 손에
의해서 현재의 경내 가운데 잣나무 아래에서 57세의 나이로 불의에 입적하였다.
ㅇ 전주김씨 조상묘 (김일성의 조상묘)
이곳 모악산 산자락에는 전주김씨 시조인 김태서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전주 김씨는 본래 경주
김씨였다. 김태서(金台瑞)가 경주김씨에서 분관하여 전주김씨가 되었다.
그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의
7세손이다.
김일성은
김태서의 제32대 손으로서 이 묘의
지기(地氣)가 발복하여 49년간 장기집권하였고,
그가 1994년 9월 14일(음력) 죽을 것이라고 풍수지리 전문가인 육관 손석우씨가 '터(상권 p100)'에 예언했는데,
그 시기가 근소한 차이로 적중하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 금산사의 이모저모 (화보)
<금산사 입구에 서있는 돌탑....나무관세음보살>
<금산사 입구 길가에 위치한 작은 전각>
<전각내부... 불공 드리는 광경>
<금산사 입구 표석.... 천하제일 천년성지>
<절까지 오르는 길이 십여분....도로옆으로 산책로를 꽃길로 조성하였다>
<절 진입도로 중간에 위치한 성문의 흔적... 아름답지여~>
<길가에 위치한 88인 애국지사탑>
<길을 걷다가 첫 내를 건너는곳에 설치된 다리...만인교(萬人橋)>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절 입구에 못미쳐 야영장이 있더이다..... 담에는
캠핑을??>
<70년대말인가??...전국 명승지마다 세운 자연보호헌장탑........ 이제는
헐어버리는게???>
<입구를 십여분 걸어 올라가면 만나는 일주문....>
새로 만들어서인지 아직도 나무냄새가~ 어른 서넛의 아름드리 굵기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은 없애는것이 나을듯~
밖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냥 걸어들어가도록 했으면~~~
<다시 내를 건너 절로 들어서는곳에 걸쳐진 또하나의 다리....해탈교>
<해탈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순서대로이다>
보제루는 개산(開山) 1400년을 기념하는 기념관이기도 하다.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28호>
<비석을 세우려다 말았는지???>
<보제루 옆의 약수는 물이 말랐다...>
<금산사 미륵전....>
국보 62호인 미륵전(彌勒殿)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지금의 모습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그후 수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1988-1993년간 송월주스님이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주불인 미륵입상은 높이가 11.82미터이며, 그 좌우 보살은 높이가 8.79미터이다.
현 주불은 옥내에 서 있는 불상으로는 동양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꼽힌다.
마침 내가 방문했을때 미륵전에서는 불교식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흥미로웠고
더욱 놀라운것은 송월주 큰스님이 집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륵전 측면을 돌아가보니 벽화아래 벽면은 이런저런 낙서로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미륵전 옆 약수...
미륵전의 서쪽 즉 가람의 중심에는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금산사에는 대웅전이 없다.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건물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으로 건립하며,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여 화엄전,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고 해서 비로전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대적광전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에 본래대로 복원하였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뜰앞의 소나무(잣나무?).... 용명당 각민대사가 절을 수호하려다가 변을 당하신
자리??
<노주....보물 제 22호>
<석련대....보물 23호>
<6각다층석탑.....보물 27호>
<석등과 대장전....보물 828호, 826호>
대적광전과 미륵전 사이에 높다란 단을 쌓아 5층석탑과 사리탑이 위치해 있다
<5층석탑.....보물 25호>
<사리탑.... 보물 26호.....주변 수호상과 중앙의 사리탑에 새겨진 조각이
특이하다>
뜰 한쪽에도 나무관세음보살 돌비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