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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강천석 칼럼] 성난 '국민의 바다'에 뜬 노무현 정권

鶴山 徐 仁 2005. 10. 29. 11:17
강천석 · 논설주간
입력 : 2005.10.28 19:02 32' / 수정 : 2005.10.28 19:02 51'


▲ 강천석·논설주간
10·26 재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전원 낙선했습니다. 지난번 4·30 재·보선 때 23명의 여당 후보가 국회의원·시장·군수·지방의원 선거 등 각급 선거에서 내리 떨어진 데 이은 참패입니다. 여당 아니 노무현 정권은 왜 이렇게 무참하게 주저앉고 있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상대가 너무 강적(强敵)이기 때문입니다. 노 정권은 국민과 싸워온 것이지, 야당과 싸워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국민이란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어 버리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수능재주 역능복주)는 진리를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곧잘 끌어다 썼다는 이 말은 당(唐)의 양신(良臣)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징(魏徵)이 태종(太宗)에게 올린 상소문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이 정권은 성난 국민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와 같습니다. 대통령이 이번 선거 결과를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는 뜻밖의 말을 내놓은 데서도 선장과 선원들의 불안과 동요가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반성은 진심일까요, 아니면 우선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일까요. 믿고 그때마다 속아온 국민들로선 망설이는 게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믿고 싶은 게 지금 마음입니다. 믿지 않으면, 또 믿지 못하면 오늘의 우리 신세가 너무 서글퍼질 거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반성한다는 걸까요. 이게 아리송합니다. 이 정권 사람들이 해온 말대로라면 국정(國政)의 어느 구석에도 반성거리가 있을 턱이 없는데 말입니다. “자화자찬 같지만 외교 문제는 기대를 초과 달성”(대통령),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사람은 소심하거나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대통령), “정부 개혁 성과는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대통령), “법무장관 지휘권 행사로 검찰 독립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져”(청와대 민정수석), “건강한 긴장관계로 (권력과) 언론과의 관계가 상당히 발전”(대통령). 이 같은 혁혁한 업적으로 해서 “나라는 이미 반석(盤石) 위에 올라서 있다”(국무총리)는데 도대체 무엇을 반성한다는 걸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이 정권이 스스로 뽐내온 이런 근본 노선을 반성할 리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반성할 능력도 없습니다. 가혹하게 말하면, 반성한다 해도 이미 때가 기울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위징과 당 태종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태종이 어떤 군주(대통령)가 명군(名君)이고, 어떤 군주가 암군(暗君)인지를 물었습니다. 위징이 답했습니다. “군주의 지혜로움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널리 듣는 데 있고, 군주의 어리석음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의견만) 치우치게 듣고 그걸 믿는 데 있다.”

권력의 속성에는 고금(古今)과 동서(東西)의 차이가 없습니다. 백악관에는 ‘마틴의 법칙’(Martin’s rule)이란 게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법칙 Ⅰ, 대통령(boss)은 언제나 옳다. 법칙 Ⅱ, 만약 대통령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는 ‘법칙 I’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역대 백악관 비서실장은 이런 권력의 속성 때문에 대통령이 대통령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듣지 못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걸 가장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늘 대통령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대통령 면담 인사와 면담 시간을 조정하는 데 업무의 최우선을 두어 왔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국방장관인 럼즈펠드가 자신의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정권 사정은 어떻습니까. 청와대 수석비서관실만이 아니라 각부 장관실에도 ‘마틴의 법칙’을 복무지침 대신에 걸어 두고 있는 듯합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비판 신문에 대한 반감(反感)을 받들어 모시기 위해 그 신문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한 정부 인사에게 시말서(始末書)를 재촉하고, 건교부 장관은 “언론이 건설업체 로비를 받고 부동산 정책을 왜곡한다”고 복창(復唱)하고, 외교부 장관은 기대를 초과 달성한 대통령의 외교 업적을 “대통령께서 명쾌한 외교 지침으로 외교부의 앞길을 가르쳐 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는 말로 뒷받침하고, 행자부 장관은 갓 젖을 뗀 갓난아기까지 무주택자 통계에 집어넣어 이 나라의 빈부 갈등에 부채질을 해 왔습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관리가 반드시 간사한 것이 아니라 법(윗사람)이 그리 만드는 것”이라 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산이 위만 쳐다보며 아래는 돌아보지도 않는 이런 무리들을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간신(奸臣)은 모름지기 관청 밖 비석에 그 이름을 새겨 영구(永久)히 기억하게 하라.”(목민심서 속리(束吏)편) 지금 국민의 마음이 다산의 그때 그 마음과 한 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