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전국 대학 평가] '고시 준비 학과' 옛말 … 실무형 인재 키운다
국민대 목진휴 교수는 "케케묵은 이론을 답습하는 '정책학 원론' 같은 강의는 더이상 없다"면서 "대신 '정책과 공공사회'등 이론과 현실을 접목한 체험학습형 과목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말한다. 건국대 강황선 교수도 "임용고시에서 성적 잘 받는 노하우보다는 신이론과 기법 소개 중심으로 강의가 옮겨가고 있다"면서 "'행정PR론'처럼 현대행정에서 주목받는 정부와 기업.시민과의 관계에 마케팅 이론을 접목한 실용성 높은 과목은 고시와 무관한 다른 학과 학생들에게까지 호응이 높다"고 전했다. 행정고시 배출자를 늘리기 위해 각 대학들이 고시반 운영 등에 큰 예산을 들이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행정학과 전공자=고시 준비생'이라고 설정하고 고시합격생 배출에만 전력을 쏟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교수 등 전문인력 배출이나 국제기구 진출 등 경로를 다양하게 열어놓고, 이에 맞춘 실무형 인재를 키워내는 데 고시 지원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학과 내부로부터의 반성도 한몫했지만 개방형 임용제같은 공무원 임용 제도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 위기가 기회다=공직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시절 개방형 임용제가 처음 실시된 이래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 민간채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공무원 인사혁신 제도가 확대됐다. 3급 이상 실.국장급에만 적용되던 개방형 임용제가 내년엔 과장급으로 확대되고, 정부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직급별 정원 20%를 민간인으로 채용할 수 있는 공직개방 확대 방안도 시행된다. 임용시험을 통한 공직진출 기회가 그만큼 준다는 얘기다. 대학들은 "임용시험만을 염두에 두고 행정학과를 택한 학생이나 이런 학생 위주로 학과를 운영하는 학교 모두 위기가 아닐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가뜩이나 고시 배출에서 약세를 보여온 학교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위기가 대학에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합격률과 무관하게 행정고시와 7급, 9급 공채시험 준비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학과 체제가 실무형 인재 양성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대학 종합평가 대상인 123개 대학 가운데 지난 3년 동안 단 1명이라도 행시 합격자를 낸 곳은 36개이고, 5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곳은 19개 대학에 불과하다. 학과 설립연도가 15년이 넘은 대학을 대상으로 한 올해 행정학과 평가대상 32개 대학 가운데서도 지난 3년 동안 단 한 명이라도 행시 합격자를 낸 대학은 18개, 5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대학은 6개뿐이다. 예산과 노력에 비하면 엄청난 비효율인 셈이다. 따라서 대학들은 채용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보다 현장에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학생을 키워내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 실무형 인재를 키워라=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커리큘럼(교과목)에서 잘 나타난다. 구태의연한 교과서를 탈피해 새로운 이론과 실무를 접목한 교과목을 도입하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다. 경북대는 수시로 학생 대상 수요조사까지 실시해 교과목에 변화를 준다. 학과 단독으로는 학기마다 커리큘럼을 바꿀 수 없는 이화여대도 실제 교과목 운영에서는 학생 요구를 많이 반영한다. 이렇게 교과목이 전통 행정학 영역을 벗어나 다양해지는 이유는 행정학과 졸업생들의 진로가 그만큼 폭넓어지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무원의 자질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행정학과의 주된 임무는 역시 공무원 양성이다. 그러나 행정권의 일부가 민간으로 넘어오면서 민간부문에서 행정력을 발휘할 기회가 느는 데다 공무원이 갖춰야 할 기본기도 많이 달라졌다.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과거와는 달라야 생존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경북대와 건국대 등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또는 지역개발 분야 등 관심 분야에 맞게 전공과목을 맞춤 선택하도록 트랙(진로)을 제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졸업 후 당장이라도 현장에 투입될 수 있게 지자체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는 학교도 많다. 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이화여대 행정학과 두각 최근 3년간 행시합격자 1위 "교내 축구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축구팀 구성이 안 돼서 못 나갔다니까요." 여학생 수가 남학생 수보다 많은 한 대학 행정학과 교수가 던진 농담 섞인 진담이다. 이 교수의 말처럼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학생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행정학과가 지금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60%까지 여학생으로 채워지고 있다. 학생 비율로 봤을 때 현재 여성 교수의 숫자는 여대를 제외하고는 한 학교당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최근엔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학과 설립 이래 단 한 명의 여자 교수도 없었던 경북대가 올 1학기부터 최희경 교수를 임용한 것을 비롯해 2학기엔 성균관대와 제주대가 각각 이숙종.오승언 교수를 채용했다. 동국대 등은 여성교원 채용을 목표로 삼고 있을 정도로 여성 교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그러나 행정학과에서 가장 여풍을 실감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행정고시다. 2001년 25.3%에서 매년 꾸준히 올라 2004년엔 여성 합격자 비율이 38.4%였다. 그 가운데서도 이화여대 행정학과가 두각을 나타낸다. 지난 3년(2002~2004년) 동안 이화여대가 배출한 행시 합격자는 53명이고, 이 가운데 행정학과 출신이 29명이다. 단일 학과 합격자 수 29명은 전통적인 고시 명문 고려대와 연세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높은 수치다. 일부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약진을 여성할당제의 혜택으로 폄하한다. 하지만 한 성(性)이 최소 30%가 되도록 배려하는 양성평등채용제의 특성상 여성 합격자 비율이 30% 넘어선 지금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화여대 이근주 교수는 "여성할당제로 우리 학생들이 고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은 학생은 없다"면서 "최근 이대의 고시 합격자 배출 급증은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과 남다른 고시실 운영 노하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기구 진출' 새 분야로 떠올라 어학은 필수 … 영어로 전공 강의 해외 경험 쌓는 교환학생 제도도 행정학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것은 행정학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요소다. 그중 하나가 국제 분야다.국제기구가 행정학 전공자들이 관심을 갖고 도전할 만한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대학 행정학과가 실무영어와 해외경험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민대가 단기적으로는 전체 강좌의 3분의1, 중장기적으로는 2분의1을 영어강의로 채울 계획인 것을 비롯해 이미 이번 평가대상 32개 학교 가운데 16개 대학이 전공강의의 일부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학과 차원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인 시각을 키워주는 학교도 있다. 성균관대의 경우 비교적 많은 수의 학생이 단기간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민대는 수혜 학생은 적지만 집중적인 국제경험과 학습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실시 중이다. 이 대학은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과 이중학위 프로그램을 설치해 올해부터 매년 3, 4학년 학생 3명을 교환학생으로 파견한다. 이들은 2년간 미주리대에서 강의를 받고 두 학교 학사학위를 모두 딸 수 있다. 제주대는 컨벤션 중추도시로 부상한 제주도의 특성을 살려 공직 진출을 염두에 둔 교육과정뿐 아니라 공공분야 자원봉사 분야까지 행정학 교육과정에 끌어들였다. 이 역시 기본은 외국어라는 생각에 1997년부터 행정학과 자체 예산으로 원어민 영어회화 강좌를 실시 중이다. 명지대 임승빈 교수는 "어학 전문가는 도구적 전문가일 뿐"이라며 "진짜 글로벌한 인재가 되려면 국제적인 시각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명지대가 일본 대학이나 중국 지자체 등과의 국제교류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5년 대학평가팀 ▶종합평가:김남중 차장(팀장).강홍준.고정애.김영훈.강병철.한애란 기자 ▶행정학과:안혜리 기자 ▶수의학과:홍주연 기자 ▶화학공학과:전진배 기자 ▶설문조사:중앙일보 조사연구팀, 리서치 앤 리서치 |
2005.10.05 05:13 입력 / 2005.10.05 14:24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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