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넋두리

지만원 박사의 글을 읽고

鶴山 徐 仁 2005. 9. 23. 22:32

군 근무시절에도 생판 모르는 분이 아니었지만, 그 동안에는 간혹 쓴소리도 하기에 이념의 갈등이나 변화가 있는 가 하였드니, 오늘 "현대기업의 아버지 박정희"라는 글을 읽고, 역시 사관학교를 거쳐 군 고급장교로서의 엘리트 정신은 그대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일부 젊은 세대나 좌경 급진성향의 분들 가운데는 지박사의 글을 읽고 아직도 독재정권의 잔상을 지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구세력의 일원으로 몰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들도 진정한 애국이 과연 무엇인지는 나름대로 생각을 깊이 해봐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애국이라는 관점은 같다고 전제하고 합리화시킬려고 할지라도 그들이 말하는 애국애족의 겉치장은 늘 억지를 부리는 어린아이의 강변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역사적 사실은 오늘날 그들이 말하는 감상적이고 휴머니스트적인 동포애나 민족주의를 내세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여러 차례 분열된 다국가체제를 경험 하였고 그 때마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순리적으로 통일의 목적을 달성한 적이 있었는 가 하는 점을 재조명해 볼 필요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같은 이유에 근거하여, 아마도 동국대 '강정구'라는 사람도 6.25를 두고,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에 비유하여, 김일성이 주도한 '통일전쟁' 운 운 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저 자신도 월남전에 참전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월남전이 한창일 때 주월공사를 맡아서 월맹군에 체포되어 많은 고초까지 겪었던 분 중 가운데 한 분인 이대용 공사께서 "지금의 한국, 월남패망의 전야와 쌍둥이"라는 글이 너무나 깊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서 사회주의 이념 갈등을 유발시키는 동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학창시절에 좌경성향의 운동권 출신으로 과연 그들이 전쟁을 알며, 사회주의 체제의 실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 가를 묻고 싶어 집니다. 우리들 선배세대가 허리 띠를 조이며 보릿고개를 이겨내면서, 기반이 허약한 산업현장에서 온갖 고생을 감내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한 방편으로 월남전선에 까지 우리들 젊은이들이 내 몰렸을 때 아직도 철모른 아이들이었을 터인 데, 이렇게 선배세대들을 수구세력으로 매도 하면서 통일의 걸림돌로만 치부해도 되는 건가요?  

어제 공개된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4%가 주한미군의 철수에 찬성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6%가 '계속 주둔 또는 상당기간 주둔'에 찬성했다고 하는 데, 그럼 과연 우리 국민들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로 가나 어디로 가나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어떤 방법으로 통일이 되던 통일만 되면 그만이라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통일이 가져다 줄 결과가 무엇입니까? 현재 그나마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의 억제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철수를 하면, 협상이라는 단계 이전에 이미 재래식 군사력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북한군이 제2의 6.25 남침을 감행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는 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중국의 장개석 군대는 군사적으로 월등한 우위에 있었던 상황에서도 모택동 군대에게 대륙을 내어주고 대만으로 도망간 사실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한반도에서는 그 동안 주한 미군사력과 우리의 군사력을 연합하여 북한군의 도발을 억제하는 戰力의 균형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지난 52년간 전쟁을 억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며, 이를 깨트리고 자 상투적으로 끊임없이 북한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해 왔는 데, 이제 이같은 전력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1975년의 월남패망 등의 역사적 전례을 통해서도 이미 검증되어진 사실입니다.

 

이대용 전 주 월남공사께서도, "대통령, 학자, 지식인들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독일의 통일을 말하지 말라. "지금 우리는 월남과 똑같은 방법으로 패망하고 있다." 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월남이 망한 이유도 단 한 가지였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즉, 스스로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가 난무했고, 종교지도자, 학생들이 연일 반정부 데모를 하는 상황에서, 미국도 지친 상태였기에, 1973년에는 드디어 월맹이 제안한 "평화협정"에 속아넘어가 철수를 결정했고, 월맹은 미군이 철수 하자마자 1975년 4월에 월남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던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통일 직전의 상황에서 월남 정부에는 간첩이 많았으며, 대다수의 간첩들은 합법적으로 민족주의자와 인도주의자로 위장했기 때문에 다수의 월남 일반 국민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었고,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수천만 민족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죽고, 갇히고, 신음하고, 도망한 이후에야 알려졌다는 것입니다. 패망 수년 전인1967년 9월 3일에 월남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으며, 11명의 입후보자가 난립한 가운데, 티우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당선 되었지만, 그 때 차점으로 낙선한 야당 지도자 쭝딘쥬가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패망 후에야 알려졌습니다.그 간첩이 선거 유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시체는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우리 조상이 이처럼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월맹과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평화협상이 가능한데, 왜 북폭을 하여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가.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폭을 중지시키고 평화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월남의 패망으로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던 것입니다. 바로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가 대표적 간첩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월남 대중에게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며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었지만 당시의 월남국민들 대부분은 현혹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이 미국 내에서도 반전여론을 자극했으며, 이는 미국과 월맹이 파리에서 비밀 평화회담을 전개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디어1973년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이  월남으로 부터 전면 철수 하게 되자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에는 100여개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베트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습니다. 이같은 反美·反戰 데모를 주도했던 대부분은 간첩과 시민·종교단체의 조직적들로서 이들의 선전선동결과는 미군과 연합군의 전면철수 후에 쉽게 공산화 될 수있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월남이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맹을 훨씬 앞질렀지만 부패했고, 휴전협정 이전부터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활약하고 있던 간첩과 시민·종교단체들은 부패척결과 反美·反戰 평화를 명분으로 월남의 신경망을 장악해갔던 것입니다.
월남사회는 마치 오늘 날 우리나라가 처한 꼴과 비슷하게 남남분단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당시 여당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표방하며 파리 평화회담에 반대했으나 야당은 포용정책을 들고 나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며 악착같이 데모를 주동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월맹은 한쪽에선 평화회담으로, 다른 쪽에서는 대남공작으로 집요하게 공산화전략을 추구했으며,
1973년 1월 27일, 드디어 5년간을 끌어오던 베트남전이 종식되었습니다. 미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월맹에 40억 달러를 주고 '평화협정서'라는 종이조각을 사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은 거짓 문서에 지나지 않았으며, 키신저는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감시위원단을 만들었고,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등 4개국이 250명의 휴전감시위원단을 만들어 휴전선을 감시하면서 월맹의 외무차관이 이끄는 150명의 고문단을 사이공에 인절로 받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도 믿지 못해 미국은 영국, 소련, 프랑스, 중공 등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토록 하였습니다. 또한, 월남과는 방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따라서, 월맹이 휴전협정을 파기하게 되면 즉각 미국의 해공군력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하기로 굳게 약속했었고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각종 최신 무기를 모두 월남에 주었기 때문에 월남 공군력은 전 세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였으며, 이처럼 철저한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키신저는 주월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휴전체제가 최소한 10년은 갈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물론 휴전협정 당시 월남의 경제력은 월맹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월남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만일 월맹군이 협정을 깨고 도발해 온다고 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할 것이고 이후 월맹경제 원조도 중단하면 당시 세계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월남군 기동력과 화력으로 월맹군의 공세에 당연히 맞설 수 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는 믿지 않았으며, 오랜 전쟁으로 지친 월남국민들은 휴전으로 인해 평화무드에 들 떠 있었고,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사람,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1975년 9월로 예정된 월남 대통령 선거로 인해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요,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가 혼란해진 틈을 타서 만연하였고, 따라서, 국민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계층간의 갈등이 증폭되었으며, 좌익들의 활동공간은 점점 더 넓어져 가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고 주도 했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은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후 월맹정부는 그들을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역시 똑 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하층의 많은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 건 탈출에 나섰으며, 당시 정처없이 떠난 보트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명이지만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은 95만 명 정도로 집계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을 이대용공사께서 보는 관점으로 너무 비관적으로만 본다든지 하나의 단편적인 여론조사의 결과 하나 때문에 과민한 반응을 한다고 할런지는 모르지만, 얼마전 중앙의 일간지 여론조사에서 대학생의 의식성향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만일 북한과 미군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어느 쪽을 돕겠느냐는 답에서 66%의 응답자가 북한편을 들어야 한다는 응답을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라면 가히 지금의 상황은 북한의 김정일이 어쩌면 월남과 월맹의 상황보다 더 쉽게 통일의 목적을 달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는 친북세력, 북종세력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고 큰 소리치고 있는 현실을 우리가 직접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여론조사의 결과에서처럼 주한미군이 철수를 하게 되면 우리나라에 들어 와 있는  외국자본이 우선적으로 빠져나갈 것은 뻔할 것이고, 국내자본도 외국으로 많이 빠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혼란상태 내지 공황상태가 되고 안보불안이 겹쳐질 때 우리 정부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버스 떠나고 손 더는 격이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이념의 갈등 골이 깊어지고 장기적인 불황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정치꾼들은 엉뚱한 소리들만 지껄이고 있으니,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주변 국가들과 아시아 지역의 다른 나라들 중국과 인도, 일본 경제는 대부분 기대에 차 있습니다. 이미 중국은 올해의 성장률 전망치를 8.5%에서 9%로 상향 조정하면서 오히려 과열을 걱정해야 할 판이고, 인도의 내수나 수출 산업은 지칠 줄 모르고 확장하는 추세일 뿐만 아니라, 한 동안 침체 상태에 있던 일본 경제도 내수가 살아나면서 그동안 수출에 의존하던 성장 엔진이 더욱 힘을 내기 시작하므로서, IMF는 일본경제 회복을 “세계 경제의 희소식”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 정부는 올해 초 5%는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었지만 곧 바로 경제 운용의 실패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자 지난 여름에 4%로 하향 조정했다가 이번에는 다시 3% 대로 조정하였습니다. 정부는 국제적 고유가를 탓 하지만 고유가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미국이나 중국과 인도 및 일본 등의 경제는 내수를 살리므로서 고유가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IMF에서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경제성장 4.3%대는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우리의 장래도 이같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아·태지역 대표의 견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중국과 인도 등 주변국이 고성장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성장률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은 큰 문제”라고 경고하면서, 고도성장의 기적으로 기록되던 한국 경제가 이념과 과거청산의 갈등 속에서 세계경제의 갓길로 밀려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지박사의 글에서 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일을 주도하는 세력은 친북의 좌익 세력이라고 보는 게 보편적 사고라고 생각됩니다.바로 이들이 점차 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는 게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북한 실상을 전연 체험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들을 동포애와 민족주의로 선동하여 통일을 외치고 있는 데, 통일은 우리 민족이 가진 공통의 숙제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통일이 안 돼서 불행한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지박사가 지적 하였듯이 '애국이 먼저냐 삶의 질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해 이제 세계인들은 서슴없이 삶의 질이라고 대답합니다. 애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라면 통일염원은 민족이라는 감상적 상징에 대한 막연한 사랑입니다. 통일보다는 애국이 먼저요, 애국보다는 삶의 질이 먼저인 것입니다. 애국이 삶의 질을 파괴한다면 누구든지 애국의 길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물며 통일이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면 누구든 통일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국도 통일도 [삶의 질] 앞에서는 언제나 포기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이 수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통일이 이뤄진다면 남한 땅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땅이 될까요? 이 문제 해답은 그 누구라도 말끼만 알아 들어도 아니라고 답을 할 것입니다. 

철모르는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여론조사에서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 숫자가 많았지만 살기를 원하는 나라는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통일은 되어야 하지만, 자신들이 사는 동안에는 원치 않는다고도 하였습니다. 통일 10년의 세월이 흐른 독일은 동독의 인구가 서독인구의 25%에 불과했습니다마는 서독이 가진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도 25%의 인구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 북한의 인구는 우리의 50%를 넘는 수준인데, 우리의 경제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변수인 것입니다.

끝으로, 지박사가 거론하고 있는, "무조건 통일을 염원한다며 현대는 달러를 퍼주고(물론 정부의 비호와 묵인 하에서지만), 경기도 지사는 통일동산을 가꾸고 풍물놀이를 42일간이나 벌입니다. 모두가 다 생각없는 유치한 행위들일 뿐만 아니라 고약한 이적행위입니다.

김정일이 믿음이 가는 사람이던가요?

그와 통일하면 그 통일은 적화통일이겠습니까 또는 청화통일이겠습니까?

현정은, 손학규, 당신들이 꿈을 깨야 전체가 삽니다. 통일, 민족이라는시대착오적인 명분에 최면되어, 오늘도 현대를 통해 많은 달러가 김정일이라는 깡패두목-민족의 살인마에게 갑니다. 그에게 달러가 가면 우리 자식들이 전방에서 더 많은 고생을 하고, 우리는 전쟁위협, 적화통일 위협에 시달리게 됩니다. 현대는 대북사업에서 하루 빨리 손을 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현대는 이적행위를 했습니다. 김대중이라는 빨갱영罐胄?손잡고 현대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배반하였습니다."

물론, 과격한 지적이나 과민한 점도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모두가 심각하게 되새겨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