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스크랩] 믿음에 대하여 (1): 사랑은 항상 제일(第一)일까?

鶴山 徐 仁 2005. 8. 6. 21:30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복음성가를 다들 아시겠지요.  대전 침례신학 대학교 교회음악과에 계셨던 정두영 목사님이 만드신 노래인데, 노랫말은 성경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절에 속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정두영 목사님과 그 부인 한정강 교수님은 미국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난 다음, 1983년에 귀국하시기 전까지 약 4년간 리치먼드 한인침례교회에서 목회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는 바로 이 시절에 작곡된 노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1979년에 만들어진 노래인데 나중에 감미로운 목소리의 인기 가수 김세환이 불러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 복음성가의 노랫말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버전은 되도록 성경구절의 표현을 그대로 살리려고 애쓴 반면, 김세환이 부른 버전은 조금 더 현대 구어체로 고쳐졌습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구성과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에 불만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한가지는 이미 '사랑에 대하여'를 쓰면서 지적했지요.  멜로디가 너무 감미롭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의미'를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바람에 '처절한 인내'라는 사랑의 실상을 감추는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노래이므로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둘째 문제는 그보다 조금 더 심각합니다.  노랫말의 일부가 성경 본문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워낙 유명해진 노래라서 그런지 거의 모든 복음성가 책에 빠지지 않고 수록돼 있지만, 사실은 성경의 진짜 메시지에서 다소 벗어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래에 옮겨놓은 노랫말은 교회에서 주로 부르는 버전인데 어느 부분이 성경과 차이가 나는지 한번 찾아보시지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미 눈치를 채셨겠습니다만, 굵은 글씨로 쓴 마지막 부분이 바로 문젯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다고 표현은 그다지 충분한 표현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But now abide faith, hope, love,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항상 있을 것"이라는 표현을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다고 바꾼 것은 얼른 보아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시간적인 영속성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약간의 과장만 빼면 결국 같은 표현인 셈이니까요.  그러나 사실 한글 개역판 성경의 "항상 있을 것"이라는 표현 자체가 좀 부족한 번역입니다.

 

잉어 성경에서는 '어바이드(abide)'라는 동사를 썼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계속 존재한다'는 표현과 함께, 공간적으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뜻도 있고, 관계적으로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는 뜻도 갖습니다.

 

실제로 '어바이드'는 헬라어 성경의 '메노(meno)'라는 동사를 번역한 것인데, 이 메노가 바로 시간적인 지속성과 공간적인 부동성, 그리고 관계의 긴밀성을 모두 표현하는 동사입니다.  다음은 헬라어 '메노'의 뜻을 영어로 풀어놓은 것을 다시 한국말로 옮긴 것입니다.

 

메노(meno)
(공간적으로) -에 머무르다; -에서 떠나지 않다.
(in reference to place) to sojourn, tarry; not to depart
(시간적으로) 계속해서 머무르다, 없어지지 않다, 계속해서 있다,
(in reference to time) to continue to be, not to perish, to last,
(관계적으로) 한 덩어리로 남다, 따로 떨어지지 않다, 다른 것이 되지 않다.
(in reference to relationship) to remain as one, not to become another or different

 

공간적인 부동성이란 '사랑과 소망과 믿음이 이 세상에 변함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세 가지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 세 가지를 같이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또 긴밀한 관계가 유지된다는 말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서로 따로따로 놀아서는 안되고, 그 세 가지가 긴밀한 관계를 가진 채 마치 한 덩어리인 것처럼 유지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구절의 바로 앞의 7절에서는 사랑을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믿음이나 소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한글 성경에서 '항상 있다'고 표현한 것은 '메노'의 세 가지 의미 중에서 '시간적인 지속성'만 강조하는 다소 부족한 번역인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 원문의 의미를 모두 다 살려서 번역하려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한 덩어리로) 항상 (너희에게) 있을 것"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메노'의 공간적 부동성과 관계의 긴밀성을 무시함으로써 생기는 오해가 바로 '사랑의 송가'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구절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한 덩어리로 항상 너희에게 유지되고 있을 때"에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자칫 "믿음과 소망이 없을 때에라도 여전히 사랑이 제일"이라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근본 메시지와는 크게 다릅니다.  믿음이나 소망이 없을 때에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서술된 본래 의미대로 실천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꼭 머리카락 한 올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듯이 시시콜콜 따졌습니다만, 꼭 그러지 않더라도 믿음이 없다면 사랑이 그런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 다른 성경 구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못지 않게 유명한 구절이 바로 요한 복음 3장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16절)

 

이 구절에도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모두 나옵니다.  다만 그 세 가지의 주체가 조금 다릅니다.  첫줄에 나오는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둘째 줄에 나오는 믿음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셋째 줄에 나오는 영생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고 사람이 누리게 될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 비로소 소망도 갖게되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아 실천에 옮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는 사람이 맨 처음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모두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믿음이 소망이나 사랑에 선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3장13절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덕을 나열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순서를 유지한 것이 아닐까요?

 

요컨대, 사랑과 소망과 믿음은 모두 중요한 것이고, 항상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고, 서로 따로 떼어서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럴 때에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맨 처음 단계는 사랑이나 소망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그저 관성적으로 그 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에 문득 '믿음이라는 게 뭘까'하고 진득하게 생각해 보려고 하면 오히려 아뜩해 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서 '믿음'이라는 말이 과연 어떤 뜻일까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평미레/
조정희 드림.


                                                            가져온 곳: [평미레]  글쓴이: 평미레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