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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체반정(文體反正)=체제반정 -

鶴山 徐 仁 2005. 8. 6. 16:28

연암의 개성적 문체는 곧 체제에 대한 위협


 

열하일기 (상·중·하)/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보리

 

조선 후기 대표적인 금서(禁書) ‘열하일기’의 북한판 번역본이다. 남한에서도 몇 차례 번역되긴 했지만 학술적 용도가 강하기 때문이었는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대부분 절판 상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반인들을 향한 첫 번째 번역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虎叱’을 ‘호질’로 옮기지 않고 ‘범의 꾸중’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당대의 철학 정치 경제 천문 지리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을 담고 있는 ‘열하일기’의 의미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떠난 연암 박지원(1737~1805)은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 북경을 거쳐 청나라 황제가 거주하는 열하를 방문하고 8월 20일 북경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10월 27일 한양에 돌아왔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6월 24일부터 8월 20일간의 두 달, 즉 압록강-북경-열하-북경까지의 여정만을 담고 있다.

늘 있어 오던 연행록의 하나인데 왜 하필이면 연암의 ‘열하일기’가 금서가 되어야 했던 것일까? 그 비밀은 정조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근일에 문풍(文風)이 이와 같이 된 것은 그 근원을 따지면 박지원의 죄 아닌 것이 없다. ‘열하일기’는 나도 이미 숙독하였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전파된 후로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마땅히 이것을 맨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매듭을 풀게 할 것이다.”

정조는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이 치열하게 맞붙던 시기의 국왕이다. 한때 근대와 서양에 관심을 갖기도 했던 정조는 결국 개방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통 사수로 돌아선다. 이 지점에 연암의 ‘열하일기’가 놓여있는 것이다.

 

문체반정(文體反正), 국왕 교체에나 쓰는 반정(反正)이라는 말을 사용할 만큼 문체는 곧 체제였으며, 정조는 박지원의 개성적인 문체에서 체제에 대한 위협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가져온 곳: [북경이야기(北京故事)]  글쓴이: 지우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