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소설가 이순원님께서 세계일보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오래전 결혼을 하여 자식이 장성한 어른들은 자신의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던 때를 잊지 못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면 그 부모도 초등학교 일학년이다. 일학년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과 내일의 준비물, 모든 것을 아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그 아이가 자라 고3이 되면 부모도 다시 한번 아이와 똑같은 고3 수험생이 되어 일년 동안 입시전쟁을 치른다. 그러면서 아이와 부모의 처지가 일치하는 게 여기가 끝인가 여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남자일 경우, 대학에 다니는 중이든 졸업한 다음이든 군에 가게 되면 다시 한번 부모도 ‘군대 시절’을 겪는다.
아이와 똑같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경험은 좀 색다르다. 몇 년 전 그 아이가 고3이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고3 학생과 또 고3 부모들과 경쟁적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자기가 낳은 그 아이만의 부모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군인들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어느 GP(전방감시초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 모두 내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며, 군의 시스템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던 것이다. 나 역시 어느 신문의 한 지면을 통해 거칠게 국방부와 우리 군 상부를 통박하며 우리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고 빌었지만, 지난 7월 26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장병들이 임진강 유역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부대원 한 명이 강물에 빠져 급류에 휩쓸리자 전우를 구하기 위해 두 차례나 목숨을 건 구조에 나섰다가 네 명이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훈련 중 한 사병이 강가에 바짝 붙어 걷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자 그 즉시 중대장과 병사 3명이 필사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다시 소대장과 두 명의 병사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모두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당시 임진강은 수심이 깊고 빠른 데다가 하류에선 강물이 역류하는 만조기여서 곳곳에 소용돌이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럴 때 보모들은 다시 한없이 안타까워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앞서 사고들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우리는 장마나 홍수 때 물이 불어난 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그것은 그냥 강가에 서서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런 강에 먼저 빠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은 자신 또한 그 물살에 그대로 휩쓸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뛰어드는 것이다.
처음 한 명이 물에 빠진 것은 사고일 수 있지만, 뒤이어 그런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급류 속에 뛰어든 세 명의 장병이 함께 목숨을 잃은 걸 우리는 그저 사고라고만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어 언제라도 비슷한 위험 상황에 즉각적으로 발휘되는 숭고한 희생정신인 것이다.
함께 뉴스를 본 아내는 걱정을 하며 우리 아이도 그런 상황이면 물속에 뛰어드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그렇게 가르쳐왔고 당신도 그렇게 가르쳐온 일이 아니냐, 그리고 그것은 이 나라 부모들 모두 자기 자식을 그렇게 가르쳐와 우리 아이들 모두 그렇게 하고 있는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들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 한 말이고, 실제로 그런 위험 상황 속에서 자기 목숨을 던져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장병들의 가족에게 같은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최근 몇 건의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해도 우리 군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곳보다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아들과 같고 나라의 꽃과 같은 박승규 중위, 안학동 병장, 강지원 병장, 김희철 일병, 부디 영면하시라.
[세계일보(07.31)자료]
오래전 결혼을 하여 자식이 장성한 어른들은 자신의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던 때를 잊지 못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일학년이면 그 부모도 초등학교 일학년이다. 일학년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화장실로 가는 길과 내일의 준비물, 모든 것을 아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그 아이가 자라 고3이 되면 부모도 다시 한번 아이와 똑같은 고3 수험생이 되어 일년 동안 입시전쟁을 치른다. 그러면서 아이와 부모의 처지가 일치하는 게 여기가 끝인가 여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남자일 경우, 대학에 다니는 중이든 졸업한 다음이든 군에 가게 되면 다시 한번 부모도 ‘군대 시절’을 겪는다.
아이와 똑같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경험은 좀 색다르다. 몇 년 전 그 아이가 고3이었을 때는 세상의 모든 고3 학생과 또 고3 부모들과 경쟁적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자기가 낳은 그 아이만의 부모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군인들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어느 GP(전방감시초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 모두 내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며, 군의 시스템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던 것이다. 나 역시 어느 신문의 한 지면을 통해 거칠게 국방부와 우리 군 상부를 통박하며 우리 아이들의 안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고 빌었지만, 지난 7월 26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 장병들이 임진강 유역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부대원 한 명이 강물에 빠져 급류에 휩쓸리자 전우를 구하기 위해 두 차례나 목숨을 건 구조에 나섰다가 네 명이 익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훈련 중 한 사병이 강가에 바짝 붙어 걷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자 그 즉시 중대장과 병사 3명이 필사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다시 소대장과 두 명의 병사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발휘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모두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당시 임진강은 수심이 깊고 빠른 데다가 하류에선 강물이 역류하는 만조기여서 곳곳에 소용돌이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럴 때 보모들은 다시 한없이 안타까워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앞서 사고들과 전혀 성격이 다르다. 우리는 장마나 홍수 때 물이 불어난 강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그것은 그냥 강가에 서서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런 강에 먼저 빠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은 자신 또한 그 물살에 그대로 휩쓸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뛰어드는 것이다.
처음 한 명이 물에 빠진 것은 사고일 수 있지만, 뒤이어 그런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급류 속에 뛰어든 세 명의 장병이 함께 목숨을 잃은 걸 우리는 그저 사고라고만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어 언제라도 비슷한 위험 상황에 즉각적으로 발휘되는 숭고한 희생정신인 것이다.
함께 뉴스를 본 아내는 걱정을 하며 우리 아이도 그런 상황이면 물속에 뛰어드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그렇게 가르쳐왔고 당신도 그렇게 가르쳐온 일이 아니냐, 그리고 그것은 이 나라 부모들 모두 자기 자식을 그렇게 가르쳐와 우리 아이들 모두 그렇게 하고 있는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아들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 한 말이고, 실제로 그런 위험 상황 속에서 자기 목숨을 던져 희생정신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우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장병들의 가족에게 같은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최근 몇 건의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해도 우리 군은 우리 사회의 어느 곳보다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아들과 같고 나라의 꽃과 같은 박승규 중위, 안학동 병장, 강지원 병장, 김희철 일병, 부디 영면하시라.
[세계일보(07.31)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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