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유럽의 대학에서뿐 아니라 지식을 추구하며 삶의 뜻을 찾아보려는 세계 각처의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서구의 몰락 이나 토인비(Arnold J. Toynbee)의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한 거리감을 주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타인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지만,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지상의 과제이고 보면, 모든 문화는 사람의 일생처럼 출생과 성장의 과정을 지나 결국 사망할 수밖에 없다는 슈펭글러의 이론이 무슨 큰 어필이 될 것인가? 토인비가 결정론(決定論)을 지양하고 환경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중요시했지만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그의 역사의 연구 를 통독할 만한 정력을 가진 사람도 드문 것이니, 역사는 더욱 짙은 안개 속에 몸을 사리는 듯한 인상조차 없지 않았다.
랑케의 철학은 물론 헤겔이나 마르크스(Karl Marx, 1818~83.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철학자)의 역사에 대한 풀이도, 머나먼 항구의 기적소리처럼 아득하기만 하고,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 독일의 철학자), 콜링우드(R.G. Collingwood, 1889~1943),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의 견해도 따분하기만 하던 차에 역사철학을 대중적으로(반드시 학문적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룬 카아(E.H. Carr, 1892~. 영국의 국제 정치학자)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라는 얄팍한 책이 한 권 나왔다. 그것이 1962년의 일이었다.
이 책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출판된 지 3년 만에 8판이 인쇄되었다니, 역사학에 관련된 책자가 이렇게 잘 팔리기는 아마 역사 이래 처음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사학자 베커(Carl Becker) 교수의 누구나가 자신의 역사가(Every Man His Own Historian) 라는 책이 잘 팔렸다고 하지만 카아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잘 팔린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케임브리지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1961년에 트레벨리안(G.M. Trevelyan, 1876~1962. 미국의 역사가) 강좌를 담당하여 여섯 차례의 강연을 하였는데 그 하나하나가 제각기 독자적 테마를 지녔기 때문에 대학생 정도의 지성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우선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현대인은 길고 지루한 것에는 아주 질색이니까 그러한 청중의 심리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BBC가 전국 방송망을 통하여 이 강연을 그대로 영국 국민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어떤 심오한 이론이나 학설일지라도 대중 속에 파고드는 박력이나 설득력을 지니지 않으면, 물리학이나 화학이 아닌 이상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법이다. 카아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 를 읽으면서 많은 사이비 지식인들이 '나도 결코 무식한 사람은 아니다' 라는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학의 깊은 진리가 대단히 평이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평을 받은 둘째 이유는, 과거의 인간의 경험과 업적, 소위 우리가 문명 또는 문화라고 부르는 인류의 유산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지던 1960년대에 이 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의 불행에 대해서, 살아있는 어느 지도자나 난폭한 어느 계급을 향해 그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따져보았자 별 수 없으니까) 지난날을 한번 허탈한 심정으로 돌이켜보고 싶은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서구 사회에 다시 고개를 드는 이른바 '역사학의 붐'은 인류가 직면한 이 현실의 피곤과 초조와 좌절감의 타개책이 혹시 거기서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과연 무엇을 물려주고 갈 것인가 생각할 때 '나는 살아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고 탄식한 전도서(傳道書) 기자의 심정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고 믿는다. 오늘날 인류의 현실은 냉혹하다 못해 참혹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
끝으로 이 책이 많이 읽히는 가장 큰 원인은 카아 교수의 견해 자체가 역사학도들에게 많은 유익한 암시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도 사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하나의 과학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사실의 나열이 곧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을 모조리 역사 속에 집어넣는 일이 불가능할진대,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것은 결국 역사가가 잡다한 사실들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만을 추려서 '역사' 라고 단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사실이냐 하는 문제는 그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시대적 환경과 그의 철학, 인생관, 가치관 등등에 좌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가 과거를 변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과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카아 교수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History is a continu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라고 한다면 그 대화 속에서 그 대화로 말미암아 현재만이 과거의 영향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보는 우리의 견해가 달라진다는 것도 역사는 결코 죽은 학문이 아니고 '어제'와 '오늘'이 부단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계속 생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말대로, 지나간 2백 년 동안 역사가는 인류의 진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현재라는 것이 다 정당화되지는 못할망정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장밋빛 꿈속에서 역사가들뿐 아니라 정치가, 철학자, 사회 개량주의자, 혁명가, 신학자가 대개 낙관론(樂觀論)을 신봉하여 왔다.
인류는 불행한 처지에서 행복한 처지로,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끝없이 향상하고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불완전의 고민은 장차 실현될 완전에의 희망과 확신으로 위로되리라고 믿었다. 'is'와 'ought' 사이의 엄청난 간격조차도 그다지 괴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낙관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순진한 꿈이 깨어지고 오늘의 지성인은 두려움에 떨며, 참혹한 현실의 중압감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비관론(悲觀論)으로 충혈된 피곤한 눈을 비비며 역사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회의주의(懷疑主義)에 사로잡힌 역사가는 역사에는 의미도 없고 방향도 없으며 진보라는 개념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며, 신학자는 역사의 의미를 역사 밖에서 찾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서글픈 시대를 맞이하였다. 카아 교수는 그러한 현실에 어지간히 민감한 역사가다.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가의 고민은 무엇이며, 현실의 착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무엇이냐? 인류의 장래에는 희망이 있느냐? 과거를 안다는 역사가에게서 민중이 무슨 대답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만은 부인할 도리가 없다.
우리는 이성에 대해 신념도 잃었고, 이 시대의 지식인이니 학자니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역사뿐 아니라 생존 자체도 무의미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중이 아직도 맥주 한 잔과 불고기 2인분에 커다란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갓난아기의 토실토실한 손이 허공을 저으며 방긋 웃어주는 한, 인류의 앞날을 암담하다고만 비관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제 욕심 때문에 민중의 자유를 억한하고, 일체의 반대의견을 봉쇄하고 반대자의 머리에 몽둥이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은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자연 미래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카아 교수와 함께 낙관주의자로 남아있자! 그가 인용한 갈릴레오(Galileo, 1564~1642.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의 말대로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을 테니까. "Eppur si mu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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