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부 1급 정보] ○…주말 저녁을 한 여자에 빠져 보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 여자를 봤고,커피숍에 앉아 그 여자의 얘기를 들었다. 마지막엔 침대에 누워 그 여자와 함께 울었다.
와리스 디리.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유목민 소녀에서 세계적 패션 모델이 된 현대판 신데렐라. 여성 성기 절제라는 참혹한 비밀을 고백해 세계적 인권 이슈로 만들어
내고 유엔 인권 특별대사로 임명된 여성. 와리스의 이야기는 삶을 살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한다.
와리스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용기이다. 그녀는 맨발로 사막을 건넜다. 13세의 아프리카 소녀가,집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미개한 소녀가,새벽 미명을 타고 집을 나와 사막을 질주한다. 아버지가 낙타 다섯 마리를 받고 60대 노인과 결혼시키려는 걸 안 순간 그녀는
목숨을 건 모험을 선택했다.
영어도 못 하고 심지어 버스도 처음 타는 이 소녀는 해도 너무하다 싶은 운명의 손을 통쾌하게 뿌리치며
소말리아를 거쳐,영국으로,뉴욕으로 이동한다. 낙타를 몰고 물을 찾아 떠나던 것처럼. 악마 같은 사내들을 때려눕히기도 하고,여권 위조에 위장
결혼도 거침이 없다. 와리스는 명랑만화의 주인공처럼 도무지 지치는 법이 없고 좌절하는 법이 없다. 아프리카의 태양이 그녀를 그렇게 키웠는지
모른다.
사막을 건너 온 와리스는 뉴욕으로 와서 꽃이 되었다. 가정부 생활을 거쳐 맥도널드 점원으로 일하던 중 유명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패션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녀는 ‘흑진주’ 나오미 캠벨과 함께 수퍼모델로 성장한다.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처음으로 집도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퍠션계의 수많은 꽃들 중 하나로 머무르지 않는다. 사막을 건너온 그녀는 되집어 사막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여성들을 위해서.
“여인이 면도날을 닦는 동안 엄마는 스카프로 내 눈을 가렸고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리고 곧 내 살이,내 성기가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딘 칼날에 쓱싹쓱싹 살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허벅지의 살이나 팔을 자르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 잘려나가는 부분이 온 몸을 통틀어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와리스는 패션지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여성 할례,즉 여성 성기 절제 수술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끔찍하고 수치스런 아프리카 여성들의 비밀이 와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서구사회는 경악했다. 와리스의 고백을 시작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명의
아프리카 소녀들에게 성인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할례를 저지하기 위한 인권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와리스의 인생 전체는 원시적
생명력으로 번들거린다. 그 생명력은 단순하고 강인하며 낙관적인 어떤 힘이다. 와리스는 계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반응한다. 어쩌면
그것이 실제 삶이다. 서구인들은 그녀에게 묻는다. “유명해진 기분이 어때요?” 와리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유명하다니,그게 무슨 뜻인가?”
김남중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