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보리밭과 여인

鶴山 徐 仁 2005. 7. 10. 21:20

그림 : Lee Sook Ja / 글 : 서영은 나는 여성에게 잘 반한다. 마치 내가 남성인 듯이 잘 반한다. 아름답고 쾌활하고 우아하고 총명하고 싱싱하고 투명하고 따스하고 포근한 여성에게보다는, 삶의 거친 뒷발질에 채여 찢기고 상처입어 우둔해지고 멍청해진 여성에게 더 잘 반한다.



추운 날 우물가에서, 푸르딩딩한 맨살의 허리통을 드러내놓고 김장을 하거나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의 펑퍼짐한 뒷모습만큼 이 세상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슬픔은 그냥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온몸을 어떤 이빨로 자근자근 씹히어, 사뭇 저리고 아픈 그런 고통이다.


운명으로부터 여성들이 입은 상처가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이 유난스런 감정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복잡미묘해졌다. 나는 내가 만나는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서 순간순간 '맨살이 시린 허리통'을 엿보았다.



그것은 비단결같이 고운 손가락에 끼어진 1캘럿짜리 다이어 반지 속에도 있었고, 관객이 퍼붓는 박수의 소낙비 속에서 환호에 답하는 연주가의 웃음, 호텔의 사우나탕에서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고 벌렁 누워 있는 살찐 벌거숭이, 잘 생기고 당당해 보이는 신랑의 건장한 팔 속에 작은 새처럼 포근하게 안기어 단꿈을 꾸는 신부의 얼굴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렇다. 삶은 우리를 아름답게 행복하게 그냥 놔두지 않는다. 삶이, 시간이 바로 난폭한 폭군이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의 폭력을 뛰어넘어, 신처럼 자비로운 손길을 뻗쳐, 삶이 벌거벗겨놓은 이 세상 나의 모든 '누님들'의 시린 허리통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꿈꾼다.



다시는 그녀들이 아파서 우는 일이 없도록. 내 속에는 언제나 저 전설같은 노래의 한토막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누님, 누님 울지마오. 내 서울 가면 꽃신 사다줄게 울지마오.


 
가져온 곳: [추억만들기.]  글쓴이: 민주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