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한반도 적벽대전, 북서풍을 동남풍으로
트럼프의 세계 구상 '큰 그림'
"러시아를 중국서 떼내겠다"
우크라발 북서풍, 미·러 회복 후
중국 고립, 트럼프·김정은 회담
하지만 우리 案은 '한·미·일 동남풍'
러 견인·중 견제, 북 끌어내는 데
북서풍보다 한·미·일 연대가
더 유용하다고 트럼프 설득해야
김성한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입력 2025.03.10. 00:15업데이트 2025.03.10. 16:19
2017년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속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낸 후 미·러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낼 참이다. 미·중 경쟁을 미국 대 중·러 구도로 끌고 가는 건 하책(下策)이기 때문이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가해지자, 러시아는 중국과 연대했다. 이를 2014년 이전으로 되돌려 놓으면, 중·러가 멀어져 미국이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식 셈법이다. 미·러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도 미국에 다가올 걸로 기대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려면 중국이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러시아에 줘야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무력 침공 책임을 묻지 않고 경제 제재를 해제하면 푸틴이 만족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시진핑에게 신세를 졌다. 중국의 수입 확대로 원유, 천연가스, 석탄 수출을 크게 늘렸고, 반도체, 드론, 산업용 기계 등을 제공받았다. 따라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푸틴과 더 친해질 수는 있어도, 러시아의 제1 교역국인 중국을 밀어낼 수는 없다.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이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한, 러시아는 미·중에 양다리를 걸칠 거다. 북·러 관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북한의 파병 덕분에 우크라이나 전황을 개선했다면 푸틴은 김정은에게 빚을 진 셈이다. 더욱이 푸틴이 과거 소련 제국 휘하에 있었던 나라에 대한 ‘고토(故土) 회복’ 야심을 가지고 있다면, 북한과의 동맹은 버릴 수 없는 카드다. 북한도 러시아를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종전을 앞두고 북한과 성급한 대화를 시도한다면 일이 꼬일 수 있다. 트럼프는 2018년 ‘중재’ 역할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기 때문에, 이번엔 러시아 푸틴 정부에 미·북 간 중재를 요청할 것이다. 푸틴은 응할 것이고, 북핵 문제의 구체적 대응 방안은 커튼 뒤에서 시진핑과 상의할 것이며, 미·북 대화에 응하도록 김정은을 설득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트럼프는 북한만이 아닌 고도로 조율된 북·중·러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트럼프는 2019년 2월 김정은이 핵 포기를 할 생각이 없음을 간파하고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결렬시켰다. 그러나 이번엔 러시아가 중재하고 중국이 러시아를 배후 지도하는 가운데 미·북 협상을 하노이보다 약간 진전된 선에서 ‘스몰 딜(small deal)’로 끝낼 수 있다. 이러면 푸틴과 시진핑은 트럼프를 우크라이나 종전, 중동 안정화, 북핵 문제를 해결한 ‘피스 메이커(peace maker)’로 치켜세우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동결과 부분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 제재 해제와 미·북 관계 정상화로 응답하면,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한반도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흔들게 된다. 결국 한국도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적벽대전(赤壁大戰, 208년)’은 중국 후한(後漢) 쇠퇴 이후 삼국시대의 판도를 가르는 분수령이었다. 조조(曹操)는 전함들을 나란히 묶어 북서풍을 따라 장강(長江) 중류로 내려와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을 공격한다. 그러나 북서풍이 동남풍으로 바뀌는 순간에 유비·손권의 연합군은 쇠사슬로 연결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조의 함대에 화공(火攻)을 퍼부어 대승을 거두었다.
유라시아 서쪽 우크라이나에서 동쪽 끝 한반도로 북서풍이 불 조짐이 있다. 미·러 관계 개선을 통한 중국 고립과 미·북 관계 개선이라는 트럼프의 바람이다. 그 북서풍을 타고 푸틴-시진핑-김정은이 서로 연대해 전략적 이익을 관철하려 들 것이다. 이를 동남풍으로 바꿔 북·중·러의 연결 고리를 약화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미국이 한·미·일을 핵심 축으로 해서 전략적 협의를 강화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한·러, 미·러, 일·러 관계를 정상화한 후,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야 북핵 해결에 근접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동남풍을 굳게 믿는 정부라면 올해 11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담을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북서풍에 편승하기보다 한·미·일의 동남풍을 활용하는 것이 러시아를 붙잡고, 중국을 견제하며, 북한을 끌어내는 데 훨씬 유용한 전략 자산임을 한·일이 끈질기게 설득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우크라이나보다 카드도 많고, 미국과 윈-윈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갖춘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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