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국가안보실 불능… 대기업을 '구원투수'로
官이 작동 못 하니 '기업 외교'로… 우리 대기업 외교력·정보력 대단
美 코카콜라의 브랜드·외교력, 스위스 네슬레의 현지 농업 전략, 미·중 갈등 속 테슬라를 보라
4대 그룹이 먼저 팔 걷어붙이고 현지 공관이 '기업 외교' 지원해 대한민국 국익 지켜야 한다
김성한 고려대 경제기술안보연구원장·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입력 2024.12.13. 00:10업데이트 2024.12.13. 00:39
비상계엄 사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현실화하면서,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 도전을 극복해 나가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내년 1월 20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는데, 대통령실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면서 백악관과의 협의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대통령실의 ‘불능화’는 대내외 도전에 대처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를 의미한다.
특히 국가안보실은 국정원의 정보 지원을 받으며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와 관련 정책을 조율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경제 안보를 협의하며 정책 방향을 잡는 곳이다. 부처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힘든 사안 또는 부처 간 이견 등이 늘 발생하기 때문에, 상시적 긴장감 속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사달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대북 위기 관리는 물론 외교·통일, 국방, 경제 안보를 챙겨야 할 국가안보실이 현재 불능 상태에 빠졌다. 대안은 총리실 인력을 보강하거나, 외교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는 것이다. 둘 다 살얼음판을 걷는 건 똑같다.
이 같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우리 대기업을 활용해야 한다. ‘민관 협력’을 얘기하지만, 관(官)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든 상황이니, 민(民)의 대표 주자인 기업이 나설 수밖에 없다. 과거 ‘재벌(財閥)’로 불리다가 1998년 외환 위기와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한 우리 대기업 중에는 상당한 수준의 외교력과 정보력을 갖춘 데가 많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을 포함한 재계 순위 10위권 안팎의 대기업이 ‘기업 외교(corporate diplomacy)’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코카콜라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외교력을 발휘했다. 미군이 참전하는 각국 정부 및 군 지도자들과 협상하여 미군 주둔 지역 근처에 코카콜라 공장을 지은 것이다. 그 결과 미국 문화와 가치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으며, 전쟁 후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평판과 시장 점유율을 높여 국부 증진에 기여했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식품 기업인 네슬레는 2009년부터 코트디부아르,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코코아 생산 지역의 정부, 비정부기구(NGO),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농업 생산 과정에서 환경, 경제,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농업을 구현했다. 그 결과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여, 스위스의 국가 브랜드 제고에 기여했다.
미국 기업 테슬라는 중국 정부가 자동차 부문을 외국 기업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완화하자, 즉각 중국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무역 전쟁’을 선포하여 미·중 관계가 험악해진 와중에도 테슬라는 2019년에 상하이에 기가팩토리, 즉 대규모 전기차 생산 공장 건설 허가권을 따냈다. 그 결과 외국 소유 첫 번째 자동차 제조업체로 등극했다.
이러한 기업 외교 성공의 공통적 비결은 정책, 규제, 허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 정부와 협력하는 것,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NGO 및 지역사회와 유대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국제기구, 타 기업, 학계와 협력하여 복잡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글로벌 대응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조선, 원전, 배터리, 자동차, 에너지, 방산 분야 우리 대기업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미국 트럼프 진영과의 네트워킹에 매진하였다.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핵심 조언 그룹, 외곽 그룹, NGO 및 지역사회와의 접촉면도 넓혀왔다. 그간 쌓아온 글로벌 대응 네트워크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우리 현지 공관이 기업 외교를 측면 지원해야 한다. 주미 대사의 지휘 아래 외교부, 재경부, 산자부, 국방부, 국정원 출신 외교관들이 기업 외교를 지원해야 한다. 주재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간에 업무 중복이나 불필요한 경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하석상대(下石上臺)’라는 말이 있다. “아래 돌 빼서 윗돌 괸다”는 뜻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힘든 현 상황에서, 임시변통이지만 순발력 있게 외교력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안보실이 작동 안 하고, 관련 부처 장관들이 난처한 처지가 된 상황에서, 그들을 대신해 우리 글로벌 기업들이 외교를 하고, 정부가 조용히 뒤에서 지원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수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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