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4.12.10. 00:05업데이트 2024.12.10. 09:25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YTN
윤석열 대통령만큼 워싱턴 조야(朝野)에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 지도자도 별로 없다. 지난해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마이크를 잡고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워싱턴이 노래를 부른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에 대해 이만큼 드라이브를 건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는 시대에 체급에 걸맞은 가치 외교를 주창하며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지난해 3월 한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단독 개최한 게 우연이 아니고, “윤 대통령의 결단은 노벨평화상감”이란 국무부 부장관의 립서비스에도 어느 정도 진심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게 지난 3일까지의 얘기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외교·안보 분야에서 윤석열 정부의 ‘레거시’라 할 만한 것들이 다 무너졌다. 한·미·일 협력에 이정표가 된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새 포장지를 입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들이밀 수 있는 사람은 윤 대통령이 적임자였다. 그래서 한·미·일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해 대못을 박고, 트럼프가 이를 계승·발전시키도록 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물밑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제 수포로 돌아갔다. 2년 전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북한만 바라보던 외교의 지평을 확장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역시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정족수 미달로 폐기됐지만 5일 국회에 보고된 탄핵소추안에 이런 대목이 있다.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북한,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집했다.” 거기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와 대남 위협, 대북 제재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고 이제는 군사 기술까지 넘겨준다는 러시아, 북한을 방조하면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같은 우리 자위권에는 안중에도 없었던 중국에 관한 얘기는 없다. 대신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했다” “중국에도 셰셰(고맙다는 중국어)하면 되고, 대만에도 셰셰하면 된다”는 야당대표의 세계관이 배어 있다.
전 정부 외교 수장은 외신에 나와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윤 대통령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을 직격했다. 거기에는 야당이 정부 관료를 22차례 탄핵한 국내 정치적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게 누구 탓이겠는가. 비상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가 모든 걸 집어삼킨 시간. 지금 한국 외교는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판이 다시 짜이는 시기에 우리는 먼 길을 돌아가게 됐다. 대통령이 한순간의 오판(誤判)으로 자신이 쌓은 탑을 스스로 무너뜨렸으니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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