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4.07.06. 00:15
공화국은 국민이 선거로 자기를 다스릴 통치자를 뽑는 국가 체제다. 핵심은 선거를 통한 국민 선택이다. 민주공화국은 헌법에 모든 국민에게 자격 제한 없이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선거권을 부여하는 보통선거를 비롯한 평등·직접·비밀선거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이런 ‘뽑는 사람’ 규정과 병행하는 것이 ‘뽑힐 자격이 없는 사람’을 열거한 피선거권 제한 규정이다. 이 두 가지가 흔들리면 공화국은 위기를 맞는다. 공화국엔 ‘평균 수명’이 없다. 빨리 죽는 공화국도 있고 몇백 년 사는 장수(長壽) 공화국도 있다.
공화국이 건강 수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 제도가 정당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 통로(通路)다. 이 통로가 막히거나 왜곡되면 선거 과정과 결과가 왜곡돼 독재 공화국으로 전락하거나 국민 저항을 불러 존폐(存廢) 위기를 맞는다. 정당은 각종 공직 선거 후보자를 추천해 국민에게 국정에 참여하는 실질적 수단을 제공한다. 헌법이 정당에 대한 국가 보호를 규정하고 국민 세금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당이 이런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려면 그 목적·조직·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고 민주공화국의 기본 질서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 하고 2항은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실은 헌법 제1조와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가진 제1당 민주당은 10여 가지 중죄(重罪) 혐의로 4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씨를 당수(黨首)로 재선출하기 위해 당의 헌법과 법률인 당헌·당규에 각종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이씨와 민주당이 이런 변칙과 무리를 서슴지 않는 목적은 다음 대선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는 말로 취임 선서를 한다. 자신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회 개헌 1달 만에 무더기로 탄핵과 특검을 쏟아내 국가를 마비시킨 이씨가 헌법 준수를 제1 사명으로 하는 대통령 후보로 합당(合當)한가. 범법(犯法) 형사 피고인을 당수로, 나아가 대선 후보로 국민에게 들이미는 민주당이 국가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민주적 기본 질서를 따르는 정당이라 할 수 있는가.
‘이재명 리스크’ ‘재판 리스크’는 사태를 과소(過小)평가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사태를 이렇게 보면 머지않아 ‘헌법 위기’ ’공화국 존폐 위기’와 부딪히게 된다. 위기는 내리막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재판 끌기 전략이 실패했을 때 이씨가 순순히 법원 판결에 승복하겠는가. 승복하지 않는다면 그가 동원할 다음 수단은 무엇이겠는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의 해석 논란에 대한 이씨의 침묵은 무슨 뜻을 담고 있는가. 한 해석은 이씨가 1심·2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그 형(刑)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대선에 당선 또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해도 대통령직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대통령에 취임하면 현재 진행 중인 모든 재판은 중단되고 임기가 끝난 후에 재판을 속행한다는 것이다.
후자(後者)가 이씨에게 유리하다. 그런데도 그는 침묵한다. 결론은 헌법재판소에 가야 내려질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라는 대규모 찬반 시위로 두 조각이 난다. 폭도(暴徒)로 변한 군중에 포위된 헌법재판소에서 제대로 심리가 가능하겠는가. 이씨의 의도적 침묵은 ‘혼란을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받아들이는 이씨 심중(心中)을 반영한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돌아오면 세계는 ‘힘 있는 국가는 책임감이 없고’ ’책임감을 느끼는 국가는 힘이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직격탄(直擊彈)은 한반도에 떨어진다.
자기를 지킬 수 없는 무장(武裝) 해제된 공화국은 몰락한다. 공화국은 외침(外侵)에 대비해 군대를 두고 헌법과 법률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와 법원을 뒀다.
사법부는 이씨와 민주당의 재판 지연 전술에 휘둘리지 말고 황급히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너무 늦지 않게 법 절차대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공화국을 구하는 길이다.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 어깨에 공화국 방위의 짐을 지게 하는 마음은 무겁다. 두어 달 전 ‘아무래도 큰일이 닥칠 것 같다’며 ‘헌법 84조 논란을 챙겨보라’던 50년 지우(知友) 노(老)판사 목소리가 밝지 않았던 게 가슴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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