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 식물국회 괴물국회 [조선칼럼 노정태]
대만 총통·행정부 권한 축소안
친중 성향 야당이 밀어붙이자
여당, 난투극 벌이며 통과 막아
국힘에 부족한 건 의석 아닌 의지
명확한 목표·지향도 없어
대만서 벌어진 일 남 일 아니야
계속 식물국회로 끌려다니면
'괴물국회' 탄생 보게 될 것
입력 2024.05.29. 00:15업데이트 2024.05.29. 07:03
2024년 5월 17일 대만 입법원에서 여야 의원들이 법안처리를 두고 몸싸움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7일, 대만. 신임 라이칭더 총통의 취임을 사흘 앞두고 입법원(국회)에서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특히 민진당 궈궈원(郭國文) 의원이 연단에 놓인 법안 서류를 낚아채 국회를 빠져나가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마치 터치다운을 시도하는 미식축구 선수처럼 서류를 끌어안은 채 회의장 밖으로 달려나갔던 것이다. 어제 종영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제목을 빌자면, ‘서류 들고 튀어’라고 할까.
이런 모습이 연출된 이유는 대만이 극심한 정치적 격랑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해당하는 총통은 민진당이 가져갔지만 원내 제1당은 야당인 국민당이 차지한 여소야대 정국이다. 국민당은 제2야당인 민중당과 손잡고 과반 의석을 확보한 후 이른바 ‘5대 국회 개혁 법안’을 통해 행정부를 압박하고자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만 국회는 총통, 고위 군 장성, 시민 단체 등을 소환하여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소환 대상자가 소환을 거부하거나 증언에 거짓이 있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총통은 정기적으로 국회에 보고를 해야 하며 인사권 행사에도 국회의 동의를 요한다.
국회는 반대로 어떤 책임을 부여받게 될까? 전혀 지지 않는다. 도리어 국민이 국회를 비판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국회를 모독하는 개인은 벌금이나 구류 등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내용이 ‘국회 개혁 법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정국 속 여당인 민진당의 입장에서 볼 때 ‘5대 국회 개혁 법안’의 목적은 분명하다.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국회 의석 수를 앞세워 ‘괴물 국회’를 만들고 행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국민당의 입장에서는 다른 논리를 제시할 테지만 민진당으로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친중이냐 독립이냐,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동물 국회’의 오명을 무릅쓰고 난투극을 벌여가며 법안 통과를 막은 이유다.
우리에게 대만은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가까운 외국이다. 더구나 대만은 대한민국과 유사한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수많은 싱크탱크가 중국의 침공 내지 무력을 동원한 해상 봉쇄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실제로 중국은 이번 달에 대만 봉쇄 군사훈련을 감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통과 행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친중 성향의 야당이 밀어붙인다. 동물 국회 난투극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런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다. 21대 국회를 복기해 보자. 민주당은 반발을 무시한 채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자신들이 만들었던 공수처법을 합의 없이 뜯어고쳤다. 2021년 5월 성폭력 피해자인 공군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자 불과 3개월 만에 군사법원법을 바꾸면서 군내 사건 사고에 대한 수사권과 재판권을 찢어놓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수사가 지연된 것에는 그러한 졸속 입법의 영향이 없지 않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2022년, 이른바 ‘검수완박’을 위해 민형배 의원이 탈당하면서 그 정점에 달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에서 양향자 의원 대신 무소속 표를 행사하기 위해 일부러 당적을 버린 것이다. 의회민주주의의 정신을 우롱한 위장 탈당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민 의원은 “편법은 맞을지 모르지만, 위법은 없었다”며 되레 목청을 높였다. 이재명 대표에 의해 공천을 받은 그는 22대 국회로 돌아왔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다. 민주당과 우호 세력을 합치면 180석이 넘으니 별 수 없었다는 반론이 들려오는 듯하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민주당의 연금 개혁 합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국민의힘에 부족한 것은 의석이 아니라 의지다. 명확한 정책적 목표도 이념적 지향도 없이 그저 4년 잘 버티고 공천받아 재선할 생각뿐이었으니 21대 국회가 최악의 식물 국회로 남게 된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은 야당과 다를 바 없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이재명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온갖 입법이 시도될 것이다. 대만에서 벌어진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식물 국회로 끌려다니는 건 괴물 국회의 탄생을 방조하는 것이다. 차라리 동물 국회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홍상수 감독 영화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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