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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경제학 새로 쓴다? 이재명 “현금 뿌려 성장”

鶴山 徐 仁 2024. 5. 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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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정훈 칼럼] 경제학 새로 쓴다? 이재명 “현금 뿌려 성장”

경제학 이론은

전 국민 현금 지급이

바보 짓이라 가르친다...

이 당연한 원리를

모른다면 無知고

알고도 그런다면

경제 망칠 작정한 것

박정훈 논설실장


입력 2024.05.04. 00:32

윤석열 대통령이 4월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회담에서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전 국민 25만원 지원'을 거듭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어려운 분 지원이 바람직하다"며 거절했다 뉴스1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전 국민 25만원’ 주장은 현대 경제학이 생긴 이래 최초의 실험적 제안이라 할 만하다. 부자,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현금을 지급해 내수를 촉진하고 경기를 부양하자는 것인데, 지금까지 이런 정책을 편 나라도 없고 성공한 나라는 더더욱 없다. 코로나 팬데믹 때 각국 정부가 긴급 지원금을 나눠준 적은 있지만 이는 대면 경제가 올 스톱 된 비상 국면에서 이루어진 예외적 응급 조치였다. 위기 아닌 평시 상황에서 모든 국민에게 소비 진작용 현금을 뿌린 나라는 없다.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일이다.

아예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던 시기, 현금 뿌려 장기 불황을 탈출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1999년 일본 정부는 15세 이하 자녀를 둔 3500만 명에게 2만엔권 상품권을 주었고, 2009년엔 전 국민에게 현금 1만2000~2만엔을 지급했다. 개인 손에 일일이 현금을 쥐여주고 ‘이래도 안 쓸래’라며 다그치는 정책이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사람들이 받은 돈을 저축하거나, 어차피 쓰려던 곳에 쓰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기대했던 추가 소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일본 경제는 중증 암 환자와도 같았다. 디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나머지 아무리 세금 깎고 공공 지출을 퍼붓고, 심지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려도 경제는 꿈쩍하지 않았다. 어떤 처방도 듣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암 환자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민간 요법을 쓴 셈인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경제는 살리지도 못하고 나랏빚만 잔뜩 늘려놓은 채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극약 처방을 내려야 할 중증 위기는 아니다.

이 대표는 일본식 현금 지급을 주장하는 근거로 ‘승수(乘數) 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정부 지출이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쓴 돈 이상의 부양 효과를 거둔다는 케인스 이론이다. 하지만 이 대표 생각과 달리 현금 지원의 승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 코로나 때 입증됐다. 가구당 40만~100만원씩 지급한 2020년 1차 코로나 지원금의 효과를 KDI가 사후 분석해보니 총 14조원 중 소비로 이어진 것은 약 30%에 불과했다. 100원을 뿌려도 30원밖에 안 쓴 셈이다. 70원은 재정 낭비였다는 얘기다.

경제학 이론은 모든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현금 주는 정책이 바보 짓이라고 가르친다. 일정 소득 이상의 중상류층은 돈 준다고 추가 소비를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빈곤층은 다르다. 궁핍한 계층은 100원이 생기면 생필품도 사고, 못 하던 외식도 하면서 100원을 다 쓸 것이다. 경제학은 이를 ‘한계 소비 성향’이 높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정부가 현금을 나눠준다면 소비 탄력성이 높은 저소득층에게 주는 게 효과적이다. 전 국민 아닌 취약 계층 위주의 선별 지원이 정답이란 뜻이다.

게다가 한국 같은 성숙 단계 경제에선 정부 지출이 도리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구축(crowding out) 효과’ 이론이다. 현금 뿌리려 나랏빚을 늘리면 금리가 상승하고 이것이 소비·투자를 위축시켜 경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때 대량 발행한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바람에 고금리 부담이 가계·기업을 억누르는 현상이 빚어졌다. 풀린 돈이 고물가에 기름 끼얹을 위험성은 또 어떡하나. 이 대표의 ‘빚내 현금 뿌리는 성장’ 이론이 이런 역효과까지 극복할 수 있다면 당장 노벨상 후보 감이다.

이 대표는 미국의 뉴딜 정책을 보라고 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 정부가 재정 주도로 불황을 돌파한 것처럼 정부가 지출을 늘려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딜 정책 어디에도 현금 뿌리기 항목은 나오지 않는다. 후버댐이나 주간(州間) 고속도로 건설 같은 공공 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수요를 창출했지, 전 국민에게 현금 나눠 줘 소비하라는 식의 정책은 쓴 적이 없다.

경제학에서도 수많은 학파가 갈리지만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처방이 있다. 현금 살포하는 일회성 지출 대신 인프라 구축하고 일자리 만드는 지속가능한 용도에 돈을 쓰라는 것이다. 1인당 25만원씩 주는 데 드는 13조원은 현대차가 건립 중인 전기차 공장을 7개나 세울 수 있는 돈이다. 최신형 APR 1400 원전도 2기 이상 만들 수 있다. 공장과 산업 인프라를 지으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소비가 활성화되며, 연관 산업에 연쇄적 파급 효과를 미친다. 지출 대비 몇 배의 승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굳이 현금을 뿌린다면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서민·취약층·자영업자 등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경제 효과가 크고 분배 정의에도 맞는다. 이 대표가 이 당연한 경제 원리를 모른다면 무지(無知)한 것이고, 알고도 그런다면 경제 망칠 작정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