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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이야기 지어내는 ‘작화증’[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鶴山 徐 仁 2022. 11. 9. 08:00

동아일보|오피니언

 

없는 이야기 지어내는 ‘작화증’[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2-11-09 03:00업데이트 2022-11-09 03:3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장성한 자식들을 자랑하던 환자가 갑자기 평생 딱 한 번 결혼했으며 지금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다고 말한다면? 이런 현상을 작화증(作話症)이라고 하는데 치매나 알코올의존증인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기억의 빈틈을 지어낸 이야기로 막는 겁니다. 말짓기증, 허담증이라고도 하며 ‘자기의 공상을 실제의 일처럼 말하면서 자신은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병적인 증상’으로 정의됩니다.

작화증은 치료가 필요한 병이지만 일상에서도 작화는 흔히 관찰됩니다. 화자가 무지하거나 뻔한 근거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니 반증을 제시해도 끝내 헛된 믿음을 고집합니다. 병적 작화는 개인사를 주로 다루지만, 일상적 작화는 사회현상에 초점을 맞춥니다. 환자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상대방을 속이려고 의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일상적 작화에는 특정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작화는 의도를 재료로 쓰는 소설(小說)입니다. 추가 설명도 의도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작화는 거짓말, 속임수에 가깝습니다.

일상적 작화 그리고 화자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다 안다는 생각은 어린 시기의 특징이지만 스스로 유능하고 창의적인 존재라고 착각하며 삽니다. 선의를 가지고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서 사회 발전에 공헌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 논리적, 성숙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자기 성찰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니 사회가 반발을 해도 크게 영향 받지 않습니다. ‘작전상 후퇴’했다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둘째, 살기 바쁜 사람들은 지어낸 이야기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거 없는 이야기의 생명력은 상당 기간 보장됩니다. 셋째,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다른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며 멈추지 않는 이유는 혜택 때문입니다. 논란의 중심에 서면 능력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고양감을 느낍니다. 논리 정연한 자신, 일관성 있는 자신의 이미지에 취합니다.

 

물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습니다. 세상을 어지럽힌 값을 치러야 합니다. 의도를 숨기고 지어낸 이야기가 건설적인 사회적 담론으로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다가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로 결말이 납니다.

통합보다는 분열을 시도하는 본인을 돌아보길 기대하지만 허망한 일입니다.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적군과 아군으로 나누어 보는, 자아 분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지어낸 이야기로 얻는 이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화는 기초공사 없이 세운 건물과 같아서 언제 무너져 누가 희생될지 알 수 없습니다. 부실한 건물 공사로 재미를 본 사업 방식을 업자가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화자는 작화 방식을 여전히 이어갑니다. 해당 건축업자처럼 사회적 제재에 부딪히고 신용도는 추락할 것을 기대해도 될까요?

 

이성적 기대와는 달리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신경 써서 지어낸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든든한 지지자 집단이 되기를 자원합니다.

늘 편한 것은 아닙니다. 화자의 처지는 본질적으로 난감합니다. 묵묵부답이면 사람들이 의도를 의심합니다. 그냥 해 본 나쁜 소리 취급을 받습니다. 추가 설명은 애초에 근거가 없었으니 원천적으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화자가 난관을 벗어날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상대방의 반박을 공격이 아닌 도움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성찰의 문이 열립니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순전히 남의 탓만으로 돌리던 피분석자가 자신의 탓도 있음을 깨닫는 순간과 같습니다. 핵심을 집어낸 분석가의 해석을 공격이 아닌 도움으로 받아들였기에 생긴 변화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화자 스스로 고지식한 집착으로 융통성에서 멀어지면 함정에 빠집니다. 궁지에 몰리면 그냥 해 본 이야기였다고 말하는 솔직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지닌 편견, 부정적 감정도 인정해야 합니다.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면 일시적으로 자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줄이고 어려움 속에서 목표를 향해 버틸 자기 효능감을 높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종말은 허망합니다. 달콤한 유혹에 빠지면 화를 불러오는 작화(作禍)로 이어집니다. 부풀어 버린 헛된 믿음을 뚫고 자신을 애써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덜 남습니다.

지어낸 이야기를 둘러싼 논쟁은 정확한 본질 파악과 끊임없는 억지 주장 사이의 다툼입니다.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화자의 주장은 사납고 세차게 이어집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남아야 망각의 대상이 될 걱정이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어내는 이야기에 대처하는 유효한 방법은? 문헌에 의하면 현란한 언어를 구사하며 상대를 자극해서 실수하도록 유도하는 화자에게 그 이야기에서 잘못된 점들을 조리 있게 반박해 말문이 막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때 말싸움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소신껏 버텨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