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나다 "왕상 11:9-13"

鶴山 徐 仁 2022. 10. 21. 10:45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나다 "왕상 11:9-13"

 
 
 
10월 21일 (금)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나다 "왕상 11:9-13"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9절).
<진노하시니라>란 히브리어 <아나프>는 특별히 <하나님의 분노>, <신적 분노>를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나프>하게 하는 범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을 때 드러내시는 감정 표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었던 솔로몬이 말년에 우상을 숭배하고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배신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나프>하게 한 악성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솔로몬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지는 않고 <이것도 저것도> 다 취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솔로몬의 태도에 대해 성경은 그가 <마음을 돌렸다>고 하고 <여호와를 떠났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 전부를 원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 유일 신앙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이렇듯 지혜와 총명, 번영과 부, 사치와 다처 등의 세상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보고 심지어는 온갖 우상 숭배에도 빠졌던 솔로몬이 죽기 전에는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다>(전 1:2)고 고백한 것이야말로 의미심장합니다. 아무튼 솔로몬의 죄는 그가 누렸던 남다른  특권이며 축복들을 생각할 때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았겠다>(11-12절)고 하시며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될 것임을 선고하십니다. 
인간은 언약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외면한 그 언약마저도 끝까지 붙드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상 숭배란 이 시대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집착하는 것이 우상이라면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많은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 출세... 다행히도 솔로몬은 죽기 전 여호와 신앙을 새롭게 회복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전 12:13).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 나타나신 때>(9절)를 적어 보십시오.
-<다윗을 위하여>(12, 13절) 솔로몬 당대가 아니라 그 다음 세대에 징계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신이 숭배하고 있는 우상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 <솔로몬이 마음을 돌렸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는 말씀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두 번이나 직접 나타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이방의 신 앞에 분향하고 제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인간의 추악함과 원초적인 죄성을 생각하며 저희 자신을 살핍니다. 더욱 깨어 근신하며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경배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둔감함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는 대도시에 특
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둔감함’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감정적 자극에 혹사당해서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 능력이 떨어지는 둔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강력한 자극에 노출
되면 웬만한 자극에는 무덤덤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소래섭 저(著) 《우리 앞에 서 있는 시적인 순간》(해냄, 2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멜에 따르면 도시인들이 가진 둔감함의 본질은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입니다. 화폐 경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돈은 사물의 다양성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 저것은 얼마”라는 식으로 균
등한 척도로 재고,모든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양적 차이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사물의 핵심과 고유성, 특별한 가치,비교 불가능성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A, B 두 친구가 모자를 선물했다고 칩시다.
두 개의 모자에는 각각 친구를 생각하는 A, B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
문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만,화폐 경제에서는 가격이 같다면 두 모
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신앙인은 둔감해진 세상 속에서 민감한마음으로 이웃을 살피는 사람입니
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된 요셉은 감옥에
서도 이웃의 아픔을 살피는 민감성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같이 갇힌 애굽왕 바로의 떡 맡은 관원과 술 맡은 관
원의 꿈을 해석하여, 이를 계기로 감옥에서 나와 애굽왕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이웃의 필요에 민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승리하는 사
람입니다.
   
잠언 1장 10절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My son, if sinners entice you, do not give in to them.
Proverbs 1:10 [NIV]
   
죄의 종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이 되면 가정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를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의식이 싹트면서
 부모에게 처음 듣는 말이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3천여 년 역사의 대부분이
 바로 타향에서 유랑한 망국의 역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노예였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이 운명을 받아들이자며 현실에 순응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수치스런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다시는 노예의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과거 치욕스러웠던 노예생활을 회상함으로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이 자유를 지켜가려는
 다짐을 새롭게 하려는 미래지향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손세용 목사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에서-


 우리가 이전에는 자유가 없는 죄의 종이었음을
늘 깨우쳐야 합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롬6:17).
 죄의 종이란 의식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전에 죄와 사망과 사탄과 율법의 종으로서
 죄의 소욕에 매여 불가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을 만큼
 깊이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과거에 얼마나 비참한 노예 상태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었던
 지난날의 불행을 알아야만
 다시는 죄의 종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10월 21일 (금)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나다 "왕상 11:9-13"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9절).
<진노하시니라>란 히브리어 <아나프>는 특별히 <하나님의 분노>, <신적 분노>를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나프>하게 하는 범죄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을 때 드러내시는 감정 표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었던 솔로몬이 말년에 우상을 숭배하고 마음을 돌려 하나님을 떠난 배신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나프>하게 한 악성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솔로몬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지는 않고 <이것도 저것도> 다 취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솔로몬의 태도에 대해 성경은 그가 <마음을 돌렸다>고 하고 <여호와를 떠났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 전부를 원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여호와 유일 신앙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이렇듯 지혜와 총명, 번영과 부, 사치와 다처 등의 세상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보고 심지어는 온갖 우상 숭배에도 빠졌던 솔로몬이 죽기 전에는 그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다>(전 1:2)고 고백한 것이야말로 의미심장합니다. 아무튼 솔로몬의 죄는 그가 누렸던 남다른  특권이며 축복들을 생각할 때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 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았겠다>(11-12절)고 하시며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될 것임을 선고하십니다. 
인간은 언약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외면한 그 언약마저도 끝까지 붙드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상 숭배란 이 시대 성도들에게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집착하는 것이 우상이라면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많은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 출세... 다행히도 솔로몬은 죽기 전 여호와 신앙을 새롭게 회복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전 12:13).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 나타나신 때>(9절)를 적어 보십시오.
-<다윗을 위하여>(12, 13절) 솔로몬 당대가 아니라 그 다음 세대에 징계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신이 숭배하고 있는 우상은 어떤 것입니까?
 
주님, <솔로몬이 마음을 돌렸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는 말씀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두 번이나 직접 나타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이방의 신 앞에 분향하고 제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인간의 추악함과 원초적인 죄성을 생각하며 저희 자신을 살핍니다. 더욱 깨어 근신하며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경배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둔감함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이라는 독일의 사회학자는 대도시에 특
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둔감함’ 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감정적 자극에 혹사당해서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 능력이 떨어지는 둔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강력한 자극에 노출
되면 웬만한 자극에는 무덤덤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소래섭 저(著) 《우리 앞에 서 있는 시적인 순간》(해냄, 24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멜에 따르면 도시인들이 가진 둔감함의 본질은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입니다. 화폐 경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돈은 사물의 다양성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 저것은 얼마”라는 식으로 균
등한 척도로 재고,모든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양적 차이로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사물의 핵심과 고유성, 특별한 가치,비교 불가능성을 없애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A, B 두 친구가 모자를 선물했다고 칩시다.
두 개의 모자에는 각각 친구를 생각하는 A, B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
문에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만,화폐 경제에서는 가격이 같다면 두 모
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신앙인은 둔감해진 세상 속에서 민감한마음으로 이웃을 살피는 사람입니
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된 요셉은 감옥에
서도 이웃의 아픔을 살피는 민감성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같이 갇힌 애굽왕 바로의 떡 맡은 관원과 술 맡은 관
원의 꿈을 해석하여, 이를 계기로 감옥에서 나와 애굽왕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이웃의 필요에 민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승리하는 사
람입니다.
   
잠언 1장 10절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My son, if sinners entice you, do not give in to them.
Proverbs 1:10 [NIV]
   
죄의 종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이 되면 가정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를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의식이 싹트면서
 부모에게 처음 듣는 말이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3천여 년 역사의 대부분이
 바로 타향에서 유랑한 망국의 역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노예였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니
 이 운명을 받아들이자며 현실에 순응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 수치스런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다시는 노예의 비참한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과거 치욕스러웠던 노예생활을 회상함으로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된 이 자유를 지켜가려는
 다짐을 새롭게 하려는 미래지향적인 가르침인 것이다.
-손세용 목사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에서-


 우리가 이전에는 자유가 없는 죄의 종이었음을
늘 깨우쳐야 합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롬6:17).
 죄의 종이란 의식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전에 죄와 사망과 사탄과 율법의 종으로서
 죄의 소욕에 매여 불가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을 만큼
 깊이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과거에 얼마나 비참한 노예 상태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었던
 지난날의 불행을 알아야만
 다시는 죄의 종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