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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際.經濟 關係

[동서남북] 글로벌 공급망 격변에 뒷북만 칠 건가

鶴山 徐 仁 2022. 9. 9. 20:14

[동서남북] 글로벌 공급망 격변에 뒷북만 칠 건가

 


입력 2022.09.09 03: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 맨친 상원의원, 척 슈머 상원의원, 제임스 클리번 하원의원, 프랭크 펄론 하원의원, 캐시 캐스터 하원의원. /AP 연합뉴스

 

 

‘휘발유 L당 6.78위안. 중국 최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 고공 행진하던 지난 7월 초. 중국 산둥성 린이(臨沂)시 한 주유소에 이런 안내판이 나붙었다. 중국 평균 9.05위안보다 25% 이상 싼 가격에 차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환율로 1308원, 같은 시기 휘발유 L당 2200원을 훌쩍 넘어선 한국의 거의 절반 수준 가격이었다. 산둥성 항구들을 통해 서구 제재로 수출이 막힌 러시아산 기름이 헐값에 대거 수입됐고, 그 물량이 인근 지역부터 풀린 덕분이었다.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퇴출된 러시아는 달러를 못 받는 처지인데 중국은 어떻게 원유 대금을 지불했을까. 지난 6월 산시성 시안(西安) 공항에서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한 장면이 펼쳐졌다. 샤오미의 최신 스마트폰을 포함한 중국산 IT기기·소비재를 실은 화물기가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이륙했다. 일본 닛케이는 “중국은 위안화로 원유 대금을 지불하고 러시아는 그걸로 중국 제품을 수입한 것”이라며 “사실상 물물교환”이라고 전했다.

 

린이와 시안의 두 장면은 미·중 대립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노골화하고 있는 중·러의 경제 밀월, ‘차이시아(Chissia·China+Russia)’를 상징한다. 서구는 물가 폭등에 신음하고, 러시아산 가스가 끊긴 유럽은 폭염에 냉방도 제대로 못하는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는 값싼 에너지와 필수 공산품을 맞교환하며 국제사회의 제재 허들을 함께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시아의 출현은 지난 10여 년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가능케 한 체제의 붕괴와도 맞물려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의 최근 보고서는 이를 ‘차이메리카(Chimerica·미·중의 경제적 상호의존)와 유러시아(Eurussia·유럽과 러시아의 상호의존)의 붕괴’라는 말로 압축했다. 차이메리카와 유러시아는 지구촌에 저물가 호황을 안겨준 지경학(地經學)적 바탕이었다. 중국의 저렴한 부품·소재와 풍부한 노동력을 기점으로 가동돼온 글로벌 공급망 위에서 미국은 인플레 걱정 없이 마음껏 양적 완화를 해왔고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은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 덕분에 한층 손쉽게 경제적 부(富)를 쌓았다는 것이다.

차이메리카와 유러시아의 붕괴는 우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끝나도 인플레가 금세 잦아들지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완제품으로 가공한 뒤 미·유럽에 팔아온 한국은 차이메리카 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다는 점에서, 크나큰 위기일 수밖에 없다. 위기는 이미 30년 만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 한국 전기차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 중단이라는 형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비용 절감과 규모의 경제라는 경제 사슬로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공급망은 미국 편이냐, 중·러 편이냐를 따지는 이념·가치사슬이 함께 얽혀들어갈 수밖에 없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던 한국의 전략은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의 한 축을 차지하려면 확실한 산업 경쟁력에다 ‘믿을 수 있는 나라’라는 신뢰를 얻을 외교적 전략까지 더해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의 정책 변화(인플레 감축법)에 넋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고 요란한 뒷북을 치고 있다. 중국산 의존도가 80~90%까지 치솟은 배터리 같은 전기차 소재 부품 분야는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무방비 상태다. 초당적 리더십으로 위기 극복의 발판이 돼야 할 정치권은 ‘윤핵관’ ‘문파’ ‘명파’가 제각각 권력 놀음에만 빠져있다. 머리를 맞대도 넘기 힘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