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악을 제할지니라 신 22:13-21

鶴山 徐 仁 2022. 8. 29. 09:14

악을 제할지니라 신 22:13-21

 
 
 
08월 29일 (월)
   
악을 제할지니라 신 22:13-21



13. 누구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그에게 들어간 후에 그를 미워하여
14. 비방거리를 만들어 그에게 누명을 씌워 이르되 내가 이 여자를 맞이하였더니 그와 동침할 때에 그가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면
15. 그 처녀의 부모가 그 처녀의 처녀인 표를 얻어가지고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가서
16. 처녀의 아버지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내 딸을 이 사람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그가 미워하여
17. 비방거리를 만들어 말하기를 내가 네 딸에게서 처녀임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나 보라 내 딸의 처녀의 표적이 이것이라 하고 그 부모가 그 자리옷을 그 성읍 장로들 앞에 펼 것이요
18. 그 성읍 장로들은 그 사람을 잡아 때리고
19. 이스라엘 처녀에게 누명을 씌움으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여자의 아버지에게 주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평생에 버릴 수 없는 아내가 되게 하려니와
20.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21.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
 
<... 그 처녀에게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그 처녀를 그의 아버지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20-21절). 
당시 성적 범죄가 이처럼 엄중했던 까닭은 가나안 족속들의 성 관념이나 도덕이 몹시 문란했기 때문이었습니다(레 18:1-3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방인들의 성 풍속에 물들지 않도록 엄격한 규율을 세우시고 특히 잔혹해 보이는 <돌 처형>법을 시행케 하시므로 그들로 하여금 경각심과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높이게 하셨습니다.


특히 그런 엄한 형벌로 <악을 제할지니라>고 하신 것은 육체의 순결을 중요시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정신적, 영적 순결을 지킬 수 없으므로 육체의 순결을 강조함으로써 영혼의 순결을 지키게 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남녀 간의 혼인과 부부간의 순결을 중요시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영적 순결을 높이려하셨던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성경은 종종 부부나 연인 관계를 묘사하며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이해시키고, 또 그것을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하며, 주님의 재림과 교회의 관계도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마 25:1). 


그렇습니다. 성도 개개인의 주님과의 관계는 결코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없는 은밀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과 가지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는 각자가 일대일로 주님을 만나야만 누리고 체험할 수 있는 실로 내밀한 것입니다. 아가서는 이런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더욱 노골적인 부부애로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주님에 대해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힘,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영원한 신랑>이라고 고백해야 하고, 또 그 고백에 걸맞은 믿음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의 진정한 비밀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그 영원한 연합에 있습니다. 
 
-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가서를 읽으셨다면 당신의 소감은?
 
주님, 오늘 본문이 <처녀의 표적이 없거든 ...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 이와 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니라>(20-21절)고 하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덕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하나님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신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의 우상에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고 끝까지 여호와 신앙을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하신 주문이었음을 확신ᄍᆞ하오니 저희에게도 함부로 세상과 짝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정절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언제 신랑이 오셔도 부끄럼 없이 나가 맞을 수 있도록 믿음의 순결을 잘 지켜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밀란 쿤데라 ‘느림’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중략).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
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
다. 반면,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자
는,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


밀란 쿤데라 저(著) 김병욱 역(譯) 《느림》(민음사, 4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강한 비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망각하고
싶으면 빨리 살려고 합니다. 느림을 되찾으면 기억도 되살아 납니다.
느림과 기억 사이에도 강한 비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빠름은 망각을, 느림은 기억을 불러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구름 기둥을 보내어 그들을 인
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름은 하루만에 움직여서 어서 짐을 챙겨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한 일년이나 한 곳에 머물러서 이스라엘 백
성들은 일년 내내 한 곳에서 진을 치고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빨리 인도하실 때도, 느리게 인도하실 때도 있
습니다. 빨리 인도하실 때는 옆 뒤를 보지 않고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느리게 인도하실 때는 깊은 묵상을 해야 합니다.  
빨리 달리는 것과 멈추어 서서 풍경을 보는 것은,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삶의 두 기둥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전7:14a)
   
전도서 4장 11절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Also, if two lie down together, they will keep warm. But how can one keep warm alone?
ecclesiastes 4:11 [NIV]
   
성경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직업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하며, 우리는 방대한 양의 인쇄물을 얼마나 빨리 읽어 내느냐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마일리지를 쌓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보지 않게 한다. 많은 경우, 구약 성경의 풍성함은 버섯을 깨는 사람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만 감지된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보이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본다.
-엘런 F.데이비스의 [하나님의 진심] 중에서-


우리는 말씀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의도나 진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당하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고통, 탄식, 기쁨, 저주, 축복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삶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대하면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내 삶과 또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훑어 읽기식이 아니라 천천히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진심을 읽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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