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아달랴 왕하 11:1-8
05월 02일 (월)
여왕 아달랴 왕하 11:1-8
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4.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5.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중 삼분의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 삼분의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의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7. 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 너희는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너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하니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살해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왕권을 장악하고 다윗의 후손들을 진멸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유다를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며 바알 종교를 더욱 확산시킬 목적에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을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행위였습니다.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백성들의 지지하에 왕으로 옹립되고 아달랴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이는 사단의 세력이 항상 하나님과 성도들을 공격하지만 결국은 멸망한다는 사실을 말씀해주는 생생한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1-3절). 아달랴가 모든 정적을 제거하려 한 시도는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육 년간이나 성전에 숨겨 몰래 키움으로써 실패했습니다. 사탄은 온갖 잔혹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합의 딸이었던 아달랴를 보며 악한 자들과의 교제가 얼마나 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으면서 결국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유다 왕국의 왕비가 되어 지금의 이 비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 민족 공동체가 예상치 못한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 누군가를 지목해서 그 책임을 묻는 일에 열중할 것인가 아니면 힘을 모아 일단은 그 위기를 뚫고 나가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판단하기가 그리 쉬운게 아닙니다. 직면한 그 현실의 어려움이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원인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책임의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은 빼놓고 그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달랴가 바로 그랬습니다. 도대체 자기 탓은 전혀 없고 오직 모든 문제와 화근은 다윗의 후손들이라며 그들을 완전히 근절하려 한 것입니다. 이런 아달랴의 심성이야말로 모질고도 잔혹했던 그의 어머니 이세벨을 그대로 닮은 듯 합니다. - 본문 4절의 <일곱 째 해>란 무엇을 뜻할까요(2:1)?
- <여호세바>에 관하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대하 22:11). - <왕의 자손들을 모두 멸절>(1절)하려 한 아달랴에 관해 간략히 평해보십시오. 주님,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보면서 권력과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진 자는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들까지도 죽이는 일에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달랴는 양심이 점점 더 마비되어 그 큰 죄를 범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늘 성령 안에서 살므로 요아스를 죽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시키려한 마귀의 흉계를 깨듯 그렇게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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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냄새가 나는 집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했는데(중략),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장영희 저(著)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샘터, 66-67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향기 없는 꽃을 찾는 벌 나비는 없습니다. 꽤나 괜찮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품에서 나오는 향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향기를 가진 가정을 갖고 싶다는 피자 배달 청년의 소망이 아름답습니다.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꽃의 향기는 타고 나지만 사람의 향기는 살아가면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 성품이 좋습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그에게서 느껴집니다. 성품이 좋지 않다는 것은 예수님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십니다. 사람과 꽃은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 말을 합니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후2: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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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절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One day Samson went to Gaza, where he saw a prostitute. He went in to spend the night with her. Judges 16:1 [N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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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는 영성
안타깝게도 현대의 기독교 영성은 출발선이 곧 결승선일 때가 많다. 이 경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구원이다. 구원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받는 것이다. 많은 복음주의자가 믿듯이 구원은 잃을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철저한 비그리스도인도 새신자가 되는 순간 이미 기독교의 목표에 도달했다. 다시는 그것을 잃을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출발선은 곧 결승선이 되고 만다. 남은 일이라고는 시상식이 시작될 때가지 버티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게리 토마스의 [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중에서- 우리가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목적 지향주의에 함몰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얻어내면 다 끝난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기도, 말씀 등은 일상속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누리는 동행입니다. 동기와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독교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과정이 선해야 결과도 선하다는 것을 알기에 주의 뜻을 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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