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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다시 배워야 할 70년 전 외교 혜안

鶴山 徐 仁 2022. 3. 3. 13:41

[동서남북] 다시 배워야 할 70년 전 외교 혜안

 

한반도 운명 가른 한·미동맹, 벼랑끝서 지도자 신념으로 쟁취
지금 대선판엔 저질 공방만… ‘정글’ 헤쳐나갈 식견 있나

 

임민혁 기자


입력 2022.03.03 03:0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화하면서 곳곳에서 포성과 폭발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24일(현지시간) 폭격에 인한 폭발로 불타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일대./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국내에서 국제정치 관심도를 높인 건 여권(與圈)의 ‘공(功)’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강대국이 무력 공격으로 영토 변경을 시도하는 현 사태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온 국제 질서의 근간을 허무는 대형 사건이다.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도 매우 크다.

 

여권 인사들은 애초에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껏 착안한 것이 ‘무식한 아마추어 대통령=전쟁 난다’ 프레임을 만들어 대선판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상대 후보 깎아내리기 위해 피해국 정상을 조롱하다 국제 망신을 자초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저질 선동이 논란을 키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태의 배경과 함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미국 등 서방의 병력 지원 없이 외롭게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은 냉혹한 국제 안보 질서 속에서 ‘동맹’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안보 동맹끼리는 한쪽이 무력 공격을 당할 경우 다른 한쪽도 자국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처하게 된다. 그 존재 자체가 전쟁을 억지하는 강력한 보험이다. 최강 전력의 미국이 뒤에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동맹이 모든 안보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키는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미국과 조약 동맹을 맺은 나라가 전면적 침략을 당한 적은 없다. 미국의 핵우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안보 보호를 받으며 경제 발전을 이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체 군사력도 키웠다. 한국은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성공한 케이스다. 한미 동맹과 수만 명의 주한미군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우크라이나보다 먼저 강대국 지정학 패권 싸움의 희생양이 됐을 것이다. 미국의 핵우산이 펴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자강(自强) 논의도 한미 동맹과 함께한 70년간의 평화가 없었다면 아예 시작될 수 없었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한미 동맹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70여 년 전 한국은 미국의 동맹 고려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2차 대전 후 미 국방부가 병력 재배치를 위해 각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했는데 한국은 대상 국가 16곳 중 10위 밖이었다. 6·25를 휴전으로 미봉한 채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는 미국을 붙잡아 상호방위조약에 도장을 찍게 만든 건 이승만 대통령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승만은 반공 포로 석방 같은 극약 처방으로 미국과 얼굴을 붉히는 상황도 마다하지 않으며 끈질긴 투쟁으로 이를 쟁취했다. “대한민국 번영이 튼튼한 안보 위에서만 가능하며, 그 안보의 핵심은 미국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당시는 체제 경쟁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럽던 시절이다. 변변한 통신 시설도 없던 그때, 제한된 정보 속에서 지도자가 국제 정세를 정확히 꿰뚫는 혜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국운(國運)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53년 3월 9일,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된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 초상화 아래에는 “자유의 뿌리는 깊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지금 다시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정글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다음 전장(戰場)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번 사태의 교훈은 약한 사람은 절대로 강한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전 세계 뉴스·정보뿐 아니라 전쟁 상황까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고급 분석도 넘쳐 흐른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국가가 됐다. 이런 시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안목과 식견은 70년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선거판에서 보여지는 낯 뜨거운 모습이 전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