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바산의 암소 암 4:1-8

鶴山 徐 仁 2022. 2. 4. 19:31

 

                                                                                                                                                       

바산의 암소 암 4:1-8

 

 

02월 04일 (금)

   
바산의 암소 암 4:1-8


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2.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3.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5.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7.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는 바산의 암소를 빗대 쾌락과 탐닉에 빠진 당시 이스라엘의 부유층을 고발합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2절). 


<바산의 암소>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 호화롭고 사치하고 권세 있는 이스라엘의 귀부인들을 뜻한다는 견해와 ② 왕 혹은 방백들과 짝하여 깊이 타락해 갔던 당시 이스라엘의 부유층이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어느 쪽의 해석이 더 옳든 그 시대의 부유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의 타락상을 빗댄 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바산의 암소들이 풀을 뜯을 때는 오로지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몰두한 나머지 남을 배려하거나 한번 쳐다보지 않는 것과도 꼭 같았습니다. 날마다 값비싼 물건과 호화로운 음식으로 성대한 잔치를 벌이면서도 문 앞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가난한 백성들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구제나 자선은커녕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여 갈취한 권세자에게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며 치부한 재물로 잔치를 베풀어 줄 것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바산의 암소>를 사마리아의 부유한 여인들로 해석한다 해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재물을 모은 남편을 향해 <잔치를 열어 달라, 술을 마시게 하라>며 졸랐다는 겁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부유층, <바산의 암소>들에게 하나님이 맹세하시며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2절). 지금까지는 살진 암소처럼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불리며 호사를 누렸지만 곧 때가 이르면 그들이 모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들처럼<갈고리로 끌어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 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느 시대나 주변의 어려운 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경멸하며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혹 <바산의 암소들>처럼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나는 혹 <바산의 암소들>처럼 남편의 지위가 곧 나의 것인 양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나는 혹 <바산의 암소들>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며 사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주님,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 사람, 사마리아 사람들은 정말 <바산의 암소들> 만큼이나 게걸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압제하고 치부한 재산으로 오로지 그들만이 호의호식했습니다. 여인들도 남편에게 <술을 가져오라>, <우리로 마시게 하라>며 날마다 흥청망청했고 착취당한 가난한 자들은 굶주려 더욱 시들어 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혹독한 심판을 선언하셨고 그들이 다 적들에게 갈고리로, 낚시로 끌려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사 더욱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며, 힘껏 그들을 돌보며 더불어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모라벡의 역설’
 
“인간이 잘하는 일은 기계가 어렵고 기계가 잘하는 일은 인간이 하기
어렵다. 이것을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고 한다
카네기 멜론 대학교 교수 한스 모라벡(Hans Moravac)은 ‘지능 검사나
체스에서 성인 수준의 지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이경미 저(著) 《웰컴투 인공지능》 (서사원, 39-40쪽) 중에 나오는 구
절입니다.
모라벡의 역설은 “컴퓨터가 쉽게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어렵고 인간이
어려워하는 것이 컴퓨터에게는 쉽다”는 의미입니다.
컴퓨터가 수학적 계산, 논리 분석에 있어서는 인간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운동과 감각 능력은 컴퓨터가 따라 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인
간의 고유성은 그 어떤 성능 좋은 컴퓨터로도 대체 불가하다는 의미이
기도 합니다. 인간은 점점 더 힘든 노동과 단순 반복 노동에서 벗어나
더욱 창조적인 사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고유 영역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라벡의 역설도 깨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공지능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는 없
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인간의 최고 특권이자 영광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
이니라.” (사43:21)
   
아가서 2장 10절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My lover spoke and said to me, "Arise, my darling, my beautiful one, and come with me.
song of songs 2:10
   
개종
힘과 강요에 의해 개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었습니만 처음에는 많은 지역 행정관들이 로마 제국의 법을 강력하게 집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주인은 자신의 소작인들이 이방신을 숭상하는 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AD 4세기와 AD 5세기가 지나면서 교회와 정부 지도자들은 세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때로 다른 종교를 억압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마을 하나를 통째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알랜 크라이더의 [초대교회에 길을 묻다]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되지 않는 것을 폭력으로 행한다면 그것은 선한 일이 되지 못하며, 선한 열매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의 출발이 주님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을 변하시키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