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죽은 아이가 살아나다 왕상 17:17-24

鶴山 徐 仁 2021. 12. 28. 13:01

죽은 아이가 살아나다 왕상 17:17-24

 
 
12월 28일 (화)
   
죽은 아이가 살아나다 왕상 17:17-24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17절).
<숨>이라는 히브리 말 <네솨마>는 21절에 나오는 <혼>(네페쉬)과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곧 <생명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곧 사르밧 과부의 원망이 터져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8절).
<하나님의 사람>이란 그의 말과 행위에서 진정성이 느껴질 때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사르밧의 과부는 엘리야가 베푼 이적을 통해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확신한 것으로 보입니다(15, 16절). 


그럼에도 졸지에 자신의 희망이요 생명과도 같은 아들이 죽자 <내가 당신에게 선대한 결과가 이것이냐? 내가 당신에게 섭섭하게 한 일이 있었느냐?>며 항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로서는 아들의 죽음이 모든 것을 한 순간 허무하게 만드는 큰 고통이자 절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죄를 생각나게> 하느냐? 고 합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변을 당해야 하느냐>는 한탄입니다. 결국 <엘리야가 아들을 달라하여 ...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19-20절) 그 죽은 아이를 다시 살려줍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21절)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혼>, 히브리어 <네페쉬>는 <목숨, 생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혼이 돌아오게 해달라>는 것은 곧 <목숨을 되살려 달라>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22절).
여기 <들으시므로>라는 히브리 말 <솨마아>는 특히 <이해하여 진지하게 경청하는> 매우 세심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 속에 담긴 곤경과 다급한 마음을 깊이 이해하셨음을 잘 드러낸 표현입니다. 


비로소 사르밧 과부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24절).
 
-엘리야가 왜 <죽은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려>(21절) 기도했을까요?
-주님이 인용하신 사르밧 과부에 관한 말씀을 누가복음 4:25-26을 찾아 확인해보십시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과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요 11:40-44)을 비교해보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죽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그 위에 엎드려 기도하므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이란 곧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믿습니다. 
부디 저희도 엘리야처럼 기도하게 하사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능히 죽은 자도 다시 살리실 수 있음을 믿고 큰 확신으로 기도하도록 성령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2
 
“예수님은 어떻게 감히 일을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
(중략) 그분은 약 삼십 년이라는 짧은 인생, 갑자기 끝났지만 ‘다 이
룬’인생을 사셨다.”


찰스 험멜 저(著) 정영만 역(譯)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
(IVP, 39-4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삶을 정리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
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
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19:30)
“테 텔레 스타이!(다 이루었다)”
아직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다
이루셨다니요? 아직도 수많은 병자들이 있고, 억눌린 사람, 귀신들린
사람이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그 답은 요한복음17장 4절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가족,친지,또는 만난 수많은 사람의 요구를 다 이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인된 인간들
에게 구원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
나님의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일에 집중하셨으며, 마침내
그 일을 이셨기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하
시려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일이었습니다.
   
시편 8편 1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You have set your glory above the heavens. Psalms 8:1
   
한번 맺은 주님과의 관계
성도들 가운데는 자신의 구원이 상실되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과 염려에 싸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한번 선택받고 부르심을 입어 의롭다 인정된 자는 
어떤 경우에도 그 받은 바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주의 강한 손이 당신의 백성의 손을 
굳게 잡고 있가 때문이고
한번 맺은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결코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장연 목사의 ‘믿음의 축복을 소유하라’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강력히 증거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한번 사랑하신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놓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로 당신의 영원한 포로로 삼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