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보다 민주적이라 믿는다…'천안문 30년' 中서 벌어진 일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18:00 수정 2021.07.16 20:24
이정봉 기자
“한 나라의 민주와 비민주를 판단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6일 ‘중국공산당과 세계 정당 지도자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중국 국민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곧 중국은 민주주의라는 말이다.
실제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2018년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다. 국제여론조사기관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가 중국인 3036명에게 물었다. ‘당신의 나라는 얼마나 민주적인가. 0~10점까지 점수를 매기시오.’ 중국인은 이 질문에 평균 7.13점을 줬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뜻하는 10점을 준 비율도 15.0%나 됐다.
한국인 1245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점수는 6.88점이었다. 10점을 준 사람은 0.6%였다.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자기 나라가 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중국인은 현 정부가 상당히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의 정치 체제 만족도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사진은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하는 장면. 중국 신문망 캡처
다른 설문들도 중국인의 체제 만족도가 경이로운 수준임을 보여준다. 2019년 11월 세계적 설문조사업체 입소스글로벌이 27개국을 대상으로 자국 정치 체제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현 정치제도가 국민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 의견을 낸 비율은 세계 평균 27%였다. 스웨덴은 31%, 독일과 미국은 26%, 한국은 21%였다. 그런데 중국은 무려 69%가 긍정 의견을 냈다. 세계 평균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하버드대 조사에 따르면 중국의 중앙정부 만족도는 2003년 86%, 2016년 93%, 2020년엔 95%로 해마다 올라가 불만족하는 사람이 비정상인 지경에 이르렀다.
1990년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앤드루 네이선(Andrew Nathan)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시 티안지안(Shi Tianjian) 듀크대 교수가 1990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국인 중 55%가 “중국인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톈안먼(천안문ㆍ天安門) 사태가 일어난 지 1년 뒤 이뤄진 조사였다. 이후 3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중국 민주화가 어려운 이유① 경제: 중국 공산당과 중산층의 이해관계 일치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서구 민주주의 학자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미국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해 발표한 논문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인간이 만든 정부의 최종적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헨리 로웬 미국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도 1996년 발표한 논문 「소장정(The Short March)」에서 “중국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7000~8000달러에 이르는 2015년쯤 소득 증대로 인한 자유화 요구로 공산당은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중국의 1인당 GDP는 2015년 8000달러를 넘겼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체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ㆍ대만의 사례를 따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같은 동아시아라도 국가 간 역사와 정치 경험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다. 원동욱 동아대 국제학부(중국학전공) 교수는 “중국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보다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역사를 뒤집고 슈퍼파워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더 큰 나라”라고 설명했다.
1978년 경제 부분 개방,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 2001년 WTO 가입…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 내에 자본주의를 흡수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 빠르게 성장했다. GDP(국내총생산)는 1980년 1911억 달러에서 2019년 14조 달러로 70배 넘게 성장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명실상부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 반열에 올랐다.
중국은 9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보통 권위주의 국가에서 중산층이 늘어나면 민주화 욕구가 증가한다는 게 통설이었으나, 중국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은 2015년 9월 3일 저녁 중국 전승절 휴일을 맞이한 상하이 시민들이 푸동 와이탄에 나와 야경을 즐기는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산층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2000년대 초 우리나라 인구보다 적었던 중국 중산층은 현재 4억명을 넘었다. 중산층이 성장하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게 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게 주요 정치학 학설 중 하나다. 하지만 중국 중산층은 이와 달랐다. 원동욱 교수는 “중국 중산층은 공산당이 주도한 경제 개방의 혜택을 누린 수혜자”라며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보다 순응이 이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국의 ‘사회 신용’ 제도에 대한 생각을 보면 중국 중산층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사회 신용 제도는 중국 정부가 국민 행동을 평가해 개인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체제 불만 세력에겐 점수를 깎는다. 점수에 따라 대출 한도, 고속철도ㆍ항공 등 교통편 이용, 공무원 지원 자격 등에 제한이 생긴다. 서구적 관점에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자유주의적 제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2018년 베를린자유대가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회 신용 제도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조사 대상 중국인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특히 고학력자(86.1%), 고소득자(91.1%)들의 찬성 비율이 더 높았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선 고학력자ㆍ고소득자는 자유 제한에 민감하고 정부 통제에 반감을 가지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중국 민주화가 어려운 이유② 정치: 공산당의 유연성
중국 민주화를 예언한 이들이 간과한 또 하나의 사실은 1978년 중국 경제 개방 이후 2000년대까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상황 변화에 매우 유연하게 대처했다는 점이다. 앤드루 네이선 교수는 이를 ‘권위주의 탄력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소련과 중국의 리더십을 비교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소련과 달리 지도부를 선출할 때 능력주의에 기반을 뒀다고 했다. 또 중국 공산당은 대중의 불만을 수습할 정치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급격한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내놓은 담화인 ‘남순강화(南巡講話)’다. 당시 중국은 1978년 개혁ㆍ개방 이후 체제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과 계획경제 시대의 비효율적 적폐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덩샤오핑은 1992년 1월부터 한 달 넘게 경제 개방 실험 도시가 몰려 있는 남쪽 지역을 시찰했다. 시찰을 마친 직후 덩샤오핑은 ‘생산력을 높여 인민 생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요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경제 발전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줌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불만과 두려움을 느끼던 중국 인민을 달랬다. 덩샤오핑의 메시지를 공산당 간부들이 발전시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중국과 북한 공산당의 가장 큰 차이는 지도부의 세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독재하는 국가이나 권력의 교체는 보통의 독재국가와 다르게 경쟁을 통해 이뤄진다. 사진은 2011년 9월 11일 공개된 김정일과 김정은이 평양 목란영상사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중국은 독재국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와 큰 차이점이 있다. 부자세습이 이뤄지지 않고 당내 경쟁을 거쳐 지도부가 만들어진다. 리더십 경쟁이 치열하고 지도자 교체를 위한 나이 제한 제도도 있다. 국가 전체로 보면 통제가 가득하지만, 당내엔 신선한 인물과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유입돼 정체를 막는다. 대니얼 벨 중국 칭화대 석좌교수는 미국 시사지 ‘디 애틀랜틱’ 기고문에서 “공공성과 보편적 가치 부분에 약점이 있지만, 무한 경쟁을 통해 권력을 얻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지적 능력과 상황 대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통해 아래에서의 불만과 의견이 공산당 지도부에 흡수된다. 껍데기만 남아 있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1990년대 들어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주요 협의기구로 재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는 “정협을 통해 중국 사회 각 계층의 이익과 요구가 취합돼 중국 공산당의 정치 결정에 반영된다”며 “이를 중국에선 ‘인민 민주’라고 부르며 대중의 민주주의적 정치 참여 방식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민주화가 어려운 이유③ 사상: ‘신권위주의’의 등장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서구의 가치가 보편적 가치인가. 보편주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보편적 가치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2018년 유럽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 중국인 독일 유학생이 한 말이다. 이는 현재 중국 지식인 계층의 생각을 정확히 대변한다.
이 논리를 구체화한 이가 ‘사상의 천재’로 불리는 왕후닝(王滬寧)이다. 중국서기처 제 1서기인 그는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3명의 주석을 연이어 보좌한 국가전략 부문의 살아있는 전설 같은 인물이다. 이론가로서는 전례 없는 서열 5위에 올랐다. 그림자처럼 주석을 보좌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 신비로운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왕후닝은 미국 유학 시절 정치 체제를 공부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가 중국에는 맞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권위주의 통치를 기반으로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 맞서야 한다는 ‘신권위주의’를 주창했다. 중국에는 중국만의 민주주의가 필요하고, 서구의 가치는 보편적이지 않다는 논리가 그의 작품이다. 이는 공산당에 의해 널리 중국인들에게 전파됐다. 원동욱 교수는 “서구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미국에서 파시즘에 가까운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인들은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홍규 교수는 “중국인 대다수는 서구 민주주의가 여러 민주주의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인은 협상이 투표에 우선하고, 윤리가 권리에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방대한 영토와 민족을 통합하기 위해 공산당의 영도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시진핑(사진 가운데) 집권 2기를 이끌 중국 공산당 지도부.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서열 5위의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다. 그는 '배후의 책사'로 불리며 공산당의 지도 전략을 설계하는 사상과 이론 부문의 실력자다. 신화=연합뉴스
‘신권위주의’ 사상과 더불어 중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적 슬로건으로 국민을 감정적으로 고취했다. 2012년 11월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외치며 중국 국민 가슴에 치사량 수준의 ‘국뽕(도에 넘치는 애국심)’을 주입했다. 이 꿈은 중국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를 묶는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중국에 대한 비판에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랑외교(戰狼外交)’ 전략으로 이어지면서 중국인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체제 안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연료인 ‘논리’와 ‘애국심’은 공산당 선전으로 대중에게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다. 2019년 중국은 공산당 정책 학습용 앱 ‘학습 강국’을 만들어서 보급했다. 마르크스ㆍ레닌ㆍ마오쩌둥의 사상과 함께 시진핑의 연설 등을 모아놓은 공산주의 사상 학습 서비스다. ‘학습 강국’은 3개월 만에 43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해 앱 다운로드 부문 1위에 올랐다.
중국의 불안요소: 떨어지는 성장 동력과 강해지는 통제
하지만 중국 체제에도 취약점은 있다. 작은 균열이 중국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중 하나가 경제 문제다. 국가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지만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0.5를 넘어서며 남미ㆍ아프리카 국가 수준에 이르렀다. 2000년대 후반엔 세계에서 드물게도 여성 자살률이 남성보다 25% 높았다. 생활고 탓에 농촌 지역 자살률이 도시 지역보다 3배 많았다.
시진핑 주석은 연설 때마다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일컫는 ‘소강사회(小康社會)’,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언급할 만큼 빈부 격차 해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원동욱 교수는 “중국은 현재 빈부 격차를 비롯해 도농 격차, 지역 격차, 민족 격차 등이 심화한 상황”이라며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일시에 해소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경제 성장 엔진이 서서히 멈춰 서고 있다. 중국은 10%대의 고공 성장을 멈춘 데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중국에선 ‘부자도 안 됐는데 벌써 늙어버렸다(未富先老)’는 진단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의 인구 고령화가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출처: 중앙일보] 韓보다 민주적이라 믿는다…'천안문 30년' 中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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