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우리 안보를 왜 세계가 대신 걱정해 주나
6·25 때 우방 도움 받은 이후 남이 지켜주는 것 당연히 여겨
북한 눈치나 보면서 평화 타령… 왜 우리 걱정을 남이 해주는가
입력 2021.06.30 03:00
‘나라는 남이 아닌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말은 재론 여지가 없는 당위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우리가 피 흘려야 할 자리에서 남이 대신 피 흘리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안보 사안을 세계가 대신 우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6·25가 터지고 한강 다리가 폭파되던 날부터 그랬다. 일본에 주둔해 있던 맥아더 장군이 워싱턴에 이런 전보를 보냈다. “미국의 행동이 몹시 더디다. 한국은 이미 위험이 눈앞에 닥쳤다.” 한반도에 날아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선 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내게 두 사단만 주면 한국을 지킬 수 있다.” 그는 마치 자기 나라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 한국의 안전을 걱정했다.
지난 2016년 열린 한미 연합 상륙훈련 모습/해병대
북한 청천강에서 맞닥뜨린 중공군에 한국군이 무력하게 밀렸다. 한 미군 장교는 ‘점토로 빚은 군인들’이라며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고 했다.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패퇴하는 한국군 트럭을 보면 무장한 미군 헌병들에게 막아서게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꾸짖었다. “전선으로 돌아가라!” 남이 와서 네 나라를 돕는데 너희는 도망이나 가느냐는 질책이었다. 중공군 수십만 명이 물밀듯 남하하자 ‘미국은 한국을 버릴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이 대통령도 불안했던지 리지웨이에게 철군할 거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후로 70년, 어느새 우리는 미군이 우리 국방을 책임지는 걸 당연한 권리로 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북 화해라는 미명 아래 전방 초소를 폭파하고 국방의 핵심인 한·미 훈련조차 천덕꾸러기 취급할 수 있는가. 이런 한국을 향해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2년 전 “북한은 한·미 연합군의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약점이 있다고 인식할 경우 모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연합 방위 태세 약화 걱정을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미국이 한다. 다음 달 2일 이임하는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평시에 땀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서 “2018년 이후 컴퓨터 게임으로 하고 있는 한·미 훈련을 야전 훈련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또한 미군이 컴퓨터 게임으로 하자고 해도 우리가 단호히 반대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북한 핵무장을 가장 앞서서 저지해야 할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사태평하고 오히려 국제사회가 이 나라의 안보를 걱정한다. 지난 3월의 쿼드 성명, 다음 달 미·일 공동성명, 이달 나토(NATO) 공동성명이 모두 ‘북한 비핵화’를 요구했다. 그런데 우리가 끼어들면 ‘북한 비핵화’가 ‘한반도 비핵화’로 바뀐다. 이달 G7 공동성명과, 지난달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이 그랬다.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걷어치우라는 북한 요구와 흡사하다.
이 나라 대통령은 현충일에 북한의 침략 행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선 한반도 적화 야욕을 포기한 적 없는 독재자를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가진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에서 국제 골프 대회를 하자며 어떻게든 대북 제재 풀 궁리만 한다. 이 정부는 북한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한미 워킹그룹도 김정은 남매가 비판하자 종료해버렸다.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북한 왕조 눈치 보기 바쁘다. 국가인권위는 미국 대사관저 담을 뛰어넘은 단체가 대사관저 앞에서 벌이는 1인 시위를 보장하라고 경찰에 권고하고, 대학가에선 평양을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라고 찬양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이 모든 게 국가 수호의 사명을 타국에 맡긴 나라에서 벌어지는 어이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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