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승리의 비결 (역대하 20:12~23)

鶴山 徐 仁 2021. 3. 3. 14:35

승리의 비결 (역대하 20:12~23)

 

 

03월 03일 (수)

   

승리의 비결 (역대하 20:12~23)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14. 여호와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현대사회는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정글의 법칙만이 통하는 밀림의 사회와 같습니다. 국제관계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과 테러도 불사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해 옵니다. 여호사밧 왕은 침략앞에서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승리는 군사력이나 외교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만이 가졌던 승리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12). 삶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승리는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20).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3). 기도 역시 믿음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왕으로부터 남녀노소가 하나되어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역사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간절하고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바른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의 내용은 연합군을 겁내지 말고 믿고 나가서 싸우라는 말씀입니다(15-17).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19-). 그들은 응답주신대로 담대하게 찬송하며 전진합니다. 지금 상황이 찬송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 결과 가능치도 않은 일이 벌어졌고 연합군이 서로 싸워서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브라가 골짜기가 송축의 골짜기, 승리의 골짜기가 된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힘과 능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면 이 원리를 사용하십시오. 22절에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있으십니까?

 

지금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승리의 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그 분을 신뢰하심으로 말씀에 순종하시어 승리의 주인공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살아가며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나의 삶의 가장 중요한 승리의 원칙은 있다면 무엇입니까?

 

- 성경의 원칙과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고 결단하십시다. 

 

​주 하나님,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며 영적으로 승리하여 영광 돌려 드리길 원합니다. 악한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기도의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말씀 붙들고 순종하게 하시옵소서. 개인적, 가정적, 사업적으로 묶여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시옵소서.

 
   

커피 마시며 진정하세요?

 

“스타벅은 반 미치광이인 에이허브와 사사건건 대립하며 

모비딕에 대한집착을 포기할 것을 권고한다.  

아마도 술츠는 복잡하고 혼란한 세상(포경선)에서 

이성과 평온을 가져다 주는 커피 한잔의 매력을 강조하고싶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이성을 상징하는 인물 스타벅을 회사 이름으로 정한 것은 아닐까.

”허연 저(著)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생각정거장,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허먼 멜빌의 명작 《모비딕》에는 무수히 많은 배를 뒤집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전설의 흰 고래 모비딕이 나옵니다.  

이 고래에게 한쪽다리를 빼앗긴 늙은 선장 에이하브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복수심으로고래 뼈로 의족을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리고 모비딕을 잡기 위한 항해를 떠나게 됩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선장 에이하브에게, 이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말합니다.

“짐승에게 원한을 갖다니……무엇 때문에 저주받은 고기 따위를 사람이쫓아다녀야 합니까!  

돌아갑시다. 이 지옥의 바다에서 돌아 갑시다.”휘몰아치는 바다도 미쳤고, 모비딕도 미쳤고, 

선장도 미쳤고, 선원들도미쳐갑니다.  이 가운데서 이성을 찾은 사람이 스타벅이었습니다.

그래서 슐츠는 커피점을 만들면서 이름을  「스타벅스」라고 했는 지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혼란스럽고 미친 듯한 세상, 

미칠 듯한 마음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진정을 찾으세요!”비단 커피 뿐 만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는 여러 장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진정은 예배 드릴 때 임합니다.  

기도하고 성경을보고 찬양을 할 때 임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요한복음 16장 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33절)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in me you may have peace. In this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heart! I have overcome the world."

(John 16:33)

   

영적 부흥을 사모합시다

 

“부흥”하면 박수치고 노래부르는 부흥회가 떠오른다.

 

그런 부흥회를 통해 은혜도 받지만 그러나 부흥은

 

부흥회가 아니라 revival, 다시 살리는 것이다.

 

메마른 산천초목에 단비가 내려

 

모든 식물이 고개를 들고 살아나는 것처럼

 

, 죽었던 환자가 수술을 받고 벌떡 일어난 것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살아나는 것”이 부흥이라면 우리는 늘 부흥을 사모해야 한다.

 

부흥의 또 다른 오해는 전도이다.

 

사람들은 전도가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전도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그것이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흥의 목적은 많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내는 것이다.

 

-이윤재 목사의 ‘영적 부흥을 사모하라’에서-

 

 

 

전도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부흥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전도는 남이 우선이고 부흥은 내가 우선입니다.

 

전도는 나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부흥은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전도하면 사람들이 모이지만 부흥하면 성령이 일합니다.

 

그래서 전도한다고 항상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내 속에서 부흥을 일으키지 않으면

 

전도는 다만 행사에 불과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