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네가 나보다 의롭도다(삼상 24:16-22)

鶴山 徐 仁 2021. 1. 5. 07:36

네가 나보다 의롭도다(삼상 24:16-22)

 

 

01월 05일 (화)

   

네가 나보다 의롭도다(삼상 24:16-22)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16-18절).

다윗의 간절하고 진심어린 호소가 사울의 무디고 강퍅한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로 하여금 <내 아들 다윗아>하며 통곡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의 이 같은 반응이 

그의 진실한 회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26:1-2). 단지 다윗의 탄원에 순간적으로 감동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너는 나보다 의롭다>(17절)거나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19절), 

혹은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20절)고 한 것은 

다 그의 본심에서 나온 말들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당시 사울은 다윗의 그 무한한 관용 앞에서 사실상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잠시 흘린 사울의 눈물 뒤로 사단의 옷자락이 보입니다. 자기를 살려준 다윗을 향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사울의 모습이 너무도 앞뒤가 안 맞아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19절). 

 

 <나보다 의롭다>는 것은 아직도 그 기준이 <나>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언제나 <나> 중심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나> 중심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모든 인간적인 감정과 울분과 분노를 누르고 매번 

<하나님> 중심의 판단과 결단으로 그렇듯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끝까지 다윗에게 강요합니다.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21절). 

또 다윗은 사울의 그 주문대로 맹세를 마다 않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갔다>(22절)고 합니다. 사울의 본색과 다윗의 마음, 사울의 길과 다윗의 

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입니다. 둘은 여전히 하나가 될 수 없어 각기 다른 길을 간 것입니다. 

 

-본문 16절 이하를 보시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사울 왕이 <내 아들 다윗아>(16절)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다윗이 <그의 사람들과 함께 올라갔다>(22절)는 요새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주님, 사울 왕의 고백처럼 다윗은 확실히 사울 왕과는 달랐습니다. 

사울 왕은 오직 사심과 질투심으로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 왕을 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순간이나마 사울을 감동시키며 위기의 순간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앞에도 늘 사울의 길과 다윗의 길이 있사오니 저희로 하여금 바른 결단을 통해 다윗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결핍의 의미

 

“하늘은 구름에게 어디든 흘러갈 자유를 주는 대신 흑백에 만족하라고

했다. 무지개에겐 일곱 가지 색깔을 주는 대신 한 자리에만 머물게 했다.

하늘은 모든 것을 다 주지도 다 빼앗지도 않는다. 하늘 자신도 파란색과

검은색 두 가지에 이따금 노을색을 가질 뿐이다.”

 

정철 저(著) 《학교 밖 선생님 365》 (리더스북, 35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모든 것이 충분히 넘치면 간절함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핍할 때 간절

함이 생기고, 간절함은 창의성과 승리의 열쇠가 됩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나일강을 가리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

나일 강은 해마다 범람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일강의 범람은 오

히려 이집트 문명 발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 시

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이 발달했고, 범람 후의 경지 측

정을 위해 기하학이 발달하였습니다.  범람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제방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도르레와 수레가 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기반 기술이 되었습니다.  

결핍이 간절함을 불러 오고 타오르는 에너지를 불러온 것입니다.  

모든 것이 충족하면 기도도 하지 않으려 하고,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부족할 때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과 간절함이 유지됩니다. 다윗의

주옥같은 시편들은 거의 다 광야 생활의 고난과 결핍에서 나온 것입니 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42:1)

   

예레미야 29장12절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예레미야 29장 12절)

Then you will call upon me and come and pray to me, and I will listen to you.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는 일은

재리란 재물의 풍요를 의미한다. 

재물의 유혹은 재물에 대한 필요 욕구라기 보다는 

필요 이상의 재물을 구하는 욕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말씀을 막히게 한다. 질식시킨다.

숨막히게 한다. 생명력을 잃게 한다. 

재리의 유혹은 물질적 가치에 대한 집착과 추구이다.

그들은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물질은 필요하다. 

부자로 사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이다.

이삭도 100배의 수확을 거두어 거부가 되었다.

물질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물질이 하나님이 되고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잊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작자 미상의 글 ‘물질의 유혹’에서-

 

일용할 양식 이외를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빌4:11,12,13, 19에서 말씀합니다.

잠언서에 나오는 기도를 보십시오.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