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착한 사람 vs. 예수 믿는 사람 (갈라디아서 2장 16-21절)외 1

鶴山 徐 仁 2020. 11. 19. 13:27

착한 사람 vs. 예수 믿는 사람 (갈라디아서 2장 16-21절)

 

 

11월 19일 (목)

   

착한 사람 vs. 예수 믿는 사람 (갈라디아서 2장 16-21절)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 사회에서 문제들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 구원하시는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것과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착한 사람의 기준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서는 정말 좋은 아빠이며 남편이지만,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직장이나 나라에서 충성하는데, 가정은 돌보지 않고 등한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더라도 우리는 어떤 때는 착하고, 어떤 때는 악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착한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면, 과연 어떤 기준에서 어떤 때를 기준으로 착한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이니까 착하게 살고

그렇게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 얻는 삶이란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자신의 죄와 허물을 비추고 회개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기준이 회복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인으로 산다는 것은 착하게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오히려 성경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과 예수를 믿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을 동일시하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이름을 부르며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삶과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며 날마다 주님의 뜻으로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루를 살아갈 때, 내가 생각하는 착한 사람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기준이 내 삶에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나에게 주어진 어떤 일을 할 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는 것과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율법주의로 행하는 것이 차이를 구분해 봅시다. 

 

주님! 내가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착하다는 기준 조차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사라입니다.

오늘 나의 삶 속에서 내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알게 하여주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핵심 사항을 놓치면

 

“오늘날 하이쿠 문학의 연구가들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가 될지 모 르지만,
일본 사람들은 힘들여 좋은 하이쿠를 만들어 놓고는 그것에 이 
상한 해석을 붙여
망쳐 놓는 일이 참 많습니다. 애써 관념에서 벗어난  
언어들을 다시 관념으로
환원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이어령 저(著)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기린원, 205쪽) 중에 나 오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다가 출애굽하여 광야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10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10 계명을 ‘613 계명’

으로 세분화시켰습니다.  좋은 의미로 보면 ‘613 계명’은 하나님의

뜻을 세밀하게 순종하려는 발로였습니다. 
랍비 심라이(Simlai)는 모든 계명을 분류하여 ‘하라’는 명령 248개, 
‘하지 말라’는 명령 365개를 
찾아냈습니다.
즉 ‘613 계명’ 중에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율법이  
248개,
해서는 안 될 사항을 기록한 율법이 365개나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장로들의 전통’(마15:2, 막7:3,5)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하나님의 계명 위에 놓일 뿐 아니라, 심지어는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15:3b)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마15:6b)

이스라엘 율법학자들 사이에서도 613개의 계명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큰

계명인가? 하면서 논쟁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핵심 사항’을 놓치고, 핵심 사항을 실천하기 위한 세부 규칙들만
무한다면 마차가 말(馬)을 끄는 꼴이 됩니다.

   

잠언 10: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라
The prospect of the righteous is joy, but the hopes of the wicked come to nothing 

잠언 10:28 NIV.

   

지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아들 구주의 공로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씻으셨고, 
이 땅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지만, 우리를 혼자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지체의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살도록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동역해야만 가능한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복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다른 지체와 동역할 때만 성경적인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화종부의 [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혼자 이루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주시고,
함께 할 지체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머리로, 우리를 각 지체로 삼아 동역하게 하신 것입니다.
옆에 있는 지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함께 이어받을 자입니다.



 

 

 

외치라고 명령할 때, 큰소리로 외쳐라

 

11월 18일 (수)

   

외치라고 명령할 때, 큰소리로 외쳐라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셔서

그 길을 걸어가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고통의 시간보다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여리고 성 앞에 서 있습니다. 성에서 전쟁을 해 본 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전투방법은 그냥 성을 7일 동안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있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시면, 미쳐버릴 노릇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을 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성을 돌때까지 성은 1m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미동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계속 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시간을 그들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전투들 가운데 “너희들이 정말 나를 의지할 수 있겠니?”라고

물어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침묵하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방법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다리는 시간에 그들이 했던 것은

그냥 성을 도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시간에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냥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소흘히 할 수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의 주권이 하나님께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이 하나님의 기다림 가운데 있는 시간들이 있다면

그 시간을 주님 앞에 성실하게 지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삶에 기다림에 시간을 주시는 일이 있습니까? 그 기다림에 시간에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합시다. 

- 하나님의 뜻에 대해 나를 기다리지 못하게 만다는 생각들은 무엇입니까?

 

주님!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이 긴 기다림의 시간이 힘이 듭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나의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로 바뀌고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임을 믿습니다. 

이 과정의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기도하고 예배의 자리를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달맞이 가자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로 시작되는 노래는 단순히 달구경
자는 이야기가 아니다(중략). 인생 공부하러 나가자는 이야기다.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으면 영원히 아가라는 이야기다.

 

정철 저(著) 《 인생의 목적어 》(리더스북, 323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승리한 영웅들은 각기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으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탁월한 영성도 소유할 수도 없고, 
세상에서도 성공 할 수가 없습니다. 게으름은 성격적인 특성이 아니라 죄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합니다.
이 빗나간 자기 사랑은 점차 좀 더 편하게만 살고자 하는 자기 정욕으로 발전합니다.

그리하여 점차 삶이 이기적이 되고 결국 무기력하게 됩니다.

잠언서는 게으른 자가 빠지는 무기력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잠26:13)

문 밖에 사자가 있으니 밖에 나가지 말고 가만히 침상에 있자!

거리에 사자는 없습니다. 아니 설사 사자가 있더라도 꿈을 위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핑계를 대며 그저 침상에서 뒹굴 뿐입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 니라.” (잠26:14)

나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하고 푸른 비전을 막는 은밀한 적,

죄 같지 않아서 방치하였는데 알고 보니 큰 죄,

나를 결정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죄

그것이 바로 게으름입니다.  

   

시편 119: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Sustain me according to your promise, and I will live; do not let my hopes be dashed. 

시편 119:116 NIV.​

   

복음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나 사상 체계와 구별되는 차이점의 정수는 바로 ‘복음’이다. 
다른 모든 종교는 신을 발견하고 자아를 발전시키고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신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 신과 연결되려면 힘을 다하여 규율을 지키고, 생각을 비웠다가 채우고, 
세상 속에서 평균 이상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와는 정반대로 말한다. 
타종교와 철학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기독교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셨다고 말한다.

-팀켈러의 [인생 질문] 중에서-

 

우리는 날마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에게서 자유함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구원 받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열심히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