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들 (마태복음 25:1~13)
11월 12일 (목)
기다리는 사람들 (마태복음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종말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여러 말씀 중에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처처에 난리와 기근과 지진이 있고,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여 미혹하며,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짐으로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종말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두가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입니다.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종말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하고 인사하였고,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며 재림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 종말입니다. 이는 나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입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종말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농부는 봄을 가다리고, 부모는 자녀의 성공을 가다리며, 직장인과 사업가는 승진과 확장을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기다림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열 처녀들은 신부의 들러리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교회는 주님 다시 오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고,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열 처녀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2-3).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고, 신랑이 더디 오기에 모두 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5). 차이가 있다면 미련한 처녀들에게는 여분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등은 외형적인 신앙생활로 예배와 봉사, 헌금과 각종 모임에 참여하는 교회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형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용이 없는 형식은 의미가 없으며, 내용과 중심이 있을 때 형식이 빛이 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교양 있고 세련됨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은혜가 없고 역사하는 믿음이 없다면 소용없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이 계산한 시간에 신랑이 오지 않음으로 준비된 기름이 부족하여 등불이 꺼져갔고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8).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방법입니다.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후에 문은 닫혔고, 이미 때는 늦어 기회를 상실한 것입니다(10-11). 누구든지 종말의 그날을 알 수 없기에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13).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데, 기름은 믿음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욕심과 재미에 빠져 육신의 깊은 잠에 취해 있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믿음과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나 건강에 있어서 모두 제한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슬기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삶에서 가장 많은 기다림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 슬기로운 처녀처럼, 재림을 기다리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 신부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살아계신 주 하나님,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각을 주시옵소서, 신부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살게 하옵소서. 육신의 잠과 욕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믿음과 성령의 충만의 능력을 주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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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행복의 상관관계
“돈과 행복에 관한 중요한 연구 결과 중 하나는 미국의 경제학자 리 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이스털린 패러독스’다. 1974년 논문에서 이스털린은 평균 이상 고소득자가 저 소득자들 보다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밝혔다(중략). 하지만 나아가 한 나라의 소득이 주택,식량,물,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기본 적인 수준을 일단 넘어서면,경제가 성장한다 해도 국민의 평균적인 행 복감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도 발견했다.”
라즈 페텔 저(著), 제현주 역(譯) 《경제학의 배신》(북돋음, 73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일정 수준을 지나면 돈이 더 많다고 더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지식이 늘어날수록 자유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듯이, 돈이 늘어날수록 행복이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리처드 레이어드의 《행복의 함정 - 가질수록 행복은 왜 줄어드는가》 에 보면, 그 어떤 신기한 것도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면 적응이 되어 ‘일상’ 이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일상이 되면 신기함도 감사도 없어지고 더 강한 자극이 와야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따라서 계속 행복을 유지하려면 더 큰 자극, 더 많은 물건 더 좋은 물건을 가져야 한 다고 합니다. 돈에 의지하는 행복은 피곤한 ‘행복 중독’ 을 낳습니다. 사람은 천하보다 더 큰 존재로 지음을 받아서 천하를 다 주어도 만족 함이 없습니다. 목마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이 근원적인 목마름을 채울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절대 존재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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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도행전 24:16 So I strive always to keep my conscience clear before God and man. Acts 24 : 16(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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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어느 시각장애인이 빌리그래함 집회에서 간증했다. 그는 간증 도중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도 괜찮다고 말했다. “저는 안내자의 인도를 따라서 길을 다닙니다. 안내자는 100m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만 가르쳐 줄 뿐입니다. 제가 안내자가 가르쳐주는 장애물만 조심해서 피하면 안내자는 원하는 목적지에 저를 데려다 줍니다.” 우리 주님도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실 때가 많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순간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나아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길에 있게 될 것이다. -마경훈 목사의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에서-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따르다보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그 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로 인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큰 그림을 주님에게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과 인도에 순종하려고 애를 쓰고 산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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