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철의 뉴스 저격] 文정부만을 위한…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못한 ‘K 재정준칙’
재정준칙 정부案 무엇이 문제인가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입력 2020.10.09 03:00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재정학
2025년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입법화 계획이 공개되었으나, 기대보다는 실망스러운 반응이 더 많다. 정부안에서 발견되는 준칙의 법적 지위 미비, 복합 산식의 불투명성, 그리고 불명확한 예외 규정 등이 준칙의 실효성을 불신하게 만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재정준칙 도입이 정말 중요한지, 정부안의 문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보완할지 살펴본다.
여당의 무책임한 재정준칙
정부안이 여당과 협의해 발표한 것인데도, 준칙 도입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여당 내에서 우세하게 나타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과 다수 연구자가 준칙의 미약함을 비판하고 있고, 야당은 “한마디로 원 없이 쓰고 가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코로나 시기에 굳이 재정준칙을 도입하려 하느냐”며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준칙 도입 자체를 탐탁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당에서 생각하는 정책 대안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만일 OECD 평균보다 낮은 채무 비율을 들어, 코로나 경제 위기 이후에도 6%에 가까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크게 줄이지 않은 채 세입 확충 없이 부채로 재원 조달을 해도 큰 문제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는 대단히 무책임하다. 2025년 이후 기간을 재정 기반 강화 없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향후 전개될 재정의 미래는 실로 암담하다. 최근 발표된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0년 장기 전망을 보면, 무대응 시나리오하에서 우리나라 국가 채무 비율은 올해 이후 10년마다 30%p 가까이 계속 오르게 된다. 50년의 최장기 시계에서, 채무 비율이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오르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대단히 예외적인 사례로서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로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다. 든든하기 짝이 없던 우리 재정이 불과 10년 후에 채무 비율이 GDP의 75.5%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2040년에 GDP 규모보다 더 커진 채무 비율(104%)을 줄이지 못하면, 바닥을 보인 재정이 이제는 경제 불안의 뇌관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제2차 베이비 부머마저 고령에 이르는 2050년 우리 채무 비율은 다수의 기축통화국이 포함된 OECD의 최근 평균 채무 비율을 훌쩍 넘어선 131%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채무 비율은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과 더불어 만성적 재정 불안을 야기하고, 재정을 더 이상 유지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만들 것이다.
코로나 재정 적자는 GDP의 2%
기획재정부가 경제 위기 중에 자진해서 재정 관리 권한을 규제하는 준칙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배경은 우리 재정 여건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데 있다. 경제 활성화와 복지 확대에 이어 경제 위기 대응까지 떠안은 우리나라 재정은 기대만큼 체력이 강하지 못하다. 지난해 확장 예산 편성으로 이미 GDP 대비 4%로 추정된 올해 관리 재정 적자는 4 차례 코로나 추경 이후 6% 수준으로 크게 확대된 상태이다. 이 때문에 2년 후에나 GDP의 4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던 국가 채무 비율이 올해에 벌써 45%에 근접한다. 중기적인 채무 증가 속도는 더 놀랍다. 항시 낙관적이라 비판받던 중기 재정 운용 계획에서조차 채무 비율이 2024년에 거의 60%에 이를 것으로 발표되었다. 현 정부가 들어선 2017년에 36%에 불과하던 채무 비율이 불과 4년 후인 2021년에 15%p 급상승하는 것은 현대 재정 70년사에 최초이며, 외환 위기 기간에도 경험하지 못한 바다. 경제성장 속도보다 정부 지출 규모가 항상 더 빠르게 증가한다는 와그너 법칙은 이러한 현상이 예외적이기보다 일반적 전개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하지만 적지 않은 정치인은 이러한 재정 팽창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불가피한 현상이라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늘어난 재정 적자는 불과 GDP의 2%다. 그것도 올해와 내년에만 발생하는 일시적 적자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나 코로나 폐업·실업에 대한 지원금 등은 모두 지금 소개한 전망에서 당연히 배제되었다. 그런데도 국가 채무 비율의 무서운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원인은 다름 아닌 고령화와 저성장이 주는 경제적 영향이다. 사회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주는 충격은 막대한 것이어서, 충분히 대비하지 않으면 소중히 가꿔온 재정 기반은 쓰나미처럼 휩쓸려갈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근시안적이고 소모적인 부채 수준 논쟁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야 한다.
국회가 개입…'재정 정책의 정치화'
지금과 같이 재정을 그때그때 경제 상황과 정치 논리에 따라 재단하면, 일관된 방향의 체계적 정책 운영이란 아예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대목은 ‘재정 정책의 정치화 문제(politicization of fiscal policy)’이다. 하버드대 공공정책학 분야 케네스 로고프 교수가 연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지적한 바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빨라져 재정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거대 여당 출현으로 재정 당국의 역량이 크게 위축되고 정치권력에 휘둘리면서, 재정 운용의 주도권이 정치 영역으로 이전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진행된 4 차례 추경 편성과 한국형 뉴딜에서 예산을 심의·감독해야 하는 의회가 행정부의 예산 편성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재정 운영 역할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다. 재정이 정치적 지지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비하고자 한다면, 재정준칙 도입은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된다.
/그래픽=박상훈
재정 규율 준수를 준헌법적 의무로
현재 우리나라 재정을 둘러싼 정치·사회 환경은 근본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어, 재정 운영 방식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 도입이 요구된다. 이상적인 방안은 우리 거시 경제 현실에서 중장기적으로 관리 가능한 채무 비율 목표와 재정 적자 폭을 찾아, 이를 준칙으로 정하고 정부가 반드시 지키도록 법적 구속력을 싣는 것이다. 정부안에 포함된 준칙의 시행령 규정 사항은 준칙 운영의 전권을 기획재정부에 위임할 것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 정파성을 띤 집단보다는 전문 관료 조직이 재정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은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양자 간 권력 구조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시행령상의 규칙만으로는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재정 당국이 버텨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민 합의에 의한 재정 관리 규칙이라는 대의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준칙은 시행령이 아닌 법률 또는 그 이상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는 규준으로 제정돼야 한다. 준칙을 채택하는 국가의 74%에 해당하는 117국에서 법률과 헌법에 준칙을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준칙법률주의는 국제적으로 규범화된 룰로 보아야 한다. 우리도 재정 당국에 위임된 형식의 시행령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명확하고 구체화된 법적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다. 가능하다면,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를 포함한 14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준칙의 엄격한 적용을 위해 재정 규율 준수를 준헌법적 의무로 격상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국가재정법의 준칙 제정 과정은 여느 법률과는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의 재정 개입과 재정의 정치화를 방지하기 위해 재정준칙을 운영하려는 것인데, 준칙 제정이 정파적 대결이나 어정쩡한 타협으로 좌초된다면 아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준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결정은 정치적 편향이 배제된 중립적인 민관 합동 기구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준칙 법률화의 최종 승인권자인 국회는 정치 논리를 벗어나, 준칙의 내용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재정 유지 가능성을 위배하지 않는 한 그 결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중립적인 민관 기구는 추후 중앙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와 유사한 형태의 독립적 지위를 갖는 재정 기구로 승격해 제정된 준칙의 시행과 감독을 담당하고, 국가 부채 위험 관리와 거시 경제 및 세입 전망을 관장하게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변칙 얼룩진 기재부 재정준칙]
채무상한 규정 어겨도 아무 문제없게 만드는 ‘마법의 공식’까지 도입
정부 준칙안은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표준적인 준칙에서 벗어난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준칙의 가장 핵심적 부분을 차지하는 채무-수지 복합 산식은 준칙을 운영하는 159국 어디에서도 채택되지 않는 방식이다. 준칙 준수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용이하려면 무엇보다 기준이 단순해야 하는데, 정부는 산식을 통해 채무 상한을 어기더라도 재정적자 상한을 지키기만 하면 문제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부의 변칙적인 방식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두 가지 상한을 모두 충족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할 것이다.
준칙 시행령에 대한 위임을 원하는 기획재정부는 채무 상한을 5년마다 재검토하여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행정부의 상한 조정 규정 역시 어느 준칙 운영 국가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채무 상한을 낮게 잡은 것이 문제라면, 국민에게 달성 가능한 채무 관리 목표 수준을 제시하고 , 이 중에서 적절한 상한을 선택한 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준칙의 취지에 부합한다.
불명확한 예외 규정들은 언제든 정쟁으로 비화될 수 있고 준칙 시행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해 경기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진단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기에, 경제 둔화 예외 조항은 필연적으로 소모적 논쟁을 수반하는 문제가 있다. 경제위기 부분만을 예외 조항으로 남기되, 경제성장률과 실업률과 같은 객관적인 거시경제 지표를 이용하여 사전에 위기 상황에 대한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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